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도 Oct 06. 2021

지쳐있던 그때의 나에게  

환자가 되면, 엄마가 생각난다

병원 진료는 늘 조금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간호사와 의사는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고, 그들은 늘 누군가의 문제를 상대하는 사람이기에 피로에 젖어있다.


도착해서부터 등록을 하고, 간단한 수치를 재고, 진료실에서 내 증상을 설명하는 모든 과정 내내 어떤 긴박감과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진료실로, 처방전을 받으러, 수납을 하러 이리저리 불려 가느라 정신이 없다. 내 손에 있는 접수 번호표 23번처럼 이곳에서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는 그저 ‘23번 환자’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으레 기일이나, 엄마 생신, 명절 같은 때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비록 사소한 문제로 동네 의원을 찾았을 뿐이지만, 잠시나마 환자가 되어서 의료진을 대하고, 진료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에 나는 마지막의 많은 시간을 환자로 보냈던 엄마를 생각한다. 쉽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병원에서의 경험에 내가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렸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누구나 시간이 지나며 엄마와의 관계가 변해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엄마가 내 인생의 전부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엄마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모든 것들을 거부했던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에 가고 엄마의 품을 떠나면서 한동안 가족의 존재가 흐릿했던 20대를 지나고, 30대에 이르면 문득 부모님이 나이 들어간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시기가 온다. 몇 달 만에 보는 엄마와 아빠는 조금 더 약해져 있고, 조금 더 우리에게 기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엄마 아빠의 안전과 건강, 행복이 우리의 몫이라는 책임감이 드는 것이다.


그 무렵에 엄마가 갑자기 진단을 받았다. 나는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에 빠졌다. 그때의 슬픔은 엄마의 삶을 걱정하는 슬픔이기도 하면서, 엄마를 잃을 나에 대한 슬픔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이기적인 슬픔을 나는 늘 부끄러워했다.


보호자가 된다는 건 그래서 복잡하다. 엄마를 잃을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이 상황을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안고 시작한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병이 진척되는 상황을 보면서 계속되는 패배감을 느낀다. 내가 엄마에게 준 작은 도움보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이 나를 짓누른다.


어른인 척 책임감을 안고 엄마를 보살피면서도, 그 안에는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휘청이는 아이 같은 내가 있다. 치료방향을 고민하고, 엄마에게 최선은 무엇일까 살피는 어른인 나와 엄마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울고 싶은 아이 같은 내가 매 순간 공존한다. 대부분의 시간 나는 어른인채하느라, 엄마 앞에서 한번 제대로 울지도 못했다. 울고 싶었던 많은 순간에, 나는 그게 엄마를 더 마음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엄마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애써 마음을 누르고 괜찮은 척을 했다.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그래서 단 한 가지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내가 해야 만한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 중에서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엄마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라서.


환자로 사는 삶에서, 특히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경우라면,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병원에서 ‘28번 환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고 또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니까.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나를 바쁘게 하던 것들 중에 가장 우선순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신경 쓰고 챙길 일이 많은 보호자의 일상에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나 슬픔을 드러내는 일에 자리를 내주지 못했다.


어떤 날의 나는 힘을 조금 빼고, 하루에 5분이라도, 지치지 않은 마음으로 엄마 옆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울고 싶을 땐 마음껏 울었더라면. 단순한 마음으로 그저 그 시간을 좋아했었더라면. 조금 덜 힘들고, 덜 지쳤더라면. 그리고 가벼워진 내 공기가 엄마에게 가 닿아 엄마가 사랑받고 있다고, 한번 더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그냥, 그런 날들이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잠들지 못하는 보호자의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