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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Nov 28. 2020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경제가 다른 맥락으로 쓰이다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4)

민간의 경제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겨지면 언론에서는 곧잘 ‘시장경제의 원리에 벗어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글을 실어준다. 예전에는 구시대적 ‘관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썼는데 이런 어투는 조금 예스럽게 느껴지고 요즘은 대체로 시장경제의 원리에 반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쓴다. 결국 인위적인 조치를 해봐도 자본주의의 자연적 조절을 거스를 뿐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라는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아무리 진보적인 학자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면서 상당히 많은 분량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단순 시장과 다르다는 점에 할애하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런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 같다.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의 성실성이 통째로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화폐경제가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화폐경제라 하든 시장경제라 하든 상관없다. 거래가 자연 성장하고 점차 동전, 지폐, 신용화폐에 이르기까지 발전한 것은 자본론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리적으로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런 화폐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봐야 자본주의로 자동 진화하는 것은 아님을 생각하면 자본론에서 설명한 원리 이해가 필수적으로 된다. 고대 로마사회도 시장경제, 화폐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였지만 최종 도착지점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봉건적 장원경제가 되었다. 중국도 당송시대 국제 무역까지 활발했지만 자본주의로 이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농민이 삶의 터전을 상실하고 임금 노동자로 전환하여 공장에서 노동자로 채용될 수 있어야 자본주의가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 아니면 제 아무리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도 자본주의와 거리가 멀다. 상평통보가 대량 유통되고 보부상이 돌아다녀도 그런 것은 자본주의 개념과는 무관하다. 이런 것은 역사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버티면서 유지하는 한국의 자영농은 자본주의가 아니고 노동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리는 자영업자들도 자본주의 개념과는 다르다. 엄격한 개념화는 단지 상아탑의 공상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와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 된다고 어떤 단체장이 줄기차게 포효를 해왔는데 어떤 국책연구기관에서 지역화폐는 지역분할, 예산낭비 요소가 너무 많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전국에서 멀쩡하게 유통되는 한국은행권을 일부 포기하고 지역화폐를 쓰게 되면 당연히 자기 지역만 잘 살자는 이기주의가 반영된다. 처음에는 몇 지역만 지역화폐를 썼으니까 지역 특성이라는 게 있었겠지만 지금은 대부분 지역이 지역화폐를 쓰기 때문에 칸막이 역할만 한다. 각각의 지역이 전자화폐로 성벽을 쌓고 있다. 그 단체장이야 선의로 이런 정책을 한다지만 내 지역만 내가 챙기겠다는 이기주의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우니 지역 분할이라는 반박이 들어오면 갑자기 소상공인들에게 매출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을 부각한다. 종합적이고 논리적인 논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연극 정치,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쿠폰은 화폐의 본질적인 기능 중에서 축적의 기능을 거세하고 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단 물품 교환권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사회의 미덕으로 칭송받는 소비쿠폰은 경제의 말초신경을 일시적으로 자극해주는 것이다. 솜씨 좋은 마사지를 받으면 당연히 시원하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재생산을 위한 투자와는 무관하다. 이런 제도들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추진할까 의문스럽지만 진짜로 지역화폐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결국 고립된 봉건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어차피 조금 하다가 연극 효과가 떨어지면 그만둘 것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직접 영향을 주는 행위는 따로 있다. 소상공인이 전통시장에서 재료를 매입하면 10% 할인 효과를 주는 제도가 마침내 시행되었는데 이런 것은 제대로 주목받지 않고 있다. 이것은 소비에도 영향을 주고 생산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은 소규모 음식점에만 희소식이겠지만 개념적으로 보면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기업의 원가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원재료 매입비의 일부를 국가가 일반적으로 보조해주는 제도의 도입 그 자체가 중요하다. 기업의 생산에 국가가 직접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그 개념이 중요하다. 


모바일 온누리상품권에 상시적으로 10% 혜택을 준다 해도 몇 가지 장애물은 있다. 왜 하필 전통시장 내에 있는 가게에서만 사야하는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단지 전통시장에 인접한 점포에 사업자를 내는 것이 특별한 혜택의 기준이어야 하는지? 10% 원가절감이라는 희대의 오아시스를 만나려면 오아시스 구역에 사업자만 등록하면 된다. 정말 큰 혜택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만약 내가 전통시장 내에 인력사무소를 설치한다면? 나는 고객에게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를 받기 때문에 다른 인력사무소보다 10%의 가격경쟁력을 가진다. 똑같은 인력을 파견할 수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된다. 왜 그 지역에만 혜택을 주는지 정말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금은 제도를 그냥 내지르듯 시행한 것 같다. 자본론의 개념 따위와는 아무 상관없이 시행되고 있는 제도이지만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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