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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원 Mar 28. 2020

내 옆의 산타클로스

“요즘 여드름이 고민이라고 하셔서 이거 한 번 써보세요. 괜찮은가. 프랑스 브랜드 건데 순하고 이거 바르고 뭐 난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스트레스와 잦은 야근으로 좁쌀 여드름이 온 얼굴을 점령했을 때 회사 동료 겸(동반~자) S님이 화장품 샘플이라며 작은 박스를 건넸다. (우리는 서로 존칭을 하는 사이다) 박스를 뒤집어 안에 든 것을 꺼내보니 거의 본품 수준에 가까운 샘플이 가득했다. 라로슈포제 각종 제품들의 샘플이었다. 이건 고작 샘플이 아냐. 이렇게 작은 것들을 전부 박스에 작은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모습이란. 아 이것이 프랑스의 기초 제품이구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이의 마음으로 패키지에 쓰여있는 깨알 같은 글씨를 보며 어떤 크림인지 유추하고 있는데 S님이 옆에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줬다.


“이건 어머니도 쓰시면 좋아요.”

“이건 뭔데요?”

“달팡이요. 수분 크림이에요.”


달팡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 럭셔리 스파 브랜드로 피부과나 에스테틱에서 쓰거나 추천하는 제품으로 어머니들 사이에서 괜찮은 평이 많다는 브랜드였다. 내가 쓸 라로슈포제 기초 제품으로도 부족해서 우리 엄마가 쓸 달팡 샘플까지 준 것이다. S님이 어머님과 쓸 화장품을 프랑스에서 직구하면서 받은 것이라 했다. 


사실 S님이 알려주기 전까지 난 라로슈포제와 달팡이라는 브랜드를 잘 몰랐다. S님께 받고 나서 본품 가격들을 찾아봤는데 꽤나 가격대가 있는 제품들이었다. 라로슈포제는 국내에서는 사기도 어려운 것 같고. (지금은 국내에도 론칭해서 쉽게 구매 가능하다)


퇴근길에 엄마에게 S님이 스킨케어 제품 샘플을 잔뜩 줬어라고 카톡을 보냈고 내가 받아온 것을 거실 방바닥에 와라라라 쏟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잔뜩이 아니라 산 걸 다 준거 아냐?!”


샘플이라 하면 하루 이틀 정도 발라보고 트러블이 생기는지 지켜보는 정도일 텐데 내 화장대 서랍을 채운 이 샘플들은 거의 본품의 용량과 다름이 없었다.


‘오늘은 S님이 준 것 중에 이걸 발라봤는데요 촉촉하고 끈적이지 않아서 좋네요.’

‘오 이건 어제 바른 것보다 더 촉촉해서 자기 전에 발라야겠어요.’

‘이상하게 얼굴이 가렵던 증상은 사라졌는데 라로슈포제 때문인가 봐요?!’

‘이건 어디서 사야 더 싸게 살 수 있을까요?’

‘프랑스 직구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S님께 받은 것들을 다 쓸 때쯤 엄마와 나는 때마침 프랑스 여행을 했고 몽쥬 약국에서 한 바구니 쓸어왔다. 그리고 두 브랜드는 나의 최애 스킨케어 브랜드가 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를 보고 반쯤 미쳐서(좋아서) 매일 같이 숙희와 히데코의 대사를 S님에게 줄줄 읊을 때는 각본집을 사서 내게 선물했다.


“제 책 몇 권 사면서 재원님이 <아가씨> 너무 좋아하시길래 샀어요”


각본집이 나오자마자 내게 선물을 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선물을 잦았다.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나는 배은망덕하게도 뭘 받았는지는 까먹고 (너무 많이 받아서) 받았다는 기억만 하는 중이다. 급히 생각난 몇 개를 적어보자면 이렇다.


“친구 선물 사러 백화점 갔는데 와인 코너 구경하다가 재원님이랑 먹으려고 샀어요”

“이 차도 한 번 드셔 보세요. 전 일할 때 먹으려고 샀는데 한 번 드셔 보시라고요”

“이건 킨토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컵인데 뜨거운 물 부어도 잔이 뜨겁지 않아서 좋아요”


또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주면 주는 데로 덥석덥석 받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되지도 않은 사족을 붙이곤 했다.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뭘 주시나요. 돈을 아껴 써야죠!”

“제가 좋아서 제거 사면서 같이 사는 건데요. 뭐”

“그렇다고 막 퍼주면 안돼욧!”


앙칼진 나의 대꾸에 언젠가 S님은 나에게서 가끔 서울깍쟁이의 모습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고 했다. 인심 좋은 S님은 부산 사람이다.


나는 선물을 자주 하는 사람이던가.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땐 친구들과 편지를 주로 주고받았다. 크리스마스 땐 카드를 직접 만들고 밤새 편지를 써 친구들에게 줬었고. 중학생 땐 무슨 무슨 특별한 날이면 직접 쿠키나 머핀 같은 걸 만들어 가서 반 친구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어렸을 땐 나도 뭔가를 선물하는 것 주는 것에 인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즐기는 타입이었지.


고등학생 때 그리고 대학생 때는 친구들의 생일 외에는 특별히 무언가를 괜히 선물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다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N빵 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뒤로는 특히 친구들 생일에서도 생일 선물을 굳이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너 사고 싶은 거 사’라는 의미로 조금씩 돈을 모아서 주는 게 더 편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여겼으니까.


선물을 다시 주고받기 시작한 건 회사 동료들과 (언니들과) 서로의 생일을 챙기면 서다. 나에게 자꾸만 뭘 주는 S님의 생일을 앞두고 무엇을 선물해야 좋아할지, 지금 사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이 뭔지 엄청 은밀하게 떠보는 작업을 했었는데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다. S님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를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그것들은 고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점심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무인양품 매장을 구경하는데 S님이 벽걸이 CD 플레이어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아하 이것이로 구만! 생일 선물로 줄 계획인데 그 사이 이걸 구매하진 않겠지 엄청 조마조마해가며 회사로 배송 오도록 주문을 넣었다.


한참 강남을 누비며 술을 마시던 때라 S님의 생일 역시 생일 파티를 위해 우린 자주 가는 이자카야에 갔고 가서 나는 벅찬 마음으로 선물을 꺼냈다. 당시에 다른 사람 생일 선물로 이렇게 비싼 걸 사긴 처음이었는데 그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던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았고,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이후 돌아온 내 생일에 굉장한 선물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처음에 나와 S님 둘이서 챙기던 생일에 Y님과 B님도 합류했고. 우리는 늘 누군가의 생일에 앞서 대체 뭘 선물해서 이 사람을 놀라게 해 줄까 생각하곤 한다.


지난해 내 생일 땐 공기청정기를 받았다.





<다정한 사람들>


'이 사람 왜 이렇게 다정해?' 대가 없는 선의를 베푸는 사람. 어쩌면 타고나길 다정함이 한도 초과인 사람은 날 당황하게 만든다. 건물 입구에서 문을 잡아준다거나,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기다리는 그런 기본적인 매너도 바라지 않은 지 오래돼서 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기대도 안한 다정함을 마주할 때면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괜한 조언도 어설픈 위로도 쉽게 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매너라지만 조금은 과하다 싶은 다정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고무장갑 물을 튀기며 난데없이 날아드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 내가 몇 살인지도 헷갈리면서 늘어놓는 아빠의 걱정, 처음 본 아저씨한테서 듣는 인생 팁, 자꾸만 곁에 와서 맛있게 잘 먹는지 지켜보며 말로 거드는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열정,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데도 표정과 손짓으로 자꾸만 나를 이해시키려는 타지에서 만난 현지인의 노력. 돌이켜 생각해보면 비로소 소중하고 즐거운 내가 본 다정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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