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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Dec 25. 2020

소비자 신용 거래의 허상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8)

한국은 신용카드 천국이다. 서울에서 시골까지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가게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사업주들은 특정 카드사와 거래하지 않고 단말기 회사를 거쳐 대부분의 신용카드를 취급한다. 극소수의 이발소, 세탁소 같은 곳을 빼면 대한민국은 가히 신용거래의 천국이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을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점포들도 있다. 현금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다. 겉모습만 보면 대단한 신용사회가 확립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신용거래에는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계약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약 1%의 결제 수수료를 카드사와 밴사에 납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1%라고 하면 작은 것 같지만 매출액 전체의 1%라고 한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사업주가 부담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돈은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소비자가 플라스틱 한 장만 들고 다니면 어디서든 결제를 한다는 게 편리하지만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매출액의 1%씩 사회적 비용을 반드시 발생시키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생산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산업부문이 비대화하여 수십 년간 생산적인 산업의 부가가치를 빼앗아왔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이런 식으로 흡혈산업을 방치해 두지는 않는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 5편에서 진정한 신용제도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상업신용이며 이를 대표하는 것은 환어음이라고 설명한다. 환어음이란 확정지불일을 가진 채무증서를 말한다. 자본가가 상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기 전에는 화폐가 유입되지 않기 때문에 연속적인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상업신용이 없다면 M-C-P-C-M에서 C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한에서는 추가적인 생산이 중지된다. 만약 외부에서 M이 유입된다면 각 단계 생산이 가속화될 것이다. 이 부분을 상업신용이 환어음의 형태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물론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연속적으로 신용거래를 했던 사람들 전체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겠지만. 어쨌든 신용거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윤활유로서 기능하는 것이 사실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신용거래로만 한정하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의 불확실성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19세기부터 주기적으로 공황이 출몰하였고 이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경제권이 몰락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경제활동의 복잡성을 자꾸 확대하면 할수록 정부를 비롯한 정책 단위에서 어떤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기업들만 신용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계들까지 신용거래를 자꾸 확대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가계는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으로 가까운 미래를 대비하는 정도의 신용으로도 충분하다. 없는 빚을 내어 주식을 사고 20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도록 사회가 강제한다면 결국 엉뚱한 위험 요소만 불러온다. 당장 금융기관의 이자 수입만 늘려준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집 가진 사람은 좋을 것 같지만 쾌재를 부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회사가 개인에게 제공하는 신용이라는 것은 전근대에 성행한 고리대업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전근대의 고리대업은 화폐가 넉넉한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거래처였을 것이다. 빚에 쪼들린 서민들에게는 고리대업이라는 것이 대단한 화두가 됐겠지만 대부분의 개인들이 여기에 연루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금융기관은 고리대업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사회의 부를 걷어간다. 멀쩡한 사람도 카드 3개월 할부제도를 활용한다. 한국의 세무당국은 신용거래를 하면 소득공제 혜택을 어마어마하게 준다. 신용이라는 명목 하에 온 사회가 헤어나지를 못하는 형편이다.      


3개월, 6개월 정도 신용카드 회사가 주는 여유라는 것이 순기능이라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몇 달의 말미를 주는 신용거래 정도라면 꼭 사기업이 아니어도 서민금융기관의 제도적 장치로 대체해도 된다. 카드결제액에 대해 엄청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것은 이제 그만 둬야 한다. 카드사의 판촉 행위를 국가가 나서서 하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럽다. 제로페이와 같은 대체 결제수단도 이제 광범위하게 마련되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가 없어도 세원 노출이 축소되지 않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수십 개의 신용카드 회사, 밴사, PG사 이런 구질구질한 회사들은 장기적으로는 쓸모가 없게 됐다. 그런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신용카드가 아니라 본격적인 전자화폐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웃 중국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신용 거래 도입이 늦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사실이 아니게 됐다. 중앙은행이 전자화폐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제로페이와 같은 결제시스템이 광범위하게 정착되고 있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화폐의 범위 내에서 건전하게 소비하고 돈이 없으면 절약하는 것, 그것이 정상이다. 한도를 1,000만원씩 늘려놓고 일단 질러볼 수 있게 해 두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만 높아진다. 의료비, 학비, 주택구입비처럼 목돈이 들어갈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다른 나라들도 다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 테니까.     


단사표음(簞食瓢飮) 같은 청빈한 생활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소득은 일정 기간 내에 소비되어 다시 사회로 환류되는 것으로 가정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질병의 위험, 노후의 위험 같은 것을 고려해서 자산을 쌓아둘 수밖에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채무불이행이라는 절벽 앞에서 소비하는 것도 불행하지만, 이제는 불필요해진 신용 기능에 계속 매달려서 제한된 안전을 획득하고 겨우 한숨이나 쉬는 것도 참 불행하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큰 일 날 것 같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거머리를 떼어내어 일단 기업 매출의 1%를 돌려주는 것, 지금이라도 당장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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