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천재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 뮤지컬 <광염소나타>
뮤지컬 <광염 소나타>는 살인을 통해 얻은 음악적 영감으로 소나타를 작곡하는 J, 그리고 그를 둘러싼 S, K의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지, 예술적 영감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천재로 칭송받으며 어린 나이에 음악계에 데뷔한 J는 이후 제대로 된 곡 하나 내지 못한 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시 가르침을 받고 작곡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그는 클래식계의 저명한 교수 K의 작업실에서 지내며 계속해서 곡을 쓰지만, 늘 K의 기준에 미치지 못해 패배감과 절망감, 자괴감 속에 빠져 있다.
술을 잘 마시지 않던 J는 작곡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괴로운 마음에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로 음주 운전 사고를 내고 만다. 다친 남자를 풀숲에 숨기고 도망친 J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음악적 영감의 도취 상태에 빠지고, 미친듯이 음악을 써 내려가 광염소나타의 1악장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 영감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다시 써지지 않는 음악에 극심한 답답함과 압박감을 느낀 J는 지난 밤 차에 치인 그 남자를 찾아, 놀랍게도 아직 살아있었던 그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뒤 자신에게 들려오는 음악을 받아적으며 2악장을 완성한다.
처음은 사고였지만, 이제 J는 살인이 불러오는 음악적 영감을 갈망하며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K는 훌륭한 음악에 대한 탐욕으로 J에게 살인을 강요하고, J는 K의 압박과 음악적 영감에 대한 갈망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살인을 하게 된다. 살인이 계속될수록 수법은 더 잔인해져갔고, 완전히 피폐해진 그는 이제 일반적인 살인에서는 음악적 영감이나 자극을 얻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른다. 그런 그에게 K는 J의 오랜 친구 S를 죽이자는 제안마저 건넨다. J는 결국 S를 찌르고, 제정신을 잃고 죄책감과 광기에 사로잡힌 J는 결국 작업실에 불을 지르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K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말로 J의 살인을, 그리고 공범이자 그를 압박해 살인을 교사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위대한 예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며, 소나타를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예술은 그 자체로 깨지지 않는 가치인가? 진정한 의미의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은 인간 활동의 산물인 동시에 인간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서, 오랜 시간 인간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성이 배제된 예술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살인을 통해 완성된 J의 소나타는 죽음을 청각화한 수준 높은 예술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은 대가로 얻어낸 것이다. 예술이 사람에 우선해도 되는가? 예술의 창작과 향유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의 생각, 경험,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예술이다. 다른 어떤 가치도 차치하고 예술 그 자체가 맹목적인 목적이 된다면 예술의 중심에 자리한 인간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천재라고 칭송받았지만 늘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며 재능 있는 S를 선망하고 질투했던 J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술적 영감’에 극도로 집착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S와 달리 자신은 특별한 예술적 영감이 있어야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던 강렬한 음악적 영감은 우연한 살인으로부터 찾아왔고, 이 영감과 도취의 순간을 위해 J는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J와 S의 대치 상황에서 S는 J에게 음악적 영감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S는 음악적인 성취보다도 음악이라는 예술이 주는 즐거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자유로운 창작이 주는 행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 훌륭한 작품을 써내기 위해 영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J에게 그는 그저 즐거운 음악을 할 것을,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쓸 것을 제안한다.
과거 S와 함께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죽이려던 스스로를 뉘우치던 J는 오히려 그의 이 한 마디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공격한다. J는 자신의 노력과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S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스스로 끝없는 자괴감과 열등감을 키워갔다. 그는 예술의 즐거움을 좇으며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고 믿는 S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천재성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런 그에게 한순간의 천재적인 영감을 선사하는 살인은 끊어내기 어려운 중독과도 같았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시인들은 뮤즈 여신들이 내려준 영감, 즉 광기에 사로잡힌 채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예술적 영감을 일종의 광기로 보는 것이다.
살인 직후 마구 음악을 쏟아내는 J의 모습은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얻은 행복한 예술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깝다. 광기에 사로잡혀 써내려간 소나타는 과연 J의 것이 맞는가?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훌륭한 작품을 써내고 싶었던 J였지만,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어낸 후에도 그는 여전히 불행했다. 영감이 찾아와 미친 듯이 곡을 써내려가던 순간은 기억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는 그 곡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 큰 자괴감을 느끼며 피폐해져만 갔다.
어쩌면 진정한 예술적 천재성은 예술 작품의 창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진정으로 즐기는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하고 행복했던 과거의 J는 영감과 작품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S가 흥얼거린 짧은 멜로디를 엄청난 음악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압박감과 자괴감에 짓눌려 곡을 쓰며 괴로워했고,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에 예술적 영감이라는 허상에 집착한다. 음악이 그저 행복이었던 과거의 J는 어디로 갔을까?
천재성에 대한 J의 환상과 갈망이 곧 아름다운 예술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술적 영감’이라는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져, 결국 가장 중요했던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과 창작의 즐거움은 망각하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그의 열패감이 그에게서 예술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천재성을 앗아갔고, 결국 J는 스스로의 능력을 부정하며 병들어 가고 말았다.
결국 그가 정말 추구해야 했던 ‘예술적 영감’이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꼈던 오래 전 어느 날의 순수했던 마음이었던 것이 아닐까.
[아트인사이트 기고글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