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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r 04. 2021

눈치 빠른 사람을 위한 자영업 정책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6)

서울의 재래시장들의 과거 영화를 다 말해서 무엇하랴마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많은 고객들의 방문으로 인해 시장 가기가 두렵다는 세월을 우리는 분명히 지나왔다. 재래시장에 가게를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특권이라 보고 백화점에 입점하는 것 만큼이나 대단한 진입장벽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그런 시장들도 제법 있겠지만 지금 서울의 전통시장이라는 곳은 대부분 죽을 쑤는 형편이다.     

해밀타운에서 옷가게를 하면서 드문드문 수선을 하시는 김 사장님 가게를 가보면 참 허술해보이지만 다른 재래시장 입점 점포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엔 장사가 참 잘 됐다고 한다. 과거에 비하면 1/3 수준 매출이지만,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장사는 그냥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저냥 살아가던 김 사장님이 최근에 크나큰 시련에 부닥쳤다. 2천만 원 정도를 사기꾼에게 뜯겼다는 것이다. 소위 폰피싱 방법으로 사장님을 낚아챈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현금을 건네준 방식은 계좌이체 방식이 아니라 현금 출금 방식이었다고 하였다. 가해자인지 또 다른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어떤 청년에게 면접하여 건네는 방식이었으니 그 피해 금액을 제3자가 확인하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세상물정 다 알고 오히려 깍쟁이처럼 살아도 버티기 힘든 자영업 세상에서 30년 이상 버텨온 분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기를 당했다는 게 누가 봐도 황당할 노릇이었다.      


김 사장님이 속임수에 넘어간 것은 그 피해액이 이번에 너무 커서 도드라진 것이지 그 전에도 해프닝은 있었던 것 같다. 단지 장사가 잘 되면 터무니 없는 것들도 묻혀진다. 이런 엄혹한 환경에서 더욱 결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재래시장 상권에서 장사를 하시는 민 사장님은 매월 15만원씩 어떤 운영회라는 곳에 회비를 납부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내가 그 고지서라는 것을 잘 살펴보니 납부 내역이 민 사장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도 포함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은 5만원으로 충분한데 엉뚱하게 매월 10만원을 추가로 운영회에 납부하고 있었으니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민 사장님은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이제 흘러간 세월, 어쩔 수가 없다. 일종의 기망으로 보고 환급을 요청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일 것 같지는 않다.     


그 어느 때보다 소상공인들을 챙겨줄 수 있는 따뜻한 체계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지원 정책들로 차려진 잔칫상만 보면 대단한 선진국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골목마다 상권 쇠락의 냉기가 이렇게 찬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마디로 정책의 목적과 수단이 유리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 상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하고 그 열악한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그 비정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너무 오래돼서 체념과 가식이 체질화되었다고 본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대중들과 음식점 업주들에게 인식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지나온 우리들의 모습이 한꺼번에 층층이 화석처럼 나타난다. 처음 제도가 시행된 며칠 간은 그 조치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고 집행되어 찾아오는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해야 할 점주가 손님을 몰아내는 일까지 잦았다. 그 조치가 시행된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요즘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분위기를 좀 아는 사람들은 이제 냄새가 확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챈다. 4인까지 구성된 팀으로 예약하고 식사를 하면 된다는 것을 다 안다. 출입자 장부 기록들도 일부 업주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 업소들을 제외하면 성의 없이 운영된다. 쓸데없이 방문 기록을 정확하게 썼다가 마케팅 용도로나 활용될 것을 직감한다.     


전화번호를 안심번호라는 이름의 대체물로 바꾼다고 하면 어설픈 개인정보 유출은 좀 제어가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남는다. 만약 확진자의 동선과 우리의 동선이 우연히 일치하는 경우 본인들의 경제생활이 최소 2주 이상 동결된다는 점이다. 최소가 그렇고 주변의 정보에 의하면 6개월 이상 그 여파가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다. 심지어 휴대폰의 위치정보를 끄고 다닌다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그 분들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엉터리 동선 정보를 바탕으로 무슨 방역 체계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은 그래도 이 정도로 유지된다만. 미세하지만 그 불신의 파도는 높아져 간다. 나만은 일단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눈치껏 살아가는 것이다. 걸리면 모질게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회피하는 방식으로 삶의 요령을 체득하는 식이다. 방계가족끼리 모이면 불법이지만 직계가족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적당히 형식을 갖추면 불법이 아니라는 정책도 그렇다. 이게 우스꽝스럽다고 어떤 독설가가 꼬집은 바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게 우습지는 않다. 진짜 독한 마음먹고 가족을 포함한 5인 이상 모임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통계적인 의미에서 유동 인구의 숫자를 줄이고 바이러스 전파를 최대한 억제해보겠다는 얘기다. 요령껏 회피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늘어나도 점잖게 정부가 정해준 룰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또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면 그 효과가 절반 정도 상쇄되더라도 5인 이상 조치는 유효하다는 것이 정책 입안자들의 계책이다. 그들이 가끔 말하듯이 단속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실천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바로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접촉을 최소화하여 숫자로 표면화되는 방역 수치를 잡아보겠다는 것이 목표가 되고, 개인들의 만남의 규모와 횟수를 축소하는 것이 그 수단이 된다. 목표와 수단은 처음부터 배치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구분된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결국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만 최초에 수단으로 제시된 강제사항을 준수하려고 애를 쓴다. 폰 피싱 사기를 당하고도 참고 사는 김 사장님이나 엉터리로 책정된 회비를 몇 십 년 내고 살던 민 사장님 같은 사람들은 고지식하게 수단적인 강제조치를 억척같이 지켜갈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진작에 다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수단과 목적이 애초부터 따로 놀았기 때문에 이런 사태는 진즉에 예측된다.     


60년대에 4.19의거를 노래했던 어느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했었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 세상에는 껍데기로 살다가 필요에 따라 새로운 껍데기로 바꿔 입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된 것 같다. 그 시인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되었다나? 수단과 목적을 솔직하게 일치시켜서 순진한 김 사장, 민 사장 같은 사람들도 발 뻗고 잘 수 있는 세상이 오기는커녕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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