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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Apr 03. 2021

공유지에 비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10)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농업이 크게 발달하였다고 말하면 농담처럼 느껴지겠지만 정말 그랬던 것 같다. ‘기름진 초승달 지역’이라고 해서 농사짓기에 유리한 조건이었다고 하지만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의 연평균 강수량은 서울의 1/10 수준인 156mm에 불과하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그저 사막에 불과한 곳에서 세계 농업이 출발했던 모양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이라크인들의 농업생산성을 기록한 것이 있었는데 뿌린 씨앗의 100~200배를 수확했다고 적었다. 척박한 지형에 사는 그리스인들이 남들을 부러워해서 그렇게 써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산성이 대단하기는 했던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 원주민들이 점토판 문서에 기록한 자료를 봐도 파종의 76배가 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수확률을 자랑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후 로마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시칠리아에서는 파종의 8배, 중세 영국에서는 3배~5배 수준이었다고 기록되었다. 9세기의 프랑스는 고작 2배 수준이었는데 배를 곯은 농민들이 우유를 곡식에 섞어먹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에세이세계사, 백산서당 참조).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수 천 년 후의 로마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확을 자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연구들은 농업혁명, 즉 관개농업의 힘이라고 대답한다. 강물을 인위적으로 끌어다 농업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우리 농민들처럼 밭을 매거나 농약을 치는 행동을 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파종을 마치면 주민들은 공동 작업장에서 수 개월간 일을 했기 때문에다. 지도자의 영도에 따라 강바닥에 쌓인 모래를 긁어낸다든지 허물어진 강을 보수해서 농지에 물을 댈 수 있도록 함께 땀을 흘렸던 것이다. 물론 신의 영광을 위해 피라미드도 짓고 전쟁터에도 끌려갔겠지만 경제활동의 핵심은 공동노동에 있다고 할 것이다. 요즘 서구식 인권 좋아하는 분들이 보기에는 피라미드 강제노동이 없어져 문명생활이 개선됐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관개농업을 위한 공동작업이 사라지면서 그 지역은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물러앉았다.     


공동의 노동은 육체적인 것만 아니라 지적인 측면에서도 그 유용함이 증명될 때가 있다. 소위 말하는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공동 작업의 대표적인 결과물에 해당된다. 어린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가 전체적으로 크게 저하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는데 이는 원격학습이 늘어난 까닭으로 풀이된다. 방송을 보고 개별 학습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학급에 모아 놓으면 떠들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공동 학습의 효율이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개별로 과외를 하면 더욱 효과는 높아질 수 있겠지만 효율성 면에서는 수치가 떨어진다. 학생들 사이에 성취도의 큰 골짜기가 생기고 있는데 특히 집에 머물기가 더욱 심한 서울 수도권의 추세가 심상찮다. 교육청은 학습에 대한 대책은 없이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집단적인 노력, 협동의 가치를 소홀하게 여기는 것이 그 사회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과관계로 설명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일정한 선형 대응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육촌 형제들이 크게 다투다가 결국 할머니의 묘소에 쇠말뚝을 박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감나무 가지가 불편하다는 하소연에서 출발해서 담장을 높이 쌓아 이웃의 차량 출입이 어려워지더니 결국에는 끔찍한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웃을 배려하는 문화가 없어져버리면 결국 그 본인들의 삶이 망가지는 결과가 나타난다. 경계선을 그어서 내 이익의 상한선을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반대였던 것이다. 꼿꼿하게 세워진 담장은 공유지를 철폐하여 각자의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것이었는데 도리어 분란만 일어났다. 먼저 있었던 공유지에 비극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또 어떤 사람은 공동주택(빌라)에 살면서 공유토지에 골프연습시설을 만들자고 하다가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골프가 엄청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차장에 주차나 마음껏 하고 싶은 게 일반적이지 거기서 골프연습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다 보니 문제가 계속 불거졌다. 공동구역에 보수공사를 좀 하고 싶어도 그가 퇴짜를 놓는 형편이 됐다. 내 고집대로 해주지 않으니 남들도 내 고집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힘의 논리가 시작되었다. 공사가 시작되던 날 골프광이 자가 차량으로 공동주택의 주차장을 포위하였다. 공사는 물론이고 제 집에 들어와야 하는 주민들의 차량도 접근이 불가하게 되었다. 공공의 공간이 아니다보니 경찰도 찾아와서는 그냥 둘러보고 간다. 빌라 주차장은 공유지인 것 같지만 제대로 된 질서가 없는 공유지임이 드러났다. 바로 바깥 골목길도 지역민들이 공유하는 땅인데 아무 문제없이 쌩쌩하다. 공유지도 다 같은 공유지가 아니며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가 생긴다.     


1980년대까지 우리 외가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다. 옛날 이야기에 보면 우물은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봤는데 우리집은 우물이 마당 한 가운데에 있어서 독점으로 사용했다. 마중물을 좀 붓고 쇠로 된 손잡이를 여러 번 재끼면 신선한 지하수가 뿜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신비의 물이었다고 하면 농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개울물이 흘러나오던 지점에 가보면 겨울에도 김이 나는 온천이 형성되었다. 조금 식견이 있는 사람이 그걸 봤다면 온양온천보다 더한 것이 탄생했을지 모른다. 그랬던 물이 점점 시들어졌다. 인근 가정들, 시설에서 지하수를 너도나도 뽑아 쓴 덕이다. 자연 그대로의 온천수는 추억으로만 남았다. 공유의 자원이 있어도 골프연습장이나 생각하고 법의 허점을 파서 남들을 공격하는데 써먹으면 공동체가 무너지듯이 마을 공동의 재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 갈 길만 가게 되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 마을에는 다행히 공동으로 사용하는 저수지가 남아 있다. 그 저수지는 늘 풍성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인근 논밭에는 물대기가 수월할 것이다. 얼마 전에 누군가 그 저수지에다 화학물질 같은 것을 쏟았는지 물고기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두들 걱정하고 염려하고 분개했다. 저수지의 물을 몽땅 빼고 물고기 사체는 모두 건져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물고기들이 어디 알을 숨겨놨는지 금세 풍성하게 살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저수지를 더욱 엄정하게 감시하게 되었다. 혹독한 시련이 있었지만 아직 그들에게 기회는 있는 것이다.     


상공인들은 그 특성상 개별 기업으로서의 특성이 강하여 공유와 협동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것을 배제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혼자 힘으로는 장사를 못한다. 예를 들어 사업자의 수를 조절하여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것은 공동의 노력으로 가능할 것이다. 기원전 2천년의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경험은 역사에서 수없이 확인된 진실이지만 또 그만큼 자주 잊혀졌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며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배척해왔던 영역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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