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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Feb 20. 2021

지역화폐에 숨어 있는 K-가면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4)

제로페이가 도입된 것은 2018년 말이었다. 예산이 집행되려면 최소한 전년도 예산안에 반영이 되었어야 하므로 우리 정부 차원에서 간편결제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확정한 것은 2017년으로 된다. 스마트폰에 들어있는 전자적 방식의 쿠폰을 사용한 것은 민간으로 보면 이보다 훨씬 앞서는 시점이다. 무슨 페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지금도 넘쳐난다. 하지만 2020년이 오기까지 민이나 관이나 간편결제를 완전히 보편적인 것으로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커피나 음료 같은 거 살 때 약간의 쿠폰을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였는데 이는 중국의 알리페이와 같은 보편화된 결제시스템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간편결제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는 다른 글에서 간략하게 소개한 바가 있다.     


제로페이라는 결제시스템과 함께 쓰이는 지역화폐라는 것에 대해 오늘은 주목해보고자 한다. 두 가지를 혼재해서 쓰는 경향도 있지만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르다. 제로페이는 하나의 시스템이고 지역화폐는 그 시스템에 담기는 내용물이다. 2020년 이후 제로페이가 어느 정도 정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화폐라는 놈이 어떤 식으로든 서울을 중심으로 자주 활용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른바 서울사랑상품권이다. 보통은 서울시 전체에서 사용하지 않고 강서구 같으면 강서사랑상품권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된다. 2020년에 이것이 재난지원금이라며 무상으로 풀리면서 가맹점이 급격히 늘어났다. 또 그 해 하반기에는 7%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이듬해 2월에는 1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이렇게 해서 점점 뭇 사람들에게 제로페이가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오해하지는 말자. 단지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강서구에만 2021년 약 26억 원이 상품권 형태로 예산이 집행된다고 한다. 10% 할인 적용이라면 총 유통액은 260억 원이 될 것이다. 골목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 전역에서 2월 초부터 상품권 예산을 집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인된 상품권을 빨리 유통시키면 아무래도 소상공인들의 매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예상이다. 정말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 효과가 대단하다면 벌써 논문이라든지 보도라든지 떠들썩하게 됐을 테니까 말이다. 오히려 몇 가지 측면에서는 상품권의 유통이 당장의 소비 진작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추측을 다음의 논증에서 밝혀보겠다.     


공무원들은 빨리 예산을 집행했기 때문에 그 현금들이 골목상권 깊숙이 치고 들어가 사장님들의 매출에 도움이 됐을 거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상품권을 현금으로 몇 십 만원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좀 여유가 있는 사람인데 당장 전국 어디서든 쓸 수 있는 한국은행권을 굳이 강서구에서만 쓸 수 있는 쿠폰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런 행위가 강서구에서만 벌어졌나? 그렇지 않다. 서울 대부분의 구에서, 전국에서 다들 자기 동네에서만 유통되는 상품권을 유통하고 있다. 예산 지출액의 약 9배 수준의 한국은행권이 자치단체 세외수입으로 도리어 흡수된다. 돈을 풀어도 모자랄 판에 돈을 대규모로 거둔다? 개인이 지역화폐를 쓰더라도 그 풀리는 속도는 예산 집행에 비할 것이 아니다. 어렵게 동네 상품권으로 바꾸어놓은 사람은 아등바등 지역에서만 결제를 해야 하는 지경이다. 과연 전국적인 차원에서 소비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리고 그 유효기간이 5년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21년에 구매한 지역상품권은 2026년에나 소비해도 충분하다. 지속적으로 상품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상품권이 소비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지만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상품권을 스마트폰에 넣어두고 쓰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몇 분의 전자지갑을 들여다봤는데 정말 그랬다. 카드도 쓰고 현금도 쓰기 바쁜 세상에 제한된 가맹점만 있어서 쓰기 힘든 제로페이를 고집하기 어렵다. 예전보다는 그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었다. 사장님 본인이 제로페이 가맹점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이 봤다. 요즘 비대면 결제 선택해보면 손님이 주인보다 가맹점 여부를 먼저 알 수 있다. 결국 퇴장화폐처럼 되는 것이고 그 규모는 상당할 것이다. 이런 것은 제로페이가 활성화되기 전의 과도적인 현상일 뿐이라 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연구나 조사는 필요하다. 소비 진작은커녕 멀쩡한 현금이 이렇게 자치단체 금고로 귀속되는데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 예산 집행을 전반기에 집중해서 빨리 소비 진작 효과를 보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야 해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예산이 집행되어 개인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사회복지 예산, SOC 예산 같은 것은 분명 그런 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그것이 후반기의 상대적 동면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러나 지역화폐는 분명히 다르다. 한꺼번에 모두 뿌린다고 한꺼번에 개인들이 지출하지 않는다. 서둘러 집행한다는 개념은 화폐라는 것의 취지와도 분명히 어긋난다. 빨리 돈을 써야 한다면 그냥 사줬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2021년 1/4분기에 선결제상품권이라는 것을 내놓고 3월까지 모두 사용하면 10% 할인은 물론이고 개별 점포에서 혜택도 주겠다면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었다. 처음에는 10만 원 이상 결제해야 쓸 수 있다고도 했다. 말하자면 소상공인과 개인을 할인율로 후려치면 원하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당연히 이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정책은 모두 실패하여 몇 주 만에 집어치웠다. 2월 10일까지 추가 10% 할인을 유지하다가 결국 그것도 예산 소진으로 그만두었다. 그 상품권의 하단에 보면 선결제를 했다가 가게가 채무 불이행을 해도 서울시나 정부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당당히 적혀 있었다. 노래방, 체육관 같은 곳들 상태를 보면 큰 사단이 나고도 남아 보이는데? 아무리 급해도 공공기관에서 이런 것을 앞장서서 해도 되는 것일까?    

  

매분기마다 집행해서 제로페이나 지역상품권의 인지도를 높여가는 것이 오히려 소비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예산을 빨리 쓰면 돈이 빨리 돌 것이라는 생각은 전형적인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아닐까 한다. 그가 예산을 집행하는 사무실 건너편 칸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상품권 판매 세외수입이 들어온다. 예산집행보다 세외수입이 훨씬 크다. 이러한 코미디를 하면서도 다들 모르쇠로 살아간다.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비웃으면서도 문제가 안 되니까 그냥 뭉개는 것이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가면만 보고 안심하고 살아간다. 이런 것을 보고 나는 K-가면이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 한국은행에서는 새롭게 도입될 디지털화폐의 성격을 한국은행권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단지 제2의 한국은행권이 나온다면 그것을 인정할 뿐 다른 것들은 사실 짝퉁에 불과하다. 서울특별시와 같이 공신력 있는 곳에서 만든 지역화폐라 할지라도 잘 생각해보면 모두 짝퉁이다. 네이버머니나 문화상품권 같은 것으로 임금을 지급하면 형사 처벌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천 동구사랑상품권이나 온누리상품권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매우 제한적이다. 결코 가짜는 진짜가 되지 못한다. 하긴 지역화폐가 진짜 화폐든 아니든 상관없다. 지역화폐가 제 그릇에 맞도록 재설계되어 실질적인 경제 매개체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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