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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Mar 27. 2021

내가 각성제 전도사가 되기까지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9)

2020년 후반기에 소상공인용 온누리상품권이라는 것이 유통되어 한 때 장사하시는 분들의 기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특별히 다른 상품권을 발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하되 소상공인에게 추가적으로 200만원의 매입 한도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원재료 매입의 비중이 큰 가게들은 이 매입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 10%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고 숨은 부가세 공제 효과까지 고려하면 추가 1%를 거저 먹는 계산이 나왔다.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며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것이 바로 그 해 연말까지 계속되었다.     

그랬던 것이 해가 바뀌자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자영업자들의 비용 절감을 통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라도 할 듯이 엄청 홍보를 하더니 갑자기 입을 닫아버렸다. 소상공인 전용 온누리상품권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며 제도가 있는데도 몰라서 쓰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라더니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도 고객들 만나면서 그 내용을 얼마나 많이 알려줬는지 모른다. 이 제도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나름대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으니 최선을 다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부 관료들을 너무 믿은 것 같다.      

세종이 안보 분야에서 고려공사삼일을 지적했다는 것은 세종실록에 나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전임 왕조에서 국정 운영에 뒷심이 부족했음을 지적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소상공인 정책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수많은 국정 운영에서 단발성 인기몰이에 그치는 것들이 종종 눈에 띈다. 파일럿이라면서 조용히 시행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까지 동원해서 어마어마하게 홍보를 하다가 해가 바뀌면 즉시 집어치운 사례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삼일보다는 길게 지속되지만 홍보 매체를 통해 들썩여 놓은 것까지 생각해보면 고려 말기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물론 절대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고려에서는 봉건적 신분제가 그랬다면 대한민국에서는 확정된 소유권이 그 지위를 점하고 있다. 동산과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라는 것은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는 방식으로 변동되지 않는다. 10년이든 100년이든 완전히 보장된다. 특히 부동산에 대해서는 등기라는 방식으로 불멸의 지위를 갖는다. 한국전쟁 시기에 대구 이북 지역은 어쩔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예외적인 상황이다.       

이번에 LH공사 직원들의 비위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핑계가 있겠지만 공직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동원하여 국가의 재산을 털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드러났다. 사태가 이렇게 불거지자 누군가 나와서 조사한다며 북새통을 피우고 있지만 그 더러운 사정이야 뻔한 것이다. 정말 예외적인 것을 제외한다면, 그렇다고 그 등기된 것을 돌려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권이라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속한다. 몰수한다, 처벌한다, 언론에다 띄워보지만 다 소나기를 피하려고 한 번 해보는 말에 불과하다. 개인의 소유권 자체를 터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재산권은 국가권력보다 근본적인 힘을 가진다.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이란 것이 있다지만 모두 재산권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가 비교적 자유권이 존중받는 사회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 자유권의 절대적 한계는 소유권이 내포하는 질서 내에서라는 전제 하에 나는 그들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서울더현대라는 이상야릇한 이름으로 재벌집에서 가게를 열었는데 여기에서도 자유권이 잘 보장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그만 소상공인 가게(재산권자 아님)들이 방역 제한 때문에 정상적으로 임차한 가게도 특정 시간에는 사용할 수 없어 쩔쩔매는 형편이지만 서울더현대(재산권자)에는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들어 쇼핑을 해서 매출을 올리는데 지장이 없다. 너무 눈치가 보이니까 조금 자체적인 제한을 할 정도다. 고려공사삼일보다 훨씬 훌륭하게 격주 간격, 말하자면 방역수칙 재검토 한국공사십사일(韓國公事十四日)을 추진해서 힘없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죽을힘을 다해 뛰지만 재산권과 자유권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이 완전히 보장된다 이 말이다.     


재산권과 자유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권은 여전히 보류되고 있다. 자녀가 없는 분들은 학교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끼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서울의 초등학생들 다수가 일주일에 세 번 정도만 출석을 한다. 중학교도 징검다리 정도로 학교를 간다. 학교 급식이라도 제대로 해보려 했지만 위험하다며 취소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양치도 못한다. 개인 사물함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학교가 그나마 코로나 감염 위험에서 안전하다는 점이다. 왜냐고? 학교에서는 양치도 못하고 개인 사물함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전파가 안 되는 것이다. 반면 가정에서는 코로나 전파가 빈번하다. 지금 내국인 감염 비율의 절반 이상이 가정 내 감염이라고 한다. 집에서는 마스크 같은 건 쓰지도 않고 방역 수칙 같은 것도 관련 없다. 그러니 결과는 뻔한 것이다. 학생들을 학교에서 집으로 내몰수록 감염 수치는 올라간다. 그저 교육청과 학교는 자신들에게 닥칠 혹시 모를 비난이나 회피하며 사회적인 윤리나 책임성 같은 것은 관심 없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적법하게 체결된 임대차 계약 기간 중에도 장사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방역 문제에 책임을 진다. 그들은 자녀들을 안전성이 증명된 학교에도 보내지 못하고 가정에서 그냥 방치하는 방식으로 아동 청소년의 방역 문제까지 떠안고 있다. 자유권과 재산권의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한 고통도 감내할 것 같은데? 고통을 참기 위해 가끔 각성제 투여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최근 버팀목자금, 버팀목자금 플러스라는 녀석들이다. 백신도 두 차례를 맞듯이 이런 현금성 각성제도 수차례 투여되어 자영업자들은 한 때나마 고통을 잊는다.   

  

버팀목자금은 3월 26일까지 신청이 완료되었는데 해당 사항을 놓친 분들이 가끔 있어 정보를 제공해왔다. 그런데 바로 이어 29일부터 버팀목자금 플러스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화이자에서 나온 코로나 백신보다 투약 간격이 더 짧다는 것이 이 각성제의 묘한 매력이다. 나는 이 각성제를 맞고 고통을 잊으라고 홍보를 하러 다닐 예정이다. 나랏님이 내놓은 훌륭한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각성제 전도사라는 타이틀은 자격지심 같은 것에 불과하니 서랍 속 깊숙한 곳에 보관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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