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대로 하교 후 미술학원에서 오던 길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길이었다.
우리 집은 빨간 벽돌로 된 주택으로
맨 꼭대기 층 계단을 올라 중분을 열고 올라오자마자 언니가 나를 작은 방으로 불렀다.
“소나야, 놀라지 말고 들어. “
“엄마가 많이 아파. 심각하데”
“전부터 심각했는데
너한테는 말을 못 했어 미안해. “
“..... 응?” “ 엄마가 아픈 거는 알고 있었지.. 근데 갑자기 왜...? 많이 심각해졌어???”
“ 암 말기라 가망이 없데. “
“이제부터 치료는 생존을 위한 치료가 아니라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치료가 될 거야... “
“앞으로 신약투여도 받고..
노력은 할 건데 가망은 없어.”
그 순간, 심장에 추라도 달아놓은 듯
쿵 내려 않았다.
아니, 심장이 발밑 그 아래 지하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거실에서 숨죽여 울고 계셨고,
우리 세 자매는 방에서 목놓아 울었다.
누가 내 얘기를 들으면
내가 어떤 마음인지 상상이나 갈까?
절대 겪어보지 않는다면
공감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엄마의 치료에는 호전이 없어서
암센터에서 지원도 받지 못했고,
병원에서도 해줄 게 없어서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앞에 이렇게 멀쩡히 있는 엄마인데..????
암 4기가 이렇게 빨리 진행이 되나?
지금 버젓이 내 앞에 있는 엄마인데..
오늘 아침에 밥도 해주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 주던 엄마인데...
맨날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오며
애기~ 하고 불러주던 우리 엄마인데...
전화하면, 우리 애기 저녁에 뭐 먹고 싶어???
하던 우리 엄마가...
문자를 하면 꼭 마지막에 “응~ 사랑해”를
붙여주던 우리 엄마가 죽는다.
오랫동안 현실감이 사라져 비현실에 살았던 거 같다.
앞으로 엄마를 웃으며 바라볼 수 있을까?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엄마 무릎에 기대어 엉엉 울었다.
앞으로 집에서 엄마랑 어떻게 지내야 하나...
우리 집이 다시 웃는 날이 올까.
우리 가족이 이 슬픔을 버텨낼 수 있을까?
이날 이후, 내 삶은 멈췄다.
깊은 어둠 속에 갈 곳을 잃고,
긴 터널 속에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혼자 갇히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갔고,
내 면회는 거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