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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팔룡 Apr 07. 2021

아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백전백승하는 최팔룡의 영업일기(1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수천년을 불렀던 노래가 아닐까 한다. 너무 많이 듣고 부르다 보니 문제의식이 옅어진 것이겠지만 가사에 나오는 아리랑이 뭔지 모르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나도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고운 임’이라는 주석이 맞는 것 같다. 자칭 천재라는 양주동 박사 왈, 밝다는 뜻의 ‘아리’, 고개를 뜻하는 ‘령’이 변형되었다는 설도 그럴듯하고, 어떤 러시아 학자의 아리아족 관련설도 들어볼만 하지만 노랫말의 문맥으로 봐서는 글쎄다. 하지만 아름다운 즉, 고운 임으로 해석해보면 문맥상으로도 어울리고 랑(郞)이라는 한자어의 쓰임에도 맞아서 가장 적합하게 느껴진다.    

 

멋진 남자가 있었던 것 같다. 이름이 있었겠지만 그냥 아름다운 남자라고 해둔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품절남’이었겠다. 아리랑 고개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남자가 고개를 넘어 가버리니까 지켜보는 여자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졌다. 김소월처럼 사뿐히 지르밟고 가라면서 비꼬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날 버리고 가다니, 너 조금 못 가서 탈이 난다.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지양하고 소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고운님을 보내고 살았던,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혼 상태를 유지했던 여성들의 스토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가혹하게 짜여 있다. 얼마 전에 미용실 창업 1년 차 K사장님은 세찬 비바람에 씻겨져 돌덩이처럼 되어서 살아온 것 같았다. 그 분의 ‘아리랑’은 20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혼자서 이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 50대의 나이지만 수급 자격을 유지되어 어떻게든 버텼다. 그런데 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모를 겪었고 그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일단 취업을 해도 세무적으로 확인되어서는 곤란했다. 20세기에 그러했듯이 월급을 지폐로 봉투에 넣어서 받고는 세상모르게 썼다. 창업도 진즉에 할 수 있었는데 혹여나 수급 자격이 박탈될까봐 계속 망설여왔다고 하였다. 나는 단순히 이분의 비즈니스와 취업 관련 사항만 들여다본 것에 불과하다. 가난한 형편에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워낸 그 세월의 곡절은 짧은 글에 다 담지도 못할 것이다.   

  

독일의 사육제라는 축제는 3일간 지속되는 길거리 가장(假裝) 행렬이 볼만 하다고 한다. 왕, 나무꾼, 곰, 악마, 원숭이 같은 분장을 한 사람들이 나른한 봄의 일상을 날려 버린다. 요즘에 코로나 때문에 그런 축제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이 축제의 역사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가장 행렬에 참가하면서 누구나 법석을 떨면서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게팅겐이라는 도시의 15세기 전체 인구는 약 5천 명이었는데 그 중에 축제에서 배제된 사람이 1,600명 수준이었고 그 중 상당수가 남편을 잃은 과부였다고 한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행렬에 낄 수는 없으니까 주변에서 어슬렁대면서 사람들의 동정을 얻는 것이 전부였을 텐데 그 동정이란 진실한 사람이 느끼는 공감과 연민에 미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짝을 잃은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집단에서 배제되는 슬픔을 겪는다.     


어떤 여성분은 최근에 남성 없이 아이를 낳았다고 매스컴에 띄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런 가정도 있으니까 빨리 복지 체계를 세워서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상당한 주목을 받는다. 어떤 자치단체장은 이 여성의 육아기를 읽어보고 싶다고 하면서 진정한 슈퍼맨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글쎄 우리 시대에 이런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을 많이 만나는 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 분들의 선택이야 자유겠지만 이걸 정치인이 나서서 권장할만한 것인지를 따져 본다면 아빠 없이 아이를 낳은 엄마 본인도 확실하게 수긍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하는 가족 관계를 존중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유행에 따라 쓸려가는 세태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정작 짝을 잃고 부모를 잃어 버려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짝을 못 찾은 사람에 대한 관심은 말 할 것도 없다. 복잡한 관계들이 각개약진하면 결국 짝을 잃거나 찾지 못한 기러기들은 1/N로만 취급된다. 매스컴의 관심은 이미 그렇게 됐다. 아리랑의 나라는 이제 1/N로 축소되었다.     


요즘 천식환자들은 바깥에서 대면 활동을 하기가 참 어렵게 되었다. 단순히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버겁다. 기침을 한 번 하면 주변에서 다 쳐다보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 외출이 어렵다. 마스크를 규정대로 착용하게 되면 해당 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예외를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정을 매 순간마다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란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난 무지개크리닝 세탁소 사장님의 서류 제출 업무를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현장에서 가서 접수할 일이 있더라도 최대한 온라인 처리로 끝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마음 편하다. 천식환자인 사장님은 세상에 나가는 것이 힘들다.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일단 그렇게 넘어 간다 하더라도 무지개크리닝 사장님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 외출도 못하게 됐을까.      


관심이 가는 소수자 문제는 참 많다. 그 관심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분명히 관심의 비중은 사회의 총적 향방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 나열로만 취급하거나 맹목적인 상대주의로 경도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자를 구입하여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 대해 보이는 관심과 외출이 차단되어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천식환자에 대한 관심의 무게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물론 그 시선에는 언론이라는 렌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마 시합 중계를 하듯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1번, 2번 말의 경합을 보여주고 광고수입을 챙겨가는 그들의 꼬락서니가 천박하다고 느끼는가. 그런 천박함은 보수와 진보 간판과 무관하게 만연한데 바로 소수자 인권 문제에서는 더욱 여실하다.     


다행히 무지개크리닝 사장님 곁에는 언제나 그를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사모님이 계신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세탁소에서 늘 남편을 챙겨주고 가게의 든든한 기둥이 되던 모습은 좀 줄었다. 그래도 자주 나타나 나와 사장님 사이에 진행되는 업무를 체크한다.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어떤 것이 문제가 있어 고쳐야 하는지 함께 듣고 함께 움직이다 보니 어려운 시기도 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이렇게 부부가 긴밀하게 협조하는 곳에서는 내가 실수하면 두 배로 비난을 받기 때문에 더 정성을 쏟게 되어 있다. 비록 가난한 분들이지만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노래는 이런 곳에서도 불린다. 풍진 세상에 태어나 힘겹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무지개크리닝 사장님 부부에게 크나큰 영광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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