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혼자 걷는 길 - 마음 따뜻한 지트 주인 알프레드
6시쯤 일어나 6시 반 조식을 먹는다. 자연스럽게 모르는 이들과 합석을 하고, 어디까지 걷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서로 묻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함께 식사하던 할머니가 미사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식사를 마무리하자고 하지만 할머니의 친구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7시 미사 10분 전에 대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미사는 경건하고 음악은 아름답다. 많은 이들의 표정에 두근거림, 작은 긴장, 행복감이 묻어난다. 평범한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과 성당 직원들이 순례자들을 모은다. 순례자들을 축복해주는 시간이다. 신부님은 먼저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묻는다. 모르는 지역명들, 어디선가 들어본 곳까지 다양한 이름들이 나온다. 이다음에는 프랑스 외 국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 시간.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아시안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그때 내 옆의 성당 직원이 내 국적을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 답하였다. 눈이 동그랗게 된 직원이 손을 번쩍 들더니 “꼬헤 뒤 쒸-드!!” 하고 외치자 신부님이 더욱 크게 "꼬헤 뒤 쒸ㅡ드!!!!"하고 외친다. 약 200명가량의 순례자들이 일제히 돌아보는 순간, 뭔지 모를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이 시간을 계기로 10일 일요일 르퓌에서 출발한 이들은 한국인 여자애 하나가 순례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날 만나면 다 꼬헤 뒤 쒸드!! 하고 인사하는 바람에 국적을 이야기하는 수고를 덜었다. 하하. 뭐 시누아즈가 아닌 게 어디야.
길을 걷는 첫날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온몸이 쑤시고 가방은 너무 무겁다. 또 시작은 왜 이리 가파른 오르막인지 모르겠다. 낑낑대며 언덕을 오르는데 너무 많은 프랑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응원하는 바람에 힘든 티도 못 내겠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출발했다. 어림으로 짐작해 보았을 때 적어도 200명. 들뜬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대부분 콩크나 카오르까지 가는 모양이었다. 전체 구간을 일주일씩 끊어서 다음에 기회가 생길 때 나머지를 걷는다고 한다. 나는 산티아고까지 간다 하니 혀를 내두른다.
길가에 산딸기가 엄청 많아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속 따먹는다. 따서 나도 준다. 신나게 받아먹는다.
풍경은 아름답다. 산과 언덕이 어우러진 풍경. 파리와 리옹에서 느꼈던 도시의 시끌벅적함을 잊을 수 있다. 비로소 내가 떠나왔구나 하는 평안함을 만끽한다. 더불어 많은 이들이 나에게 준 선물들이 새삼 감사해서 인증샷도 찍었다.
엄마 대모님의 발목 보호대와 전 직장 동료인 최 모 씨의 등산양말. 결국 구멍 나 버렸다. 이외에도 박 모 선배의 된장국과 사탕은 굶주린 나의 요긴한 양식이 되었다.
전 직장 동료의 선물. 예쁜 배지이다. 실은 스페인 어디선가에서 분실되었는데, 양심에 찔려서 아직 말을 못했다.
내 순례 첫날의 가장 큰 실수가 있었다면 그건 '먹을 것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것'이리라.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간 귀찮아서 거의 안 먹고 운동하기 바로 전 끼니만 잘 챙겨 먹어 왔었다. 놀랍게도 첫날부터 나는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굉장히 힘들었다. 배 고르면 우울해지는 나이기에 중간중간 당이 떨어져서 표정이 일그러진다. 생 프리바 달리에를 지나서 예약한 지트가 있는 콩브리오 가기 전까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맛봤다.
지트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다.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이내 나오는 지트 주인 알프레드. 영국인인 알프레드는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짐을 받아준다. 거기다 웰컴 드링크를 두 번씩이나 건네고 온갖 베풀 수 있는 친절은 다 베푼다. 심지어 안내서인 미암미암도도에는 빨래 불가능이라고 되어있는데 빨래까지 무료로 해준다 한다. 분명히 아내인 파스칼한테 혼났을 거야.
지트 2층, 내가 쓴 침대. 1등으로 도착한 터라 가장 안쪽의 잠을 방해받지 않는 곳을 차지할 수 있었다. 화장실은 반대편 끝.
따뜻하고 편안한, 프랑스 시골집 느낌의 인테리어. 각종 소품이나 가구 사진 찍은 게 너무 많은데, 차마 다 못 올리겠기에 이것만 올린다.
내가 실제로 벽난로 쓰는 걸 처음 본다 하니 알프레드는 장작을 갖고 와서 불을 피워줬다. 불은 따듯하고 귀여운 고양이 펍시는 똬리 틀고 누워서 내 옆에 자리 잡아 잠든다. 알프레드가 준비하고 있는 저녁 요리의 냄새는 벌써 내 코를 간질인다. 그 분위기는 나를 깊게 사로잡는다.
씻고 책을 끼적대고 있는데 보르도 근처 도시에서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꺄홀이 도착했다. 꺄홀은 영어를 굉장히 잘 했다. 꺄홀은 날 성당 미사 때도 보고, 내가 재빠르게 자신을 지나치는 것도 보았다고 한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던 꺄홀은 나에게 왜 이 길을 걷는지 비슷한 길은 한국에 없는지 물었다. 올레길이 떠올라 답 했지만 이 곳이 좀 더 종교적이지. 또한 한국의 근무환경은 어떤지 물었다. 꺄홀은 평소 음식점을 경영하는 삶이 너무 바쁘며, 거기에 지치는 바람에 먹고 자는 것만 고민할 수 있는 순례길을 선택했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중에 본 꺄홀은 식사 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직원처럼 정리하고 치웠다.
알프레드가 조심스레 6시 30분 저녁 시간을 조금 미룰 수 있는지 꺄홀과 나에게 묻는다. 예약한 3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저녁을 늦췄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꺄홀은 흔쾌히 오케이. 그때쯤 늦게 온 3명, 알랭 꺄트린 베르나르가 들어온다. 이 세분은 차 두대를 갖고 다음 마을까지 미리 가서 차 하나를 두고, 하나를 출발할 마을로 가져와 거기서 자는 식으로 순례를 한다 했다. 이유는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서.
나는 이 날 ‘진짜 프랑스 저녁식사'를 맛보았다. 7시부터 시작된 저녁식사는 무려 세 시간 반 동안 이어져 10시 30분쯤 내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 끝이 났다. 알프레드가 요리한 토마토 샐러드, 렌틸콩에 돼지고기구이. 거기다 디저트였던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과 푸딩은 실로 완벽했다. 거기에 알랭이 가져온 하우스 화이트 와인은 정말 달고 맛이 좋았다. 알프레드가 기분이 좋아져 더 꺼낸 야심찬 와인도 엄청나게 맛있어서 모두가 과음하고 말았다.
알랭, 꺄트린, 베르나르 3인방은 한국에 관심도 많았다. 베르나르는 친척이 한국인 입양아란다. 그녀는 서른여덟살.(한국나이론 서른아홉이나 마흔이지 않을까) 완벽한 프랑스인으로 자라나 남편도 만나고 귀여운 아기도 가졌지만 계속 우울해하다 결국 한국으로 가 어머니를 만나고 지금은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지금 한국은 어떤지 물었다. 아직도 입양이 많이 있는지, 출산율은 어떠한지, 젊은이들이 결혼은 많이 하는지(프랑스의 최근 만혼 혹은 비혼 트렌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등등.. 이렇게 사소한 와인 이야기, 사는 이야기, 한국 경제의 성장, 세계의 분쟁지역 등등 수많은 화제를 어떻게 그렇게들 끌어내는지 굉장했다.
식사 자리가 무르익다 못해 모두 약간 취해 시끌시끌해졌을 때, 알프레드는 나에게 따로 조심스레 네가 길을 걷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고 싶어서.’ 였기 때문에 대답하기가 두려웠다. 나의 얼굴을 읽은 알프레드는 나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은 여행을 하고 싶어 하거나, 은퇴해서 시간이 정말 많거나, 아니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야. 네가 어떤 이유로 걷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정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하길 기도할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친절한 프랑스인 상위 10퍼센트를 너는 길을 걸으며 만날 수 있을 거야!”
왠지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또한 친절한 프랑스인 상위 10퍼센트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 잠든 고양이 펍시, 코에 맴도는 소나무 장작의 향, 맛있는 와인과 요리, 친절하고 상냥하며 순례길의 기대감에 가득 찬 사람들, 따스한 지트 주인 알프레드와 빠스칼.
내 GR65의 첫날은 그렇게 완벽하게 아름다운 날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