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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r 19. 2021

방역에서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8)

산업재해 사망률 1위, 대한민국. 워낙 강력한 타이틀을 장기간 보유하고 있어 그 불명예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산다. 자살사망률 1위라는 타이틀도 참 오래됐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잔혹한 간판을 보유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편으로 자영업자 비율이 과다하고 열악한 소득 수준이 점점 두드러지는 나라로도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통계 수치 같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나라에 사는 근로소득자에 대비해서 살펴보았을 때 그 사정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최정상급이라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들을 보살펴줄 수 있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어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 걸음 뒤쳐져 오는 국민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공공의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본다. 주판알을 좀 덜 튕기더라도 인명을 중시하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것이고 자영업자가 과잉이라면 진입 장벽을 좀 높여서라도 자영업자가 먹고 살 길을 만들어줘야 할 것인데 교통정리를 해야 할 공공의 기능이 잘 안 보인다. 각자도생을 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냉소가 사회에 짙게 배어 있다.  

   

공항동에서 미용실을 하는 진 사장님은 최근에 자신의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자해 행위를 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고 가보면 신용이 낮아서 안 된다고 하고 서민금융을 신청해보려고 하니 신용이 조금 좋아서 대출 이율이 높게 나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하게 고금리 대출을 조금 받았다는 것이다. 일단 캐피탈에 몸을 담그면 신용도가 와르르 무너진다. 그러면 서민금융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인정돼서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적인 조절 기능이 있다면 그런 케이스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현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그 빈틈을 메꿀 수 있도록 조절기능을 작동시킨다면 진 사장님이 스스로를 자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K-방역이 대단히 성공했다면서 동남아 각국에 홍보 영상을 보냈다고 하는데 몇 달 째 제대로 된 장사를 못하고 있는 업종의 사장님들이 그런 것을 본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최근에 개점한 여의도의 초대형 백화점에서는 엄청난 인파가 밀집대형으로 모여 쇼핑을 하고 있지만 어떤 개인사업자들은 여전히 영업시간을 제한당해서 피해가 막심하다. 그네들의 숫자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 차별적인 대우에 대해 감히 반박하지 못하는 부류로 낙인찍혀 있다. 방역 기준이 대단한 보건의료적인 견지에서 세워져 있다고 믿고 싶지만 현실에서 그 기준들이 집행되는 것을 보면 선명하게 새겨진 힘의 관계가 여지없이 노출되고 만다.     


힘이 센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공공의 영역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집단과 같이 강력한 무기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아도 개의치 않고 똘똘 뭉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킨다. 노래방, 주점 같은 것들을 하는 사장님들은 배운 게 없다고 무시를 당하는 건지 방역 혼란 사태의 책임성을 고스란히 걸머지고 산다. 질병 방역의 책임은 개인들이 아니라 국가 혹은 공공이 나누어져야 하는데도. 그러라고 공공이 있는 건데도. 평상시에 국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국가가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되었다.     


지금 사람에 대한 방역도 문제지만 고병원성AI 때문에 가금류의 방역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워낙 시끄러운 기사들이 많아서 가금류 같은 것은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 지난해 말부터 예방적 방역이라는 미명하에 몰살당한 가금류가 전국에 무려 29,050,000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강아지 한 마리가 학대를 당하면 가십란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애견가들에게 지탄을 받지만 무려 2,900만 마리의 닭이 방역의 편의 때문에 산매장을 당하는데도 조용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것이 일부 농가에서 발견되자 그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발생농장 반경 10km로 늘리더니 곧 시군 단위별 살처분을 꺼내들었다. 광범위한 칼부림과 생매장이 과연 방역이란 말인가?     


가히 방역광풍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방역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든 가축이든 그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시행되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방역이라는 것이 자립하여 가공할만한 규모로 축성(築城)을 하고 사람들과 가축들 속에 우뚝 서 있다.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힘없는 집단의 경제활동을 장기간 제한하고(LH 임직원의 경제활동은 제한되지 않는다), 또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죄 없는 가축들을 수 천 만 마리를 도살한다(부잣집 고양이 한 마리가 학대당해 죽으면 경찰이 수사한다).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질식과 생명의 박탈이 용인된다. 그 어느 시기, 그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가공할만한 사태가 벌어지지만 또 한편으로 K-방역은 세계에서 부러워하니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방역의 신을 경배하라!    

     

지인 중의 한 명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그 사고는 한 때 전국적인 화제가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해당 산업(물 관련이라 해두자)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올 듯 했지만 한 달도 안 되어 뭇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사건이 되었다. 그런 사건이 응당 그렇듯 꼬리 자르기식으로 말단 직원 한 명이 가벼운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억울한 것은 가장을 잃은 그 유가족들뿐이었다. 요즘에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처벌을 받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자꾸 사과하러 찾아오려고 한단다. 지금 와서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처벌이나 책임의 수위를 낮추기 위한 것이지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공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냥 더러워도 참고 고개 숙이자. 뭐 이런 논리로 찾아오는 것이지, 진짜 사과하는 마음은 개뿔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소통이 책임자와 유가족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인데 나는 그것이 심히 못마땅하였다. 원래 의사소통이라 함은 최소한 2인 이상의 발화 주체가 있는 법인데 어느 샌가 의사소통 자체가 주인이 되었고 발화 주체들은 객체로 추락했다. 인간과 방역의 뒤바뀜, 인간생명과 사과놀음의 뒤바뀜. 이런 것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인 전화(轉化)로 설명했을 때 비로소 정확하게 설명된다.      


나는 유가족들이 상대측의 대화 시도야말로 그저 재주부리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꼭 알았으면 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책임자라는 사람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종의 교섭을 한다는데 퍽이나 협조하겠다 싶었다. 약육강식의 질서 속에 협조 같은 것을 해주면 도리어 피해자는 멸시의 대상이 된다. 소통, 협조 따위가 우뚝 주인으로서 서서 가해와 피해관계를 질식시킨다. 겉모습은 협조지만 실내용은 결국 죽은 이를 모욕하는 소재가 된다. 온통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립만 아른거리고 진짜 대화나 타협은 기대할 수 없다. 수렁에 빠진 우리 사회를 건져 올릴 자,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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