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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Jan 06. 2021

원화와 소비쿠폰으로 이분화되는 한국 화폐

자본론의 개념을 적용한 생활경제(10)

재난지원금을 보편적으로 동일하게 지급하라는 주장이 쏙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장은 일각에서 주장되던 보편적 복지라는 거대 담론에서 파생된 것인데, 애초의 큰 담론 자체를 현 체제 내에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라는 근본 질문을 해볼 것도 없다. 왜냐하면 부분적인 주장을 전체 모델에서 분리시켜 지금 당장 지급되는 소비쿠폰을 전국에 동일하게 뿌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찬반 논의가 많았지만 논증 자체의 정합성만 따져 봐도 당장의 보편적 재난지원금 주장은 설 곳이 없다.    

  

어설프게 이념을 갖다 붙일 필요가 없다. 돈이라는 것은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시기에 투입되는 것이 좋다. 부자나 빈자나 똑같이 지원금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성이 없다. 단지 홍보효과나 분배의 편의성 같은 거라면 길게 듣고 싶지 않다. 마케팅이라면 너무 지긋지긋하고 제도적인 수단이라면 조금만 연구해봐도 답이 나온다. 보편지급을 해버리면 소비활성화에도 기여하기 어렵다. 통장에 1,000만원을 쌓아 놓은 사람에게 쿠폰 100만원을 지급하면 그저 인출 계좌만 달라지는 것이다. 현금 부자에게는 쿠폰 유효기간을 매우 짧게 주어서 돈을 짜낸다면 효과가 좀 있겠지만 아무래도 우스꽝스럽다.     


자본론에서 말하는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개념에서 재난지원금이라는 놈의 근본 성격이 쉽게 파악된다. 공식은 LP-M-C로 정리되는데 우리말로 풀어 쓰면 노동자가 화폐를 임금으로 받아서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한다는 뜻이다.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돈을 뿌려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소비쿠폰, 재난지원금이다. 노동자가 아니라 소상공인에게 뿌려지는 소비쿠폰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기본 생활을 영위해야 직장에 출근도 할 수 있고 다른 소비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쿠폰이 소비되어 소상공인에게 지급된다면 쿠폰의 실질 소득 증대 효과는 1.2배 정도로 계산될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의 기본 공식인 M-C-P-C-M과 LP-M-C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자본이 증식되는 방향으로 공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임금을 받아 그것으로 생필품을 구매하는 모습이다. 당연히 그 둘은 한국 경제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분리시켜서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개념 고찰을 위해서는 이런 분리가 꼭 필요하다. 전자는 확대재생산을 위해 화폐의 기본 기능(매개, 축적, 지급)을 모두 만족해야 하지만 후자는 단순히 지급 기능만 충족하면 된다. 쿠폰을 주어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라면 달러나 원화가 필요 없다. 지역에서만 쓰는 화폐가 좋다고 하지만 단순히 상품 교환권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모바일 전자 교환권이라면 더욱 기가 막히게 유통이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쿠폰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순식간에 파악되어 정책 집행과 피드백이 용이할 것이다.     


소비쿠폰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원화로 자금을 집행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원화로 통장에 꽂아주면 임차료를 내지 못해 끙끙대던 소상공인에게는 잠시 도움이 되겠지만 소비 효과가 직접 발생하는 소비쿠폰에 비하면 단기적 효과가 훨씬 약하게 나타난다. 코로나로 갑자기 가게를 접어야 한다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금 지원금 받아서 월세 내려고 하면 답이 안 나온다. 거대한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으며 말단에 있는 자영업자들까지 순식간에 재편하는 방식으로 태풍이 부는데 부표 하나 붙잡게 됐다고 좋아해서 되겠는가. 자영업자 스스로가 하루빨리 거리두기 3단계를 실시해서 짧게 빨리 끝내자고 하는 판에 태풍은 필연적이다. 백신 투여로 집단면역이 달성되는 내년 가을까지 태풍은 한반도에 머물러 있을 것이 예고된다.     


짧고 굵게 코로나를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신화에 가깝다. 봄과 여름에 일정 정도 소강상태가 왔던 것을 경험하면서 진짜로 마음만 먹으면 이 사태를 끝낼 수 있을 것처럼 전 사회가 도취되었다. 그 때도 끝내는 건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더욱 불가능하다. 아무리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껴 봐도 잔인한 겨울은 끝나지 않는다. 백신을 쓰든 무슨 수를 쓰든 집단면역이 아니면 안 된다. 과학을 믿어야지 신화를 믿어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라도 장기 포석을 깔아야 한다.     


재정으로 소비쿠폰을 발행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제 주기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추경을 몇 번이나 집행했으면서도 내년 정초부터 지원금이 나온다. 보편지원은 이제 주장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타겟팅을 해서 해당 되는 사람을 찾아서 준다. 동시에 엄청난 정책자금 대출을 진행한다. 지원금으로는 생활비 정도 하는 거고 결국 가계대출은 끝간 데 없이 폭증한다. 온통 사회가 부실 덩어리로 바뀌고 있는데 대책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M-C-P-C-M으로 공장을 돌리는 대기업들은 어떨까?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온누리상품권을 백화점이나 대기업에서 직접 결제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들의 목적은 하청 노동자들의 생활비 용도였다. 그들이 힘들어도 회사에 출근해서 생산 체제가 가동할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없다. 분배된 상품권은 소매점을 통해 소비재 생산 분야로 들어오기도 하고 생산재 생산 분야의 인건비 절약에도 활용된다. 재주는 곰이 부리지만 웃는 것은 결국 왕서방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쓰지는 않겠다. 오히려 원화보다 저급한 쿠폰이 생겨서 원화는 지위가 높아졌다. 서민들은 원화를 만져보기 어려워질 것이고 쿠폰이나 교환권으로 연명하는 날이 오게 되었다. 원화를 쓰는 사람과 쿠폰을 쓰는 사람으로 사회가 이분화된다. 당장은 그렇게 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겠지만 머지않아 그런 세상이 도래하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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