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직장이 중요하다던데

마케팅팀 인턴 - 팀장님의 한마디

by 소유 SoYu

워킹홀리데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찾은 회사였지만, 나의 첫 직장은 꽤 규모 있는 교육회사였다.


긴장은커녕 준비도 없이 치른 내 첫 면접.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팀장님과 가까워진 뒤에 여쭤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저를 왜 뽑으셨어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건 없어 보였는데,

자신감은 넘치더라고. 뭐 하나 잘하겠지 싶었지.”


하하, 지금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얼떨결에, 마케팅팀 인턴이 된 나였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엑셀도, PPT도 서툴렀다.

하루 종일 매뉴얼만 붙들고, 회사가 어떤 교육을 하는지 익히는 게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블로그와 카페에서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B2C 마케팅을 맡게 됐다.

수업을 소개하려면 강사들의 특징을 알아야 했고, 그래서 인강을 직접 들었다.

관심 있던 주제들이라 일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 사수였다.

처음부터 왜인지 나에게 쌀쌀맞았다. 당시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이해가 간다.

자기 일을 덜어내려고 뽑은 인턴이 아무것도 모르는 휴학생이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정을 몰랐고, 처음 받아보는 미움에 속수무책이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은 늘 건성이었고, 알아서 배워야 했던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팀장님에게 메일이 왔다.

짧았지만 강렬했다.


“우리가 널 뽑은 건 네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야.
그러니 적어도 네가 받는 월급만큼은 해줘야 해.”


순간 어리둥절했다.

'일을 못한다는 걸까? 아니면 더 열심히 하라는 걸까?'

눈물이 핑 돌았다.


“사수가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일만 시켜요!” 하고 답장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보냈다.


‘잘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인턴다운 단순 업무들이었지만 잘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 싶었다.

매일 아침 뉴스 기사나 카페 글을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전에는 복사·붙여 넣기로만 끝냈던 걸 다시 뜯어보았다.


한눈에 읽히지 않는 보고서였다.

바쁜 오전에 누가 이런 걸 꼼꼼히 읽고 싶을까.


보고서는 영역을 나눠 보기 쉽게 정리했고, 메일 내용에 굵기와 색을 넣어 ‘이것만 보면 된다’는 식으로 요약해 두었다.


학생 설문지를 PPT로 옮기는 일도, 기존 틀에 숫자만 넣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블로그를 뒤적이며 독학한 방법으로 구성과 순서를 새로 짜봤다.



그렇게 변화를 주던 어느 날 아침, 팀장님이 내 보고메일을 보시더니 나를 불렀다.


“얘, 누가 이렇게 일하라고 가르쳤어?”


순간 얼어붙었다. 또 지적받는 건가 싶었는데,

이어진 말은 뜻밖이었다.


“왜 월급보다 더 일을 해? 당장 20% 올려줘.”


놀라움 속에서도, 그게 칭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름 직장인다운 멘트를 날렸다.


“우리 사수가 잘 알려주셨어요.”


옆에서 듣던 사수는 어이없어하다가도 웃더니, 그 후로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일을 제대로 알려주기 시작했고, 나는 더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었다.


겨우 3개월이었지만, 배운 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출장이 잦은 부서였던 덕분에 팀원들과도 돈독해졌다. 출국 후에도 인연은 이어졌고, 나중에 팀장님이 회사를 차리셨을 때에는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다.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였다.



첫 단추는 잘 끼워진 걸까?

팀장님이 지방 출장길에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첫 직장이 중요한 거야. 네가 나중에 뭘 하든, 마케팅이나 교육 회사는 또다시 경험할 수도 있어.”


그 예언은 반쯤 맞았다.



그렇게 나의 첫 발걸음은 두 번째 길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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