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수집가
우연히 나의 고용보험 이력을 들여다봤다.
11개…?
거기에 등록되지 않은 아르바이트나 워킹홀리데이 기록까지 합치면, 내가 해본 일은 14가지 정도였다.
내가 ‘직업 수집가’라니.
문득 더 늦기 전에, 흥미롭고 다채로웠던 지난날을 기록해 남기고 싶어졌다.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나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나를 위해 이 학원 저 학원 보내 주셨고, 그중에는 한 달 만에 그만둔 곳들도 많았다.
수학, 피아노, 발레, 미술, 글쓰기, 웅변, 암기 학원까지.
배우고 싶으면 배웠고, 관두고 싶으면 관뒀다.
아마 그런 기질이 타고난 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내 유년 시절은 늘 바쁘고, 정신없이 배우며 뛰어다녔던 시간으로 가득했다
별별 학원을 다니며 이것저것 배웠지만, 결국 특별히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그냥 어중간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나마 수학과 과학에는 흥미가 있었고 성적도 괜찮아 인서울의 한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1학년 때는 성적도 좋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물리… 내 적성이 아닌가?’
그러던 중 학과 성적 상위 10% 안에 들어 교직이수를 할 수 있었다. 선배들을 따라 별생각 없이 교직 과목을 듣던 중,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애매한 내가 학생을 가르쳐도 될까?’
결국 다음 학기 바로 휴학을 했다.
목적 없는 휴학은 말 그대로 ‘자유’였다.
그때까지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 없던 나는 집에서 놀기만 했다.
엄마는 “공부해서 장학금 타는 게 돈 버는 거지”라며 아르바이트는 권하지 않으셨다.
실제로 알바를 구해 하루만 일하고, 혹여 걸릴까 겁이 나서 바로 그만둔 적도 있었다.
자유로운 휴학생활 중,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게 있었다. 바로 <명탐정 코난>.
끝도 없는 만화 속 이야기에, 하루가 24시간인지 36시간인지 모를 만큼 빠져들었다.
‘아프리카 TV’에서 무한으로 방송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게 불법인 줄도 몰랐다.
방영분을 모두 섭렵하고 나니, 자막도 달리기 전에 새 영상을 보고 싶어졌다.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관심이 생겼다.
긴 휴학생활이 무료하던 나는 일본어 학원에 등록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지만 히라가나조차 가물가물해 기초반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어는 달랐다. 쉽게 익혀졌고, 재미있었고, 더 깊이 배우고 싶어졌다.
학원에서도 빠르게 성장했고, 어느새 우등생이 되어 있었다.
휴학생활 막바지에 드디어 뚜렷한 목표가 생겼다.
일본어학과 전과.
이번만은 좀 달랐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물리학과에서 2년을 보냈기에 학점이 아까워 부전공으로 남기고, 일본어학과로 전과 신청을 했다.
전과 후, 중국어학과에서 온 언니와 함께 유학원을 통해 도쿄로 떠났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2주 동안의 짧은 어학연수였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설렘도 컸지만, 다른 언어로 살아보는 경험은 그보다 더 특별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전자사전과 종이 지도를 들고 다니며 나는 더욱 일본어에 '아니, 일본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
기간이 짧았기에 회화가 폭발적으로 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귀가 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학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여름방학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갈 기회를 얻었다.
단 한 달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너무나 값졌다.
늦게 전과해 전공 수업 대부분이 역사와 문화 위주였던 탓에, 언어 실력은 아직 유치원생에 못 미쳤다.
그러나 같이 간 학생들 대부분이 비전공자라, 오히려 일본인 친구들과 일본어로 대화할 기회는 나에게 더 많았다. 덕분에 회화에 대한 자신감이 크게 붙었다.
일본에 대한 마음은 더 깊어졌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했다.
그 시절 워킹홀리데이 심사에서는 JLPT 2급 자격이 있으면 유리했고, 약 270만 원의 통장 잔고 증명이 필요했다.
자격증은 이미 취득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내가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셨던 엄마에게 손 벌릴 수는 없었다.
급한 신청 기간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부탁해 잠시 돈을 빌려 통장 잔고를 제출한 뒤, 바로 돌려주었다.
그 금액이 조건인 만큼 워킹홀리데이에 어느 정도는 필요한 돈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국 전 3개월간 교육회사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게 나의 공식적인 첫 사회생활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직업 수집가의 14번의 도장깨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