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담
6주 7/25-7/31
7/29 첫 산부인과 진료
남편과 집 근처 산부인과로 유명한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다. 남편과 병원에 같이 간적도 거의 없었거나와 산부인과에 같이 간건 처음이었다. 1층에서 접수를 하고, 2층 산부인과로 올라갔다. 데스크에서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주었는데 남편의 인적사항을 적는 것을 보고 남편의 존재가 실감이 났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서류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남편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등을 쓰며 남편이 나의 보호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직 주소변경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법적인 부부가 아니였다. (오늘은 혼인신고, 전입신고, 임산부 등록까지 프리패스로 하는 날이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쇼파에 앉아 있었다. 이름을 불리었고(수동태다. 이름이 불리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고 몇 가지 사항에 대답을 하고, 진료용 치마로 갈아 입었다. 초음파를 보기 위해 입어야 하는 과정이었으니.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준비를 하신 후 남편을 불러 주셨다. 이 의자에 앉는 것도 어색하지만, 남편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더 긴장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구수한 사투리의 억양으로 또박또박 “산모님 임신 맞구요. 여기 보이는 게 난황이고, 여기 작게 보이는 게 아기에요" 하며 확대해서 보여주셨다. 주수 상 7주이지만 배란일이 늦기 때문에 6주 4일정도로 추정된다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하는 사이'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아기 심장 소리(122bpm)라고 하시며 들려주셨다. 너무 순식간이라 이게 뭐지? 그 리듬에 맞춰 한동안 정지된 느낌이었다. 0.69cm인 아기. 채 1cm 도 되지 않는데도 이렇게 심장소리가 크고 정확하게 들린다고! 너무 일정해서 이게 정말 아기 소리가 맞는지 믿기지 않았다. 두근두근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아쉽게도 아기의 심장소리를 영상에 담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니, 다음번에는 꼭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야 겠다.) 그래도 초음파 진료를 하고 난 후 초음파 사진을 뽑아주셨다. 난황과 아기가 보이는 사진으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남편과 의사선생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아기가 주수보다 작다고 하시며 예정일이 2023년 3월 13일인데, 1주일 뒤쯤 3월 20일쯤이 예정일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우리 부부가 만난 것이 3월 20일인데 아기가 우리의 만난 날을 축하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임신 진단서와 진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카드신청서를 주셨다. 남편과 첫 산부인과 방문기이다. 남편은 진료실을 나오며 아기를 확인하고, 심장소리를 들을 때 눈물이 날 뻔 했다고 말했다.(울지 그랬어. 그랬으면 나도 같이 울었을텐데 ^^) 하루 종일 같이 다니는 내내 아기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남편과 나의 삶의 큰 변화가 찾아왔다.
이 날의 일정이 많았으니, 우리는 관할 구청에 가서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아이가 생기면 혼인신고도 하고 전입신고도 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혼인신고서의 왼쪽은 남편이 작성, 오른쪽은 내가 작성하는 부분이었다. 서로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본적) 등을 적었고, 부모님의 성함도 적었다. 혼인신고도 바로 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 의미를 두고 하나 되는 느낌을 가지고 싶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온라인으로 다 되지만, 남편과 관공서를 돌며 서류를 처리하며 이제 우리는 법적인 부부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혼인신고 절차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1년간 남편과 살았지만, 남편은 1인 1가구였다. 별 다른 건 아니지만 재난지원금과 수당관련으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또한 집을 살 때 신혼부부 특공과 별다른 혜택이 없어서 옮기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전입신고 신청이 되었으나 세대주인 남편이 확인해야 함으로 남편과 주민센터도 들렀다. 그리고 나의 운전면허증 뒷면엔 현재 주거지인 주소의 스티커가 붙였다. 이제 나도 이쪽 구소속이 되는것인가!
아침부터 빡빡한 일정이었다. 시간이 어중간 하여 점심을 먹고 보건소에 들리기로 했다. 점심은 광안리에서 든든한 장어탕과 회비빔밥을 먹었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남편과 바다를 느끼며 잠시 해변을 걸었다. 이제 둘이 아닌 셋이 되어 걷는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차를 돌려 보건소로 향했고, 임신증명서를 직원에게 보여드리고, 임산부를 위한 선물과 안내를 들을 수 있었다. 선물은 엽산제, 젓병세척솔, 안내책자 등이 들어 있었다. 산모도우미 지원도 받을 수 있고 다양한 혜택과 병원 진료비 할인에 관한 사항도 들었다.
결혼식 이후 이렇게 남편과 동행하며 서류에 사인을 하고,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서류상 독립을 하였고, 남편이 나의 보호자, 내가 남편의 배우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과정을 시작하였다.
하루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일을 본 느낌이었지만, 내 삶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주거지에서의 주민임을 인식하는 시간이었음을. 아직 내 몸에 1cm 도 되지 않는 작은 생명체가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태아를 위해서도 내 인생을 책임지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위한 것이 곧 아기를 위한 것 일 테고,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2주 후에 만날 아이의 모습을 기다리며.
나리야.
이 세상에 온것을 환영해.
너의 심장 소리가 쿵쿵 뛰는데
엄마의 심장도 쿵쿵 소리가 나면서 떨렸어.
1cm도 되지 않는 조그만한 너의 심장소리는 아빠를 닮았나봐.
아빠 심장소리도 아주매우 건강하게 쿵쿵 하고 잘 뛰거든~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심장소리를 좋아해.
건강하고, 또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엄마와 아빠는 평범한 부부였어.
평범한 일상속에 나리가 소중한 선물처럼 와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는 이제 법적인 부부가 되었고,
법적으로 나리를 책임질 어른이 되었어.
엄마 아빠를 한층 더 어른으로 성장시켜줘서 고마워.
오늘 아빠와 손잡고 걷던 해변길을 잊지 못할 것 같아.
우리 셋이서 처음 걷는 바다이기 때문이야.
나리의 사진을 보며 흐뭇하게 웃던 아빠의 모습도 기억해두려고 해.
우리 2주 후에 조금 더 커서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