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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Dec 05. 2020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좋은 거라는 착각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5)

흘러간 유행가 같은 것들을 자꾸 부르다보면 그 가사에 대해 쓸데없이 오해를 하게 된다. 며칠 전 RCEP 협정을 타결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것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자유무역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 고장 났던 레코드가 부질없이 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유무역은 절대선인 것처럼 포장해서 쓸 수 없고, 설령 자유무역이라는 거창한 이념이 거의 완전하게 실현된다고 하여 우리 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의 언급은 그저 아무말대잔치에서 그럴 듯한 말을 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의미도 느낌도 진정성도 없다. 흘러간 유행가 같은 가사들, 솔직히 말하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 같이 느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2권, 3권에서 여러 차례 중농주의와 중상주의에 대해 깊이 분석을 해놓았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최근의 경제학에서도 다각도로 분석을 해놓은 게 있겠지만, 무역의 측면에서 보면, 중농주의는 국내 생산을 중시하는 보호무역주의에 가깝고 중상주의는 무역의 이점을 더 많이 활용하자는 자유무역주의에 가깝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란 게 없다. 단지 시대의 요구에 따라, 국내 생산의 경쟁력에 따라 그 배합 비율이 정해지는 것이다. 19세기 내내 유럽이 그런 시소를 탔고 지금 한국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자유무역이라는 말에 ‘자유’라는 말이 있으니까 더 좋은 것 같지만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생각이다. 민족과 개인이 지녀야 할 존엄이라는 차원에서의 ‘자유’와 국제무역에서의 ‘자유’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굳이 선후 관계를 따지자면 중농주의가 잉여가치의 생산이라는 근본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개념적인 우월성이 있고 중상주의는 생산 이후에 벌어지는 사후적인 조치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열등하다. 단지 학문적인 개념의 발전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문재인의 근본 없는 자유무역 정책이 트럼프의 국내 생산보호 정책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 전 세계적인 무역 급감과 더불어 급격히 국가 간 장벽이 올라가고 자국의 내실을 중히 여기는 조건에서 아직까지도 무역만이 살 길이라는데 할 말이 없다. 다들 죽는 길로 뛰어 들면 본인도 죽는 것이다. 해 본 게 도둑질이라고, 이렇게 살다 죽자는 것밖에 안 된다. 자유무역이 그렇게 대단한 이념인지 진지하게 생각했을 리도 없지만 그러한 이념 자체도 허상이다. 진즉 자본론이 출간되면서 150년 전에 다 끝난 얘기다.

     

기본적으로 전 산업에서 수익이 안 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무슨 장사를 해도 안 된다. 이걸 마르크스는 고상한 말로 “평균이윤율이 추세적으로 저하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수십년간 이어진 평균이윤율 저하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자율은 이윤율의 자식이지만, 아버지 이윤율보다 표현이 더 뚜렷한 이자율을 보면 그 장기적인 추세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년 전의 10% 대 이자율은 어느 새 1% 대로 떨어졌다. 이런 시국에도 마스크를 팔아 돈을 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대단한 아이템을 발굴하여 성공한 사람이야 어디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좋은 시대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갑자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 이를 정부가 사실상 용인한 것은 화폐들의 진로가 꽉 막혀 있다 보니 그걸 뚫어보려고 폭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본 것이 아닐까 한다. 1% 이윤율, 1% 성장을 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함선의 항로가 보장받기는 어렵다. 어차피 침몰할 것, 그냥 한 몫 챙기자는 심리다. 주식시장이라는 곳도 비슷하게 돌아간다. 현실 경제는 완전히 바닥인데 투전판처럼 이런 곳들이 뜨거워져 있다는 것이 요상하다. 예전에도 이렇게 현실과 투전판이 따로 움직인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극단적인 대조를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침몰 직전의 마지막 만찬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진로가 막혀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간 화폐들은 물론 화폐자본과 다른 것이다. 화폐는 몰역사적으로 선사시대 이후부터 계속 사용된 것들을 말하고, 화폐자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말하는 생산자본의 변형 형태 중 하나를 지칭한다. 생산에서 퇴출되어 더 이상 자본이기를 포기한 화폐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다. M-C-P-C-M의 도식으로 끊임없이 흘러가 그 규모도 확대 재생산되어야 할 것들이 외부로 유출된다. 유출의 규모가 방대하여 중심이 되어야 할 생산양식 자체를 초라하게 만든다. 삼성 같은 대기업은 아예 퇴장한 화폐를 자기네 계좌에 어마아마하게 쌓아 놨다. 출로가 있다면 M-C-P-C-M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마련될 것이다. 즉 기존 생산양식 자체의 엔진은 꺼졌다. 지금은 그저 관성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심장의 맥박이 거의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 웨이트 트레이닝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유무역을 100번을 하든 1,000번을 하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내가 내 힘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자유무역이라는 것은 우스워진다. 자유무역 운운 칭송하면 RCEP의 종주국인 중국이야 한국이 귀엽겠지만 우리는 그렇잖아도 어려운 생산 분야에 좋을 것이 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 채 시진핑의 자유무역 주장을 따라 복창하는 그를 보면 눈물겹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지도자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도 낯이 두껍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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