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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Feb 26. 2021

우량주 족집게 상담도 해야 하나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5)

요즘 고객을 상담하는 업종에서는 십중팔구 고객이 상담원을 평가하여 점수로 계량하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면 추가 구매 여부를 봐서 그 제품의 수준을 자연스럽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상담이라면 직접적인 평가가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된다. 은행에 가보면 창구 직원들이 ‘만족’이 아니라 ‘매우 만족’을 달라고 당당히 써붙여 놓고 요구한다. 나도 이 바닥에 오래 있었지만 그렇게 내놓고 말하는 것은 참 낯이 간지러워서 못하겠다. 확실하게 상담을 해준 건이라면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겠다 싶고, 조금 미진하게 진행된 상담에 대해 그런 요구를 하게 된다면 고객이 나를 더욱 무시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 평가를 잘 해달라는 말은 내뱉기가 힘들다.     

그런데 요즘 고객이 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감지하는 요령이 생겼다. 경영 관련 상담을 잘 하다가 갑자기 요즘 우량주가 어떤 게 있는지 물어보는 케이스에 주목한다. 얼마 전 경북 영주에서 혁신적인 농업 아이템을 추진 중이신 블루하우스 사장님도 그랬다. 사장님의 사업에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얘기가 주식 얘기로 빠진다. 나는 예전부터 주식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처럼 주식 투자가 온 국민의 스포츠로 바뀐 시점에도 주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정치경제학 고전에서 지분주식은 생산자본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는 명제를 본 이후로 쭉 그랬다. 내가 사장님들의 관심사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대응을 하지 관심 없다고 끊어버리지는 않는데 주식 얘기는 끊어버린다.   

   

심지어 비밀스런 이성문제도 상담이 가능하고, 아이들의 입맛에 쏙 드는 요리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얘기가 가능한데 주식은 불가능하다. 정말 단호하게 화제가 절단된다. 그렇다고 사장님의 관심사 표현을 내가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또 아니다. 분명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있으니까 이틀째, 사흘째 만난 나에게 이런 것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상당한 수준의 지식이 있다고 보고, 또 이문에 밝아서 다양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추측하고 고객이 내게 우량주를 묻는 것이다. 주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씀드리고 빠르게 다른 화제로 그분을 이끌어 모셔야 한다. 사장님이 더 이상 주식 투자 같은 데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 역량을 더욱 키울 수 있도록 지지 엄호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그 날은 체리 농사 얘기로 다시 잽싸게 돌아갔다.     


요즘 사장님들의 단골 테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부동산 투자다. 성인을 상대로 미술학원을 오랫동안 하셨던 퀸 사장님도 상담을 잘 하다가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아이들 상대로 쫀쫀한 강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스케일이 큰 교육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 다른 것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오피스텔 투자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예비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더빙까지 포함해서 홍보물을 만들자며 설득도 잘 했는데. 시설비 지원 사업에 참여해서 비용 100만원 벌어보자며 살살 구슬려도 봤는데. 왠 오피스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투자하면 좋겠지만 너무 덩치가 크니까 힘들고 세종권 정도에다 오피스텔 조그만 걸 투자하면 재미가 좋겠다는 얘기다. 미술학원 운영 전망을 얘기하다가도 결국 또 오피스텔로 돌아온다. 블루하우스 사장님보다 더 강성이라 아무래도 학원은 접으실 것 같다. 어찌됐든 퀸 사장님이 내게 집요하게 오피스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나를 믿고 계심은 분명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보고 투자를 하라고 하면 그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흐뭇하다고 말하면 기이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게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영컨설팅이든 일반 사업 상담이든 모두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모두 둥글둥글 연결되어 있으니까 세상만사 나쁠 게 없다. 사업의 궤도에서 너무 엇나가는 분들은 가지런히 만들어드리면 되고, 장사가 개판이라는 분들은 잘 접을 수 있게 도와드리면 되고, 세금이 너무 많다는 분들은 절세 팁을 좀 드리면 된다. 정부가 못 마땅하다는 분들은 정치적인 촉을 세워서 같이 슬퍼해드리면 되고, 자만심과 허영심에 가득 찬 사장님에 대해서는(여성이든 남성이든 다를 게 없다) 엉성하게 쌓은 탐욕의 모래성을 조소하면서도 짐짓 허세까지 인정해주는 척하면 큰 탈이 나지 않는다. 결국은 내가 짧은 상담 시간 동안에 그들의 인정을 받고 한정된 자원 속에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인생까지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하면서 보람을 찾는 것인지 스스로에 대한 감각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장사가 안 되고 삶에 있어 희망의 불빛이 자꾸 꺼져가니까 주식투자나 부동산에 몰입하는 것 아닐까. 심지어 환각제 같은데 빠진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애기 엄마가 영아를 창밖으로 던지고 자신도 뛰어내리지 않나. 단순히 가십성 기사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비정상적인 사례들이 더 많이 눈에 띄게 되었다. 직업과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그 든든한 배경을 믿고 가정과 사회가 안정을 찾아야 할 것인데, 일확천금과 금전만능, 근로에 대한 불신 이런 것이 온 사회를 압도해버렸다. 이래가지고는 사회가 지속되기 어렵다. 호주머니에 돈을 일시적으로 좀 챙긴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목격된다. 사업에서, 일터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이 필요할진대 그 단초는 어디에서 마련될 것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 지반 자체가 암울해서 돌아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출발점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학생은 학교에서, 소상공인, 직장인은 일터에서, 농부는 들에서 희망을 기다린다. 미래가 어두울수록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소중하지 않을까. 농부가 주식투자로 돈을 벌고 직장인이 오피스텔에 투자해서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매사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 것일까.     

언젠가 시각장애인 안마사 한 분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 안마원이라는 곳이 잘 될 리가 없어 컨설팅이라는 것도 의미 없고 전망은 불투명했다. 개나 소나 주식투자에, 오피스텔에 뛰어드는 판에 그 사장님도 이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홈택스에서 그 사업자번호를 입력해보니 폐업한 곳으로 나온다. 정말 어렵긴 어려웠나보다. 그때 내가 한 일은 근로계약서 초안을 마련해와서 사장님과 같이 한땀한땀 완성한 것이었다. 당장의 내일 모레 어떻게 될지 몰라도 그 계약서 한 장을 작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글쎄 큰돈을 벌기는 어렵겠지만 매 시간 매 초 느껴지는 그 진지함이 그 분의 삶을 꽉 채워가는 느낌이었다. 그저 주식이네 부동산이네 쓸려 다니는 분들, 도대체 당신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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