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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Nov 21. 2020

엉뚱하게 돈을 버는 은행들이라면 없는 게 낫다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3)

정부가 고소득자의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아무리 소득이 높아도 현금을 싸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면 부동산을 살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상환 여력이 충분한 사람의 대출까지 막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면 그저 폭군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긴 저신용자의 대출이나 부실해질 염려가 있는 것이지 단순히 상환으로만 본다면 은행에서 알아서 할 일을 국가에서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어쨌든 대출을 조이고 부실한 것이나마 임대주택을 늘린다면, 그것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부동산 가격은 조만간 안정될 것이다.     


그런데 은행이 이렇게 개인을 상대로 이자놀이 장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론에서는 환어음, 순수한 상업신용만이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단순 대부 기능에 불과한 은행신용은 퇴장화폐로 잠겨 있다가 이윤이 많이 창출되는 곳에서 제 몫을 챙겨가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사회의 생산을 확장하는 긍정적인 기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행은 기업보다는 가계에 대출하여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추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으며 기업대출이라 해도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않는 부동산업 같은 데로 흘러간다. 사실 집 가진 개인들은 요즘 부동산 가치가 올라서 흐뭇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자산의 가격도 올라가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세금은 작은 문제다. 반면 은행은 대출 규모가 점점 커지기 때문에 박한 이문이나마 더 챙기게 되어서 부동산 부자들이 부럽지 않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자산 가치 증가에 빨대를 꽂아 몸집을 키워가는 것이 은행이다. 그런 역할이나 고집하려면 지금의 은행이라는 건 없는 게 낫다. 기생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조금 과할까.     

진정한 신용의 기능은 산업자본이 화폐를 공급 받아 경제의 확대재생산 프로세스에 차질이 없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생산설비를 갖추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면 여기에 자금이 들어가도록 만들고, 생산된 제품이 당장 팔리지 않아 현금 부족 사태가 벌어질 때 임시 가교를 놓아주는 것에 은행 본연의 역할이 있다. 이런 역할은 꼭 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은 곳이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삼성 같은 대기업은 100조원의 현금을 항상 쌓아놓고 산다는데 세상에 출몰하지도 않는 유령 같은 돈이다. 그런 돈은 돈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신체의 혈액순환처럼 쓰여야 정상적일 텐데 지금 은행도 그렇고 대기업도 그렇고 엉뚱한 곳에 돈이 들어가거나 응고된 채 방치 중이다.     


현대경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소상공인, 농민, 실업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냥 다양하다고만 말해서는 안 된다. 자본론에 따르면, 경제의 대동맥은 산업자본의 변형 과정인데 화폐자본(가치 증대 전)–상품자본(원료)-생산-상품자본(제품)-화폐자본(가치 증대 후)의 순서로 탈바꿈한다. 신용들이 이러한 흐름에 기여한다면 체제는 순항하는 것이고 엉뚱한 데로 흘러간다면, 당장에는 그냥 이런저런 흐름이 있을 수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결국 동맥에 경화가 일어난다. 은행이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 상승이라는 이벤트에 끼어 거머리처럼 행세한다면 한국경제라는 인체구조는 더욱 활력을 잃어 갈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편입되고 막대한 유휴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산업은행의 역할에 부합한다. 자본의 집적 그 자체는 막을 수 없고 시장 환경을 고려했을 때 막아서도 안 된다.  다만 비행을 저지른 사주일가에게 특혜가 주어지지 않도록 장치를 달아야 한다. 막대한 국가재정이 들어간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이다. 통합된 대한항공은 사실상 국가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경쟁은 더 이상 없으며 유일한 국적기로서 국가의 통제가 필수적이다. 돈만 주고 국가가 쏙 빠질 것 같아 그게 문제다. 양사의 경쟁으로 인한 자원낭비가 없기 때문에 대한항공은 더욱 유리한 위치에 섰으며 코로나에 따른 비상경영을 거쳐 결국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산업은행은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에 1금융권 은행만 수 십 개는 되는 것 같다. 많으면 뭐하겠는가. 서민들에게 꼭 필요할 때 저렴하게 융통할 수 있다면 은행이 많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비슷한 영업행위를 하면서 똑같이 경제에 빨대꽂기를 해서 기생을 한다면 그들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의 재정을 담보로 하는 서민금융 종합기관이 기존 은행의 가계대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능률적이다. 이미 서민금융이라는 제도는 도입되었다. 엉뚱한 곳에 투자해서 제 몸집을 불려가는 은행이라면 이제 집어치우고 똘똘한 서민금융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자산과 소득 측면에서 개인들의 안정성과 형평성을 갖추는 과정과 병행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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