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스페셜에서 시리즈M으로: 다큐멘터리와 MZ세대 간의 거리감 줄이기
201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교과서나 수업자료에서 MBC ‘아마존의 눈물’을 한 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초등학생 때에는 TV 채널을 돌리면 EBS ‘한반도의 공룡’이 심심치 않게 재방송을 하고 있었고, 얼마 후에는 영화로도 개봉되어 아직 공룡에 빠져 있는 나이였던 동생과 영화관을 갔었다. 당시에는 다큐멘터리의 찬란한 미래를 내다보는 설렘으로 떠들썩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아마존의 눈물’이 시청률 22%를 기록했고 뒤이어 만들어진 지상파 대작 다큐멘터리들도 시청률 10%를 넘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틀지 않아도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공간의 제약 없이 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지상파 방송사들과 다큐멘터리는 몇 년 전에 누렸던 영광의 빛을 잃어버렸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여전히 고루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남아있고 비드라마 화제성 순위에서도 예능이나 다른 교양 프로그램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특히 숏폼(short form) 콘텐츠를 선호하는 요즘에는 60분 이상 집중해서 시청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는 쉽게 시선을 끌지 못한다. M씽크 2기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MBC 스페셜 전성관 PD는 시청자들이 긴 호흡의 콘텐츠에도 집중해주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비치기도 했다.[1]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지금의 젊은 시청자들은 정말 분량이 1시간을 웃도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없을까?
닐슨 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전 연령층에서 평균 2개의 OTT(Over The Top) 서비스를 사용하고 이 중 20대와 3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 2위와 3위가 넷플릭스이다. 2019년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의 69%가 20~30대라는 조사도 있다.[2] 주목할 점은 넷플릭스의 인기 요인으로 자체 제작 드라마나 영화 이외에도 다큐멘터리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길 위의 셰프들', '풍미 원산지'와 같은 음식 다큐멘터리들이 가장 인기 있었고 [3], 2019년 가장 많이 재생된 넷플릭스 영화 상위 10위는 미국 음악 페스티벌 사건의 전모를 다룬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가 차지했다.[4]
또한, 지난 5월,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후 불거진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퍼지면서 미국 사회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흑인을 차별해왔는지 알고 싶으면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보라는 글들이 SNS상에 올라오고 있으며, 채식과 관련해서는 비건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이 '자본을 죽이는 밥상', '더 게임 체인저' 등의 다큐멘터리를 추천한다. 즉, 원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마니아가 아닌 젊은 시청자들도 다큐멘터리를 찾아 즐긴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MZ 세대가 상대적으로 지상파 방송 다큐멘터리에 가지는 관심이 적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미디어 소비 흐름에 따라 MBC는 올해 2월부터 빠르고 새로운 리얼리티의 세계를 내세우며 20년간 이어져 온 MBC 스페셜을 시리즈 M으로 재구성하여 방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소개에 따르면 정통 다큐멘터리, 스낵 콘텐츠, 토크, 팩츄얼 다큐 등 다양한 포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시리즈 M이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 시리즈 M과 젊은 시청자 사이의 틈은 좁혀지지 않은 듯하다. 첫 화 방영 뒤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노브라 챌린지'가 많이 회자되었지만 사실 이를 다큐멘터리 자체로 인한 화제성으로 보기에는 '노브라 챌린지' 뒤에 이어진 악성 댓글과 관련 기사들의 기여도가 컸다.
이후 이어진 방송들도 시청률이나 시청자 수에서 눈에 띄는 증가가 있거나 큰 화제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첫 화부터 21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들의 모습을 담은 16화까지 시리즈 M을 즐겁게 시청해 온 것은 사실이다. 뉴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없는 열심히 일했던 의원들과 앞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색다르게 다가왔고 정치 이슈를 다룬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서 흔치 않은 희망적인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코로나 19가 일으킨 마스크 대란, 대구로 긴급 파견을 간 의료진 등 시의적절한 주제를 그에 어울리는 연출로 선정적이지 않게 담아내어 불편함 없이 볼 수 있었고 이제는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지는 반려견과 여전히 심각한 반려동물의 유기 문제를 다룬 ‘개人(인) 생활’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리즈 M에 존재하는 아쉬운 점을 정리하며 시리즈 M이 앞으로 젊은 시청자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고려해볼 만한 사항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단순한 검색으로는 알기 어려운 흥미로운 사건, 현상, 또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선별된 증거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잘 모르고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나 세계를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여 연출한 화면으로 보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를 통해 결과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는지도 중요하다. 시리즈 M 1화부터 4화까지 이어진 ‘별의별 인간 연구소’는 시청 후에 남은 메시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별의별 인간 연구소’는 리얼리티 TV의 전형적 포맷인 인위적으로 설정된 상황에서 진행하는 실험으로 구성되어 인간에게 브래지어가 필요한지, 인간은 첫눈에 반할 수 있는지, 왜 콘돔을 어려워하는지 등 크고 작은 궁금증을 다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아니꼽게 보는 시선과 같이 여성이 노브라를 하기 어려운 이유를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이미 많이 시도되었고 사실 크게 필요하진 않은 남성의 브라 착용 체험이 큰 부분을 차지했으며 첫눈에 반하는 게 실제로 가능한지, 왜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4회에서도 에피소드 소개는 ‘우리는 왜 라면을 먹을까’로 시작하지만, 영상이 끝난 뒤에도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기억에 남을 뿐 우리가 라면을 왜 먹게 되었고 한국인들은 왜 유난히 라면을 좋아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런 실험 쇼가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다룬 블라인드 데이트와 정치 성향에 대한 편견을 다룬 에피소드는 실험과 주제가 잘 맞물리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실험 자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MZ 세대는 숏폼 콘텐츠에서 실패 없는 확실한 즐거움 또는 정보를 얻고자 한다. 시리즈 M의 새로운 시도로서 ‘별의별 인간 연구소’는 지루하지 않은 다큐를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형식의 다큐가 또 제작된다면 처음에 던져진 질문에 답하며 끝나는 완결성이 조금 더 보완되기를 바란다.
시리즈 M은 지금까지 별의별 인간 연구소를 시작으로 배철수의 BBC 생방송을 담은 휴먼 다큐, 멸종되어가는 아프리카 동물들과 반려견을 다룬 자연 다큐, 그리고 20대 국회와 21대 국회를 짐작해보는 시사 다큐, 코로나와 5·18 등의 특집 다큐들을 만들면서 다양한 주제들을 담아내고 있다. 최근 예고된 17회에는 가상의 재난 상황 속 박하선의 리얼 생존기를 담는다. 그러나 첫 4화를 제외하면 이전의 MBC 스페셜 다큐와 큰 차이점이 보이지는 않았다. 내레이션과 PD의 인터뷰, 카메라의 관찰 화면이 주를 이루는 연출이나 해설 외에 프레젠터를 두는 방식, 그리고 인터뷰의 답변만 활용하여 별도의 카메라 밖 화자 없이 영상과 이미지를 배열하는 연출 등은 각각의 주제를 다루기에 적합했으나 이전에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것들은 아니었다. 정해진 형식의 한계가 없어 더 궁금한 프로그램이라는 소개에 비해서는 아직 그 새로움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 같아 MBC 스페셜과는 다른 시리즈 M만의 특색이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목요일 10시 5분이라는 나름 괜찮은 편성 시간대를 가지고 있는 시리즈 M이지만 TV 앞에 앉아 본방송을 지켜보는 일이 거의 없는 젊은 시청자들이 지속해서 시리즈 M에 관심을 두게 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뚜렷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시리즈 M만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한 편 한 편의 화제성을 갖추는 것도 좋겠지만 시리즈 M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한 만큼 고유의 정체성을 정립하여 프로그램의 로고나 이름의 의미를 통해 기억에 남을 만한 일종의 브랜드로 만들면 내용과 형식에 상관없이 챙겨보는 젊은 시청자층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추가로, OTT 서비스에 올라가는 시리즈 M에 변화를 주는 것도 제언해본다. 60분보다 훨씬 짧게 구성되는 15분, 30분 다큐는 각각을 분리하여 업로드하는 것이 더 많은 시청자 유입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재는 웨이브나 iMBC에서 다시 보기 서비스가 본방송을 기준으로 모두 합쳐져 한 회로 재생되는데 짧은 콘텐츠의 경우 각 회 내용 설명을 읽지 않으면 제목만으로는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졌는지 알기 어렵다. 한 코너나 주제를 기준으로 짧게 편집하여 각각 업로드하고 제목에 그 내용을 담는다면 본방송을 시청하기보다는 스마트폰, 노트북으로 원하는 시간대에 보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TV 다큐멘터리의 회생을 위해 다른 지상파들도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중이다. KBS는 유튜브를 활용한 참여형 다큐 '시청률에 미친 PD들'을 선보였고,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 코리아'는 백상 예술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SBS 스페셜은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자사 영상 아카이브를 활용한 토크쇼 형식의 '선미네 비디오 가게'를 시작했다. MBC 시리즈 M도 이제 막 16회를 보여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로그램인 만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리즈 M이 고유한 색깔을 갖춰 2030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는 트렌디하고 센세이셔널한 다큐멘터리의 기준이 되길 바란다.
[1] M씽크, <MBC 스페셜>을 만나다, 브런치 매거진 (2019.05.27) https://brunch.co.kr/@dytpq641/5
[2] 국내 넷플릭스 이용자 69%가 20~30, 경향신문 (2019.7.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7161017001
[3] 전 세계 사로잡은 '다큐의 힘', 시사인 (2020.06.06)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124
[4] 2019 넷플릭스 총결산, 보그 코리아 (2019.11.25) http://www.vogue.co.kr/2019/11/25/2019-%EB%84%B7%ED%94%8C%EB%A6%AD%EC%8A%A4-%EC%B4%9D%EA%B2%B0%EC%82%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