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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Feb 06. 2021

좀 도와줄래요?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2)

하나옷수선 사장님만 그런 건 아니고 옷 수선이라는 업종 자체가 하나의 떳떳한 직업군으로 생존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동네 골목골목마다 세탁소, 수선집은 하나씩 있었고 사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우리 부모님도 수선집을 했었다. 그때도 사양산업이라고 했고 그래서 우리집도 그 일을 관두고 다른 일을 했지만 수선집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대세는 세탁소 업무에 부가된 수선이지 수선 자체가 독립적이기는 어려운데 하나옷수선 사장님은 수선일만 전문으로 한다.     


처음에 소상공인 컨설팅을 신청하시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말씀을 드렸지만 전화를 끊으면서 했던 말만 기억이 남는다. “그러면 좀 도와줄래요?” 평범한 의문문이지만 그 어미의 끝에 물기 같은 게 촉촉이 젖어 있었다. 보통 전화 상담을 마무리할 때에는 “그럼 한 번 와보세요.”라든지 “문제는 없겠죠?”라든지 영업자인 나와 사장님은 대등한 지평에서 협상을 진행한다. 내가 그 분들을 만나본 적도 없고 나도 그 분들에게 밥 한 술 얻어먹어 본 적 없는 처지에서 피차 꿀릴 것이 없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를 낮추고 도움을 요청하는 그 분의 말씀은 도리어 내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진지한 미션이로구나.     


구로구 항동이라. 서울의 맨 끄트머리, 부천과 맞닿은 동네인데 최근에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 외형은 그럴싸하지만 상권은 제대로 형성되기 전 상태였다. 대형 아파트의 전면에 돌출된 상가에 옷수선이 입주해있는데 면적은 8평도 넘어 보였다. 미싱이라든지 옷감 부자재류는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지만 솔직히 너무 큰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신축 상가 1층에,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 임차료 부담은 당연히 많게 된다. 잘 나가는 부동산 중개인 정도 된다면 몰라도 수선집이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는 부담스럽다. 장사가 당장 될 리도 없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하루에 1만원 매출일 때도 많고 어떤 날은 3천원 벌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공간을 부동산 중개인의 배려로 임차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것이 좀 수상하였다. 공간 비용을 절감하는데 기여한 전대차인이 본래 임차인에게 꿀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사장님은 분명 돈을 내는 사람이고 갑이면 갑이 되어야지 을이 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뭔가 억눌리고 조임을 당한 것 같은 분위기가 전해졌다. 그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분의 연세는 60이 넘었는데 가족은 없으며 소득은커녕 통장에 100만원 남짓 넣어놓고 바들바들 떨면서 살고 있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벌지는 못하고 자택, 가게 임차료 부담에 있던 돈도 까먹고 사는 것이었다.     


컨설팅이고 뭐고 관두고 둘이서 주민센터에 가자고 하였다. 주거, 생계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미리 확인하고 서류를 챙겨서 담당 복지계로 찾아갔다. 거기에서 추가로 서류를 준비하면서 사장님의 아픈 과거를 많이 알게 되었다. 한 번의 혼인과 이혼, 스물이 훨씬 넘은 아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만 고인으로 나온다는 것, 가족관계증명서 ‘일반’과 달리 ‘상세’에는 알고 싶지 않은 과거의 케케묵은 때까지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들과의 인적 교류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진술서 형태로 적어서 부양의무자의 부양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는 것까지 밝혀야 일이 진행된다. 수 십 장이 되는 서류 중에는 이런 것까지 포함돼있다. 그래서 수급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쓸쓸히 고독사하는 것이리라.      


주민센터 복지계의 공무원에 대해서는 글쎄, 평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 날 나는 몹시 흥분했다.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인지. 장사 하루에 1만원도 못 파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꾸 소득이 얼마냐고 묻는다. 임차료도 빚을 내서 충당한다고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알고 싶지 않은 것인지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소득은 없고 조금씩 대출을 해서 버티고 있다고 설명해도 나중에 대출 잔액 쓰는 칸은 생략해버린다. 내가 그 칸을 지적하면서 채워야 한다니까 그제서야 끄적끄적. 대출 잔액 250만원이라고 했는데 0을 하나 빼먹어서 25만원이라고 쓰지를 않나. 동행한 내가 누군지 묻는 모양새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하여튼 눈에 띄게 엉터리라 여겨졌다.      


일단 노년층과 파트너가 되어서 일을 하려면 그 분의 표정과 어휘에 주목해서 그 분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사투리도 빨리 알아들어야지 뭔 소린지 모르면서 어벙하게 앉아 있으면 상담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등따숩고 배부르게 사는 노인들이야 젊은이들보다 더 교양 있고 말도 잘 할 수 있겠지만. 수급자가 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하우, 정성이 필요하다. 얼마 전 코로나로 경북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긴 환자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는 서울 의료진의 고충도 이해할만 하다. 의사, 간호사들은 의사소통 측면에서 이렇게 디테일한 전문성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영업자들은 그것을 한다. 아무리 누추하고 불편한 자리에서도 고객을 이해하고 배려할 책임이 있다. 노인들의 아픈 곳이 너무 시리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 보드랍게 감싸지 않으면 영업 자체가 파토난다. 그래서 영업은 직업 중에서도 직업, 화려한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65세가 아직 도래하지 않아 생계급여는 어쩌면 힘들 수도 있지만 주거급여는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왔다. 자격이 확정되는 데 약 2개월이 걸린다고 했지만 머잖아 하나옷수선 사장님은 생활 비용 일부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장사가 잘 되도록 도와 드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백약이 무효인 시대에 지자체의 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게 큰 도움이다. 그 서류 한 장을 준비하지 못해서 받아야 할 급여를 못 받는 사람들이 전국에 또 얼마나 많을까. 공무원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걸 세심하게 챙겨줄 사람은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사람들의 혹독한 겨울나기의 속살을 나는 얼마나 진지하게 들여다 본 것일까. 싸라기 눈이 내리던 항동 주민센터를 나오는 사장님, 그 벗겨진 머리가 더욱 시리게 느껴졌다.     


(이 글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은 모두 임의로 설정된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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