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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Feb 13. 2021

대출 받는 거, 우리 아들한테는 비밀이야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3)

치킨마니아에서 한참을 상담을 하고 나서 보니까 내가 상담한 분은 가게 사장님이 아니라 그 아드님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글쎄 사업자등록증에 대표자로 찍혀 있는 분의 출생연대는 1940년대였고 성별도 여성이었으니까 내가 만난 분이 사업자일 리는 없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미팅을 진행하는 것이 이 바닥에서는 자주 이루어지는 일이다. 놀랄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는 다반사지만 노모와 아들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일을 해야 한다는 불편함은 분명히 감수해야 했다.


2일차 미팅 때에는 노모가 전면에 나왔다. 그제는 몇 번이나 당신께 전화를 했었는데 통화가 안 되었다. 아들 말로는 분명히 집에 계셨는데 휴대폰 전화를 1시간이나 받지 않았다니 어쩌면 나를 회피하는 것 아닐까 걱정됐다. 그랬던 분이 오늘은 내 앞에 떡하니 나와 있다. 물론 오늘 전화 통화도 힘들었다. 휴대전화를 몇 번이나 하다가 결국 아들에게 물어봐서 집 전화로 걸었다. 어렵게 통화가 돼서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가는귀가 시원찮다는 것이 본인의 해명이었다. 아직까지 사업을 하신다고 해도 해방 전에 태어난 분이 귀도 멀쩡하고 전화도 따박따박 받으리라고 짐작한 내가 바보였다. 통화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는 노인의 말씀에 내가 더 미안했다.


치킨마니아라는 사업은 듣자하니 아들 때문에 그냥 떠안은 것 같고 대부분의 사업소득은 임대소득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치킨은 만들 생각이 없고 오로지 건물 임대에 대한 것만 관심이 있었다. 정리해보면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를 내가 대면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선망하고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계신다고요? 물론 내 전문 분야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상담은 계속 된다. 


작년 말에는 노부부, 아들까지 3가족 모두가 코로나 의심환자가 되어서 혼쭐이 났다고 했다. 영감님은 소싯적부터 조금만 콧물이 나도 병원에 가는 것이 체질화된 분이라고 했다. 동네 의원에 가서 열을 쟀더니 아뿔싸! 열이 난다! 그렇다면 그 가족들도 모두 의심환자가 된다. 당장 사장님 본인이 캡슐 같은데 봉인되어서 음압병실에 실려 갔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공기 순환이 전혀 안 되는 공간에서 2주일 동안 큰 고생을 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의심된다며 구급차에 실려가 이상한 공간에서 격폐되었던 사장님. 젊은 사람들도 힘들었을 텐데 중늙은이야 오죽할까.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간 아드님은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다. 


이때 영업자인 나는 컨설팅 대상자인 사장님의 고생을 치하해야할까?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음압병실이라는 곳에 나는 가본적도 없지만 평소에 들어온 폐쇄공포증에 대한 설(說)을 풀어서 사장님의 당시 곤란함을 이해해본다. 다만 아드님에 대한 걱정은 필수다. 젊은 사람을 그런데다 가두어 둔 정부의 처사에 한껏 펀치를 날린다. 멀쩡한 사람을 다짜고짜 가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혈기왕성한 사십 대 남자를 그런데다 2주일씩이나 가두어두다니요? 말을 내뱉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황망한 일을 겪은 노모보다 아들의 어려움이 몇 배나 크게 전달된 것 같다. 내가 좀 오버했나? 뭐 그다지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여기까지만 보면 불쌍한 노인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것은 결코 아니다. 사장님이 필요한 서류를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가 필요하다고 내가 말하자, 본인 소유 건물에 입주해있는 세입자들의 사무실을 하나씩 치고 들어가 당당히 요구하는 여장부의 몰골이 나타난다. 변변찮은 출입구도 마련해놓지 않은 사장님은 그 핑계로 어떤 컴퓨터 수리점 사무실(세입자)을 관통하여 외부로 나간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의 중개사 사장님이 직접 쓰시는 컴퓨터를 보더니 나더러 거기 타고 앉아 업무를 봐도 된다고 지시를 한다. 한 며칠 물이 얼어 화장실이 못쓰게 됐다고 투덜대는 중개사(그도 세입자다)의 말은 중간에 끊고 프린터나 좀 쓰게 해달란다. 어쩐지 이 건물 안에서 이 분의 말은 좀 억지스러운 거 같은데 잘 통한다. 사장님과 이 건물 안을 휘젓고 다녀보니까 어쩐지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유람을 하는 느낌이 든다.


프랜차이즈 치킨점은 작년 ‘코로나 의심 소동’ 덕분에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식구들이 몽땅 119에 끌려간 판에 장사가 될 수 있나? 배달이고 뭐고 싹 중단돼버렸다. 아드님은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지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였다. 본인 소유 건물에서 임대가 안 된 부분을 활용하여 아드님이 작년 가을에 반짝 사업을 해보려다 갑자기 올스톱된 것이다. 코로나 감염 소동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저 울고 싶었는데 뺨을 때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아드님은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하고서는 가게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졌다고 하였다. 다시 사장님의 소유로 되어 있는 제주 농장으로 떠났다. 거기에서 조용히 공부를 개시하였다. “아드님이 가게를 내팽개친 게 아니라 다시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고 한 거였군요.” 나는 사장님의 마음을 은근히 달래본다. 이 연배 여성 사장님들께 아들 욕을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내 공감 작전이 성공한 것 같다. 프랜차이즈 위약금 납부 의무를 던져놓고 떠난 아드님을 나는 정말 비난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나는 사장님의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을 위해 필요한 요건을 챙겨드리는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 사장님은 그 결과물을 아드님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단단한 찰떡처럼 느껴졌던 둘의 관계에도 애로사항은 있나보다. 아드님보다는 영업자와만 공유하는 비밀이 생기다니. 코로나는 가난한 가정도 병들게 하지만 부잣집 가정에도 차가운 응달이 지게 한다. 코로나 자체는 이 가족에게 코믹한 에피소드로만 스쳐갔지만 가족 간의 신뢰의 문제는 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코로나의 공포는 그저 유령처럼 떠도는 것이지 결코 현실의 공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믿는다. 코로나 후유증 걱정은 사치에 가깝다. 진짜 후유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앞에 닥친 실존적 고민은 결코 아니다. 반면 실질적인 공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부의 강제 조치로 인해 가게를 열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면 그 가족 구성원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하층민으로 전락한다. 아이를 돌보지 못해 방임을 하다가 혼자 지친 아이가 편의점 사장님에게 소변 묻은 바지를 보여주면 거대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 이런 건 지금 당장의 현실이다. 


코로나 파동 1년이 넘었다. 언제쯤이나 돼야 비현실적인 공포가 우리 목을 짓누르지 않게 될까.


(이 글에 나오는 고유명사들은 모두 임의로 설정된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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