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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r 13. 2021

뜨스운 물도 안 나오는 가게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7)

이웃집 수저가 몇 개 있는지 알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공동주택이라 이름 붙은 거주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내 집 밖을 나가면 이웃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잘 모른다. 사망한 지 몇 달이나 지난 변사체가 발견되고 바로 앞집에 어떤 흉악범이 살고 있어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주택뿐만 아니라 상가도 그렇다. 영업집에 드나드는 손님들은 그 가게들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주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사업자가 또 다른 사업자의 내밀한 부분까지 파고들어야 할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음식점이나 서비스 업종 소상공인들이 사업 양수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양도인과 그의 점포에 대해 소상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건물주가 직접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면 건물주보다 양도인이 해당 사업장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그 공간과 시설에서 부대끼면서 울고 웃어온 사람은 건물주가 아니라 양도인이기 때문이다. 권리금을 주고 그 가게를 인수받는 것이라면 거기서 영업하시던 분과 많은 대화를 해서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인수 과정 또한 하나의 상거래에 해당되기 때문에 양도, 양수 양측의 이해관계는 대립적이라 마찰은 필연적이다.   

  

구미에서 구이점을 하는 이 사장님은 가게를 인수받은 지 5년이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양도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설거지를 한꺼번에 많이 해서 하수구에 많은 물을 내려 보내면 배관이 감당하지 못해 역류하는 현상이 자꾸 발생하는데 뾰족한 대책이 없어서 애를 먹고 있다고 하였다. 쌀을 씻거나 채소를 장만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물의 양이 어느 정도 늘어나면 가끔 역류해서 주방이 물바다가 되니까 겁이 날만했다. 왜 그런지 설비하시는 분을 불러다 물어보면 하수구를 여러 가게에서 한꺼번에 공유하다보니 용량 초과 현상이 가끔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게들이 물을 쓰면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5년 전에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였다.      


자기 딴에는 꼼꼼하게 점검해서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즉각 확인되지 않는 문제점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주인은 뭐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했고 임대료가 그래서 싼 것이라고 하였다. 보수 공사를 하면 좋겠지만 전체 가게들을 한꺼번에 뜯어야 하는 것이라 일정을 잡기도 어렵고 돈도 많이 드니까 차일피일한다. 이런 케이스들은 정말 난감하다. 시급한 문제니까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인지도 애매하고 그냥 영업을 하기도 어렵다. 그저 한탄만 하다가 5년을 흘러왔다. 그러다 영업을 접어야 할 때가 왔다. 이제 새로운 양수인을 찾아서 권리금을 받아야 한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새로운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나? 나는 이 사장님한테 투명하게 모든 까세요, 이렇게 조언해야 하는 것일까?     


마포에서 식당을 창업하고자 하는 김 사장 케이스는 그 반대다. 하수도가 아니라 상수도가 말썽이다. 이제 막 양수를 받으려는 가게가 정말 장사가 잘되는 걸 알고 인수 받으려던 참이었다. 코로나 통에도 대학생 손님들이 바글바글하여 의욕이 생긴다고 하였다. 내가 양수인이 꼭 파악해야 할 사항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서 드렸더니 한 가지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 양도인이 한겨울에도 주방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얼음장 같은 물로 설거지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추워서 어떻게 하냐고 물어도 대수롭지 않단다. 찬물이 싫으면 물을 조금 데워서 쓰세요? 몇 년을 그렇게 해왔는데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 체크리스트를 보니까 그 장면이 떠올랐다고 하였다. 지금이 쌍팔년도 아닌데 뜨스운 물이 안 나오는 수도에서 찬물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황당하다고 어찌나 푸념을 하는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겨울마다 그렇게는 못하겠단다. 권리금 일부를 이미 줘버렸는데 어찌 해야 하나 걱정이태산이라는 김 사장님.     


며칠 후에 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순간온수기를 설치해서 따뜻한 물을 쓰면 된다는 것이었다. 참나, 그런 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전임자가 그렇게 몇 년을 그렇게 살았으니 해결난망이라고 여겼던 것일 뿐. 시설물 설치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 사장님이 부담을 지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가게를 인수받는다는 것은 지뢰밭을 건너 안전한 지역에 도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김 사장님은 새로 인수할 가게에 또 있을지 모를 문제점에 대해 더욱 검토해보기로 하였다.     


금천구에서 수선을 하시는 배 사장님 케이스는 시설의 문제는 아니다. 인근 부랑자 같이 보이는 남자들이 너무 많이 출몰해서 너무 무섭다는 말씀을 했다. 뭐 부랑자까지는 아니고 그저 옷이 해지거나 더러운 정도만 돼도 그렇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보다. 거기다 술 냄새까지 조금 풍겨오면 그 손님은 아무리 매상을 많이 올려줄 것 같아도 거부하게 된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무슨 사고가 발생하면 배 사장님에게 즉각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은 이해가 되었다.     


CCTV를 점포의 양측면과 외부에 설치하여 불청객을 쫓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이다. 이런 것은 금전 거래를 안전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금을 지불했어야 하는 손님이 물건을 받고 이미 돈을 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임이 드러난 경우도 있었다. 외부에 환경 개선을 위해 둔 화분도 잃어버렸다가 찾았다. 모두 CCTV가 밝혀냈다. 코딱지만한 가게니까 깔보고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두 안심할 수 있을까. 최근 무인점포가 잇달아 털리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사는 통에 개인 식별이 어려워졌다. 후드티 입고 마스크 끼면 누군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점들은 양도인에게 하소연하기 어렵고 집주인에게는 더욱 말을 꺼낼 수 없다. 그저 주변 환경을 미리 파악해야 할 뿐.      


공간이 가지고 있는 까다로운 특징들은 성처럼 견고하게 지켜져서 새로운 주인에게 혹독한 시련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곳을 인수받게 되면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결국엔 체념하게 되고 언젠가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 양수인에게 넘겨줄 때 그를 속이려고 골치 아픈 문제를 속이는 게 결코 아니다. 체념은 대를 건너 전파된다. 그 사업장이 부서지는 순간까지.      


사업장이 개인의 사유물인 까닭에 뚜렷하게 매뉴얼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재와 같은 제도적 해결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최대한 양도인과 건물주로부터 정보를 얻어 대책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최대한이다. 돌발적인 지출에 대비하여 적립금을 쌓아놓는 방안도 고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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