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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유 Jun 10. 2024

내 몸아 미안해.

피로누적으로 힘든 나의 몸에게

내 몸아 미안해.
쉬지도 않고 계속 달리고 있었구나. 
미안해. 잠시 쉬어가자.



5월 내내 빡빡한 일정으로 달리고 나니 혼이 쏙 하고 나갔다. 

5월을 회상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슨 일들이 있었지? 나에게 어떤 일이 인상 깊었지?


기억에 남는 건 가족과 함께한 3박 4일 제주도 여행, 출판사 투고, 미팅, 계약, 그 외 모임

모임도 갖가지였다. 대학원 모임, 아기동반모임, 삼둥이 돌잔치, 라라크루 합평회, 연메모임, 자문자답 태양의 서커스단. 그리고, 무려 시댁도 3번이나 다녀왔고, 결혼기념일, 회사 복직 겸 방문.


휴대폰 일정표에 단 2곳만 빼고 모두 일정이 있었다. 여기에 표시되어 있진 않아도 아가와 놀이터 산책까지 더하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는 거다. 6월 9일에 5월 한 달을 정리하다 보니, 계속 무언가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난 어느 순간 또 제로(0)로 만들어 놓았던 값에서 +(플러스)가 되고 있다. 또 인증, 할 일, 인증. 

왜 가만히 있다가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지 보았더니. 불안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뭐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몰라.'


나를 알리기 위한 것들, 하루하루 내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다.



오늘 나는 물먹은 솜처럼 침대와 한 몸이었다. 왜 이렇게 몸이 축 처져 있을까 생각해 보니, 오늘은 카페인을 1도 섭취하지 않았다. 먹은 거라곤, 아침에 전자레인지에 돌린 머핀, 남편과 느지막이 먹은 점심 한 끼였다. 입맛도 없고, 허리와 배를 송곳으로 콕콕 쑤시는 것 같다. 여자라면 직감했겠지만, 역시나 생리통이다.


어젠 아기 유아식 닭고기, 소고기를 삶아서 닭죽과 소고기 뭇국을 끓였다. 아기 반찬을 만들다 보면 기본 1시간은 훌쩍 넘긴다. 3-4시간은 서있었던 것 같다. 아기가 자는 틈을 타 시작했지만, 아이가 깨어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아침에 눈을 뜨면, 내 몸을 끊임없이 움직인다. 자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데, 어젠 저녁 8시쯤 되어 거실에 아기 매트에 누웠다. '아 나 정말 허리가 아파. 비가 와서 그런가. 오래 서있어서 그런가. 나 그냥 30분만 이렇게 쉴게. ' 베개와 이불도 필요 없었다.


그냥 자면 될 걸. 오늘 해야 할 몇 가지 일이 남았다며 밤에 몸을 일으켜 독서며, 블로그며, 내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내 몸이 힘들다고 말을 해도 나는 멈출 수가 없다. 아기 밥도 챙겨줘야 하고, 응가하면 씻겨줘야 하고, 날씨가 좋은 날은 산책도 가야 하니까.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 슬로 모션이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느려진 것 같다. 꼭 고장 난 로봇 같다.


고요한 밤 내 몸과 대화를 시도한다.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는 머리를 좌우로 왔다 갔다 손끝으로 머리를 톡톡톡 두드리고 주물렀다. 왼쪽으로 다섯 번, 오른쪽으로 다섯 번 고개를 돌려봤다. 고개도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수리 방향에 집중해서 겨우 고개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어깨엔 5kg 정도 되는 모래주머니를 올려놓은 듯하다. 앞으로 굽어진 어깨, 아기와 미끄럼틀 타다 쓸린 팔꿈치. 두 손 바닥을 비벼서 열을 내어 목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곤 뒤쪽으로 해서 어깨를 주물렀다. 돌덩이처럼 굳어진 어깨. 


몸에게 말을 건다. 


"미안해. 그동안 나를 따라다닌다고 고생 많았어. 뒷목이 뻐근한 거, 어깨가 뭉친 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미안해. 물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미안해. 너를 빨리 재워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두통, 목과 어깨의 뻐근함. 퀭한 눈,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는 눈. 미안해. 충분히 활용한 후엔 휴식이 필요한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


내 손바닥으로 왼쪽 심장에 손을 올렸다. 내 몸이 움직일 수 있게 숨을 불어넣어주는 나의 심장. 심장이 뛰는 걸 잘 느끼지 못할 때는 목 주변이나 가슴, 배에 손을 올려본다. 내 몸에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걸 느껴본다. '심장아 건강하게 뛰어줘서 고마워!'


식도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의 식도와 위. 아침마다 속이 쓰린 게 식도염 같다. 되도록 밤에 안 먹고 자려고 하는데 몸을 깨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문제였을까. 아기를 보다 보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밥을 천천히 먹는 나는 어제도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내 마음과 손, 입이 따로 놀고 있었다. 이럴 땐 꾸역꾸역 먹는 것보단 숟가락을 내려놓는 게 마음이 편하다. 어디선가 하루에 3끼를 다 챙겨 먹지 말고, 배가 고플 때 조금씩 먹는 게 좋다고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 2끼 정도 먹는다. 샐러드와 병아리콩과 닭가슴살과 밥 조금. 그럼에도 몸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다른 걸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밥이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해 초 건강검진에서 자궁내막이 두꺼워져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자궁내막이 두껍다는 건 생리를 할 때 출혈량도 많고, 생리통이 심하다. 많이 심한 분들은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자궁 내에 장치를 설치한다고 들었다. 더 심해지면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몸이 피곤할 땐 생리통의 강도가 세진다. 


침대 위에 누워 따뜻한 손바닥으로 배를 쓰다듬어 준다. 손바닥을 배에다 대고 몸에게 말을 건다.

"나의 자궁아. 널 실제로 보거나 만져본 적은 없어. 하지만 네가 있다는 걸 알아.

 아기 가졌을 때 자궁초음파에서 널 봤으니까. 까만 화면 속에서 아기를 품어주었던 너.

 그래서 더 고맙고, 너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계속 잊어버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씩 네가 있다는 걸 알려줘서 고마우.

 너의 두꺼워진 내막이 얆아지긴 어렵겠지만, 내가 건강하다면 네가 두꺼워지는 걸 더디게 할 수 있을 거야.

 다시 몸을 챙기고 내 마음도 챙겨볼게.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배를 만지면서 내 뱃속에 있는 장기와 자궁이 내 안에 있다는 걸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게. 

 지금도 아프지만, 이것보다 더 아프지 않아서 고마워.

 견디다 못해 먹은 알약 하나가 고통을 더디게 해 주는구나.

 나의 자궁아 고마워. 조금은 아프지만, 지금처럼 건강하게 내 뱃속에 있어줘서 고마워."


요즘 늘 손발이 퉁퉁 부어 있다. 부종스타킹을 신어도 발과 다리가 붓는구나. 임신했을 땐 거의 코끼리 발처럼 부어서 신발도 안 들어가더니. 손과 발이 계속 붓는구나. 손과 발을 연신 주물러 준다. 



일상 속에서 내 몸을 돌봐주면 좋을 텐데,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내 눈앞에 있는 일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내 몸아 괜찮니?" 쉬어가며 몸을 주무르거나 다독거려 주고 싶다. 유독 내 몸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밤이다. 이젠 스위치를 끄고 잠에 들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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