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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Dec 10. 2020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는 착각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6)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철학적인 내용들도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어떤 사물도 관계 속에서 제 자리를 찾는다는 것인데 특히 그 관계는 이름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포착된다. 문제는 이런 관점을 끝까지 추구하게 되면 세상에 실체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실체라는 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아예 싹도 없는 것이다. 물론 관계가 아니면 실체는 파악될 리가 없다. 그러나 확실히 못 박아 두자. 관계 전에 실체가 선행한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도 엄연히 꽃은 존재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과학적으로 파악함은 관계 이전에 실체를 인정한다는 근본 가정에서 출발한다. 서양철학사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까지 이 근본가정을 버린 사람은 없었다. 마르크스는 그들의 큰 아들이다. 재화가 생산되어 그것이 팔렸을 때 진정한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지만 이미 재화가 생산되었을 때부터 그 가치의 근본성은 내재하고 있었다. 판매, 유통은 자본주의 유기체의 필수 구성품이다. 하지만 선후 관계로 볼 때 생산의 후미에 서 있다. 마케팅, 홍보, 유통 다 중요하다. 하지만 창조는 아니다. 이것을 착각할 때 개념의 혼란이 온다.     


마르크스는 유통에 드는 수고를 ‘발화노동’이라는 개념으로 비유하여 설명한다(자본론 2권, 제6장 유통비용). 이것도 인간의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것이라 일종의 일인 것은 틀림없다. 석탄의 탄소 분자가 개별 원자로 분열되는 것이 연소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떠올려본다. 이 분열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열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을 빼앗아간다. 발화 시점에서 연소에 필요한 에너지가 투입되듯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도 거래 시점에서 상행위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시간의 삭감이며 그 행위의 결과, 가치가 창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상거래 행위가 축제일이 될 때까지 보류되었다. 축제일에는 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시간의 손실이 없게 되는 원리다.      


도소매에 종사하는 수백만의 종사자들은 과연 뭐란 말인가? 상업에 지출하는 시간은 가치의 생산에 불을 붙여내듯 기여하지만 생산물의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이마트, 이마트가 아무리 큰 매장을 차려서 대규모 인력을 고용한다고 해도 그것은 전체 생산된 상품 가치의 일부를 가져가는 역할만 한다. 유통은 가치 창조를 하지 않으며 생산 손실을 방지하는 정도로 소극적 역할만 한다. 온라인 거래가 완전한 형태까지 수렴된다면 개별 공장이 거래에 쓰는 비용은 소멸될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온다고 해도 자본주의의 상품 생산의 기본 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다.     


재고의 형성과 보관도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과 무관하다. 재고가 들어가는 컨테이너, 창고를 운영하면 해로운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재고가 사회적으로 집중되어 있으면 재고가 빨리 소진될 것이고 이에 따라 보관비용은 줄어든다. 보관비용은 생산물의 형성에 기여하지 않고 생산물에게 일부 가치를 공제하는 역할만 한다.      


상품생산을 둘러싼 매입과 매출이 백번, 천번 발생하여도 가치 형성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가치이론의 탑은 백일하에 솟아있어서 다른 것들은 명함도 못 내민다. 김춘수의 꽃이 백번 피고 졌다 하더라도 가치의 샘에서는 영원히 샘물이 솟아오른다. 엄밀하게 구성된 개념을 승인하고 겸허하게 학문을 한다면 영원한 샘물을 받아 마실 수 있지만, 이런 것을 번거롭게 여기고 동어반복, 통계수치 놀음 같은 것만 하고 있다면 학문은커녕 천박함 속에 주저앉아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 생산 영역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운수비용이라는 것은 생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더 세분화하여 포장, 제품 분류까지 말하는 것은 문제를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겠지만 일단 운수, 배송은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된다. 상업적인 교환과 상품 운송을 엄격하게 분리하여 고찰한다. 섬세하게 세부사항을 두드려가며 점검하면서도 개념의 큰 가지를 움켜쥐는 그의 노련함이란! 눈이 너무 높아져버린다는 단점도 있다. 쓸데없는 감상 같은 것을 늘어놓으며 그런 것이 마치 학문인양 내놓는 사람들에 대해 태연히 상종하기는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춘수의 시 ‘꽃’을 다시 읽어본다. 그 시는 참 좋다만 상대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편향성을 더욱 심화해서는 정말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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