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게 비인지 눈물인지

6. 혼자 걷는 길 - 몹시 추웠던 오브락고원과 시끌벅적 나스비날공립지트

by 소아

9월 14일 목요일

GR65 Aumont-Aubrac - Nasbinals 26km


오늘도 의도치 않게 1등으로 일어난다. GR65에서는 여섯시 반 정도에만 일어나도 1등으로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몇몇 숙련 순례자들이 있을 땐 이야기가 달랐지만. 세수를 하고 나와 보니 지트 주인이 막 빵집에서 가져온 따끈한 바게트를 자루에 담아 왔다. 봉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아침식사를 차린다. 아침식사는 예쁘게 자른 바나나, 내가 사 놓고 미처 다 못 먹은 포도, 오렌지, 각종 잼, 빵, 그리고 커피와 주스. 요 며칠 프랑스식 아침식사를 먹으면서 느낀 것은 항상 저 사발은 '커피'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 처음에는 시리얼 같은 걸 담아 먹나 했는데 아니었다. 저 큰 사발은 거의 커피 한 사발을 위한 것. 커피 한 사발, 오렌지 주스, 그리고 바게트가 항상 아침의 기본이었다. 지트 주인과 나는 7시에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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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몽오브락 지트에서의 아침식사 모습


요 며칠 생활 패턴이 생겼다. 여섯시 반 정도에 일어나 7시쯤 식사를 마친다. 그리고 여덟시쯤 길을 시작한다. 만약 길이 더 길다면 아침에 좀 더 빨리 출발하는 것을 택한다. 26km는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다. 평소와 같이 8시에 출발한다. 아침 8시인데도 어둑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지트 주인이 인사를 하러 나온다. 부디 평화로운 길이 되기를!

출발한다. 오늘은 어째 추위가 심상치 않다. 비가 가로로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분다. 바람막이만 입고 출발했는데. 이내 우비를 뒤집어쓴다. 쏘그 이후부터는 계속 우비를 사용하고 있다. 파리 데카틀롱에서 좋은 우비를 사길 정말 잘 했다. 아침 출근 혹은 배송을 하는 트럭만 오가는 시골길. 혼자 길을 철벅철벅 걷는다.

좀 내리고 그치겠지.... 하는 나의 생각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굉장히 추웠다. 당시 친구들에게 하소연 한 카톡 창을 보니 그날의 나스비날 최저 / 최고 온도가 3 / 9℃이다. 그때 한국이 14 / 29.8℃였으니 말 다했지 않는가. 거기다 내가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내던 지점의 해발고도가 1160m. 대관령 양떼목장의 해발고도가 750~1,100m라고 하니 감이 오시리라 믿는다. 껴입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껴입어도 춥다. 비를 피하려고 입은 우비는 오히려 추위 방지 용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비도 결국에는 땀복이고 비가 들이차기 마련이다. 우비 안에 들어온 빗물과 땀에 너무 추워서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9월의 프랑스는 누가 온화한 기후라고 했던가. 프랑스 파리와 리옹의 일기예보는 순례지의 일기예보와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다.

오브락은 고원지대이니, 후에 길을 걸으실 분들은 꼭 참고하세요. 손바닥 뒤집듯 날씨가 바뀐답니다. 제가 걸었을 때 유난히 이상기후였다고 해요. 이상하게도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합니다. 제가 걸었던 기간 일주일 뒤에 걸었다는 어떤 순례자는 매일같이 화창한 오브락 지역을 보았다네요. 저랑 비슷한 기간에 걸었던 순례자들은 그 사람을 정말 몹시 괴로울 정도로 부러워했답니다.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나 죽겠다. 오픈한 바나 레스토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존본능이 활발히 작동하고 있을 때, 작은 치즈 농가에서 커피나 티를 판다고 간판을 내놓은 것이 눈에 띈다. 조금 전부터 함께 걷고 있던 벨기에 할머니와 나는 그 농가로 거의 뛰다시피 걸어간다. 저곳에서 티를 팔지 않으면, 난 정말 울 거야. 할머니의 진심 어린 농담에 그야말로 웃프다. 우비의 효능을 믿을 수 없어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걷는다는 벨기에 할머니 프랑소와즈는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 꼴. 나는 두꺼운 형광 주황색 비닐을 뒤집어쓴, 물에 빠진 생쥐 꼴.

농가에 다다라 종을 당긴다. 딸랑딸랑. 간절하게 거기 누구 없나요!!를 외치는데 프랑소와즈가 더 큰 목소리로 프랑스어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종을 더 열심히 당겨봐!!!라는 레이저를 쏘신다. 물론입죠! 그때 뒤에서 나에게 곤니치와를 매일 인사처럼 하던 아저씨 3인방이 온다. 그들 또한 꼴이 말이 아니다. 그때 농가에서 잠에서 덜 깬 듯한 배불뚝이 아저씨가 봉주- 하며 나온다. 우와 만세!!

추울 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따뜻한 것! 쇼콜라쇼를 내가 먼저 주문하자 도미노처럼 그 자리의 모든 이가 쇼콜라쇼를 주문한다. 주인아저씨는 따끈한 난로 여러 개를 틀어준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주인아저씨는 쇼콜라쇼 다섯잔을 재빠르게 타 내어 주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침 그를 기다렸다는 듯 프랑소와즈는 가방에서 기다란 바게트 샌드위치를 꺼내 함께 먹는다. 내 가방에도 바게트는 있었지만 뭔가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어 먼저 걸음을 옮기겠다고 인사했다.

비가 좀 가늘어질 줄 알았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얼굴에 흐르는 게 비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다. 추우니 비가 얼굴을 때리는 것이 진짜 아프다. 그때 마을 한가운데 공용공간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불씨가 까무라지기 일보 직전인 난로가 있고 장작이 쌓여있다. 따듯한 곳에는 고양이가 있기 마련. 고양이 두 마리가 야옹거리며 다가온다. 원하는 만큼 기부하고 이용하세요- 하는 안내 문구와 잔돈이 있다. 순례자들이 두고 간 책도 있다. 불씨를 살리기 위해 마르고 가는 장작으로 불쏘시개를 만든다. 예전에 장작가마 때던 기억을 떠올려 마른 종이와 가는 장작으로 불씨를 살린다. 불씨가 조금 살아난 뒤 굵은 장작을 두어 개 넣어 불을 지핀다. 공간에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가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을 보고 들어와 보더니 봉주- 하고 인사한다. 그러더니 뭔가 구시렁 구시렁거리더니 문을 조금 연다. 아마 산소가 부족할 수 있으니 문을 열어두어라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비에 끄트머리가 조금 젖은 바게트를 먹는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세상에서 제일 고소하고 맛있다. 그때 다른 순례자 커플이 들어온다. 처음 보는 이들이다. 그들은 잠시 비를 피하더니 환기를 한다. 그리고 이 불을 네가 피웠니 하고 묻는다. 그러더니 고맙단다. 천만에 ;-) 이어서 줄줄이 순례자들이 들어온다. 길 걸을 땐 그리도 보이지 않더니만 모두들 비 피할 곳을 찾았던 모양이다. 아까 쇼콜라쇼를 함께 한 벨기에 할머니 프랑소와즈도 들어온다. 다들 몸을 조금씩 녹이고 길을 떠난다. 나도 바게트를 절반 정도 먹고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검은 무늬 고양이가 벨기에 아주머니 무릎에 앉는다. 너도 좀 데리고 있어볼래? 정말 따뜻하단다. 너무 귀엽고 안고 싶지만 벼룩 같은 것이 조금 무서워 거절한다. 으- 저 비 속을 뚫고 가야 한다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길을 나선다. 비가 오고 춥다고 해서 길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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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가 살아나 온기가 감돌기 시작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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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걸 주지나 않을까 하고 나를 열렬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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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따뜻한 곳은 다 고양이 차지일 게다.


그렇게 비가 오던 것이 우습게 갑자기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하늘이 맑아지니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추우니 소들도 풀을 뜯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다. 우비 때문에 내가 방패연처럼 날아갈 것 같다. 난 무겁지만 이 바람만은 날 날려버릴 것 같다. 우비를 대충 뭉쳐 백팩 헤드 부분 바로 밑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일주일 정도 되어가니 스틱이 내 몸과 같이 움직인다.


그때 건장한 프랑스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건다. 아무래도 혼자 재빠르게 걷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보폭은 그 할아버지가 훨씬 넓지만 속도는 얼추 비슷해 한동안 함께 길을 걷는다. 소방관으로 평생 근무하다 올해 은퇴했다는 할아버지. 자신의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거기에다 넘치는 프랑스 사랑까지. 내가 아는 프랑스어 한두 마디를 이야기하니 할아버지가 앙 드 트와 꺄트흐 쌍끄 하고 숫자를 가르쳐준다. 내가 자꾸 틀리니 요 귀여운 아가씨(?) 하면서 거듭 가르쳐준다. 너무 춥고 턱이 떨렸지만 말이라도 해야 죽지 않을 것 같아 계속 숫자를 떠들었다. 덕분에 그 후로 돈을 계산할 때 숫자만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서너 시간 함께 걸으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허물없이 대화를 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삼촌처럼 장난도 친다. 정말 한국이고 프랑스이고 사람 by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떤 이들은 며칠 내내 함께 걸어도 어려운 반면 어떤 이들은 한두 시간 만에 모든 벽을 무너뜨리고 세상 제일 가는 친구처럼 다른 이들을 대한다.

마음이 뻥 뚫리는 평원을 만났다. 소방관 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몽골에 여행 가서 보내온 사진과 비슷하다며 뿌듯해한다. 사진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이 나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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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아름답다. 근데 춥다. 행복하다. 빨리 가서 샤워하고 싶다. 배고프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나를 지배하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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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뒤돌아 보니 아까 추위를 피해 마을 공용공간에 머물던 이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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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65를 걸으며 소는 원 없이 보았다. 소방관 할아버지가 이 지역 소가 '예쁘기'로 유명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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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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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림처럼 구성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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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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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다 찍은 십자가.



비가 그치고 나서 생각보다 금방 나스비날에 다다랐다. 아무래도 비가 그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진 데다 소방관 할아버지와 숫자 수업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같다. 기쁘게 걸어가고 있는데 두 명의 소피를 또 만났다. 두 소피는 길을 다 걸었다며 돌아갈 차편을 알아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이 인사한다.

"올해 결혼하게 되면 한국에 초대해줘~"

저 사람들이 아주 끝까지 그냥^^!

공립 지트를 찾기 어려워 관광안내소에 들렀는데, 이 길을 걸으며 두 번째 동양인을 만났다. 첫 번째는 생 로크(호슈)성당앞에서 만났던 파리지앵 한국인, 두 번째는 베트남에서 온 중년의 여성이었다. 내가 너무 반가워하며, 아시안을 만나기 힘든데 정말 좋네요~ 하고 인사하니 이 분도 뛸 듯이 기뻐한다.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며, 여행 갔을 때 정말 좋은 추억이 남았다며 나만큼이나 날 반겨 주었다. 이 분은 길을 다 걷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유명한 마을을 들르는 식으로 여행을 한다 했다. 내 안전한 순례길을 바란다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의 숙소는 나스비날의 공립 지트. 지트에 들어가니 관리자도 보이지 않고(후에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공립 지트는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는다. 시간이 되면 온다. 나스비날 공립 지트의 경우에는 오후 6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맸다. 그때 젊은 커플이 2층에서 말을 건다. "안녕~ 뭐가 필요하니?!" 프랑스어로 말 걸길래 내가 "너희 영어 할 줄 아니?"라고 짧은 프랑스어로 물어보았다. 그들은 신나게 "그럼! 우리는 영어가 가능해! 안심하고 이야기하라고!"한다. 순간 빵 터져서 셋이서 신나게 웃었다.

그 커플들은 입구에 내가 묵을 방 넘버가 있을 테니 확인해 보라고 도와줬으며, 관리인이 6시에 올 것이니 그때 도장을 받고 숙소비를 내면 된다고 알려준다.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에도 안내 종이가 프랑스어, 영어로 되어있다. 그때 같은 방에서 묵을 다른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그 할머니는 반갑게 나에게 인사하며, 함께 먹을 것을 사러 가지 않겠냐며 제의한다. 오늘이 걷기 첫날이라는 할머니. 작년에 오몽오브학까지 걸었고, 올해 오몽오브학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단다. 순례길을 걸으러 이 먼 프랑스까지 왔냐는 할머니는 유난히 날 아끼면서 보듬어주었다.

지트 올라오는 언덕길에 슈퍼가 하나 있었던 것이 떠올라 할머니와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마을에 막 도착한 알랭과 베르나르가 신나게 온몸으로 팔을 저으며 인사한다. 또 곤니치와 3인방 할아버지들, 그리고 이외에도 오며 가며 인사하던 사람들이 다 내게 인사한다. 심지어 날 모르던 사람도 날 아는 다른 사람들이 "쟤가 내가 얘기했던 그 한국에서 왔다는 순례자야!"라고 얘기하니 아~~ 하며 또 인사한다. 함께 먹을 걸 사러 갔던 할머니는 너 정말 인기쟁이구나.. 하고 감탄한다. 그럴 리가요, 할머니. 그냥 주목 받기 쉬워서 그런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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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걸 샀던 수퍼가 왼쪽에 보인다. 오른쪽은 나스비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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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래 관광안내소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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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비날 성당 앞의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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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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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어 지트 관리자가 왔다. 식당에 다함께 모여 돈을 내고 출석 체크를 한 뒤 도장을 받는다. 그 뒤 식사 준비를 한다. 아무래도 공립 지트고 다들 알아서 해 먹는 분위기이니 저녁식사시간이 조금 이르다. 나는 너무 맛있어서 또 사버린 냉동 알리고(맛이 좀 떨어진다. 조금 후회했다.)와 샐러드를 먹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수프를 나누어 주었고, 다른 룸메이트 퀘벡 아주머니는 나에게 파스타를 나누어 주었다. 다 함께 식사를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젊은 커플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식당에 모였다. 나 이외에는 이탈리아 아저씨 하나, 바스크인이라고 하는 바욘에서 온 분 하나, 그리고 전부 프랑스인이었다. 약 열댓명정도 되는 사람들 중 중국인 이외의 아시안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가 처음이라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약간 놀라운 일이었다.

그 분들 중 바스크 분은 아시안들은 왜 밥 먹으면서 쩝쩝거리고 시끄럽게 먹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제가 그렇게 먹나요?"라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너는 조용해서 신기했다고 답했다. 나는 "적어도 한국인들은 밥 먹을 때 대화를 나누는 것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먹는 게 예의입니다. 지금 제가 하는 것 처럼요. 그리고 저는 제가 밥 먹을 때 이야기를 해야 하면 내 입 속이 보이지 않도록 입을 가리면서 이야기하곤 하죠. 당신의 입 속에 있는 것을 내게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조금 다를 수 도 있어요." 말 하면서 표정관리를 잘 했는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한국은 가난한 지 가난하지 않은지 묻는다. 강남대로나 잠실, 집 근처 등 서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내 폰에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 사진들을 보여주니 놀라기도 하고 대충 납득 한 눈치였다. 또 눈이 내리는 곳인지, 북한은 왜 이렇게 남한과 다른지, 왜 여기 여행을 왔는지, 최근 스페인 내 프랑스 길에 한국인들이 많다던데 이유가 무엇인지, 프랑스 이곳 GR길에도 많이 오게 될 지 등등 쏟아지는 질문들을 받았다.


다행히 걷기 첫날부터 프랑스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가질만 한 질문들을 많이 받았고, 걸으면서 그에 대해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답변하기 조금 수월했다. 나름대로 진땀 흘려가며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설명했는데, 그들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비뚤어진 마음에는 비뚤게, 바른 마음에는 바르게 닿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요리한 걸 나누기 시작한다. 그 중에 내가 제일 어려서인지 아가들 음식 먹이는 것 처럼 모든 이들이 내게 음식을 권하기 시작한다. 결국 내 넓은 접시는 사방에서 받은 음식으로 그득그득 차기 시작했다. 배고팠던 나는 열심히 먹었고, 어느 새 내 위장은 꽉꽉 차 버렸다. 꽉꽉 찬 위장에는 맥심커피. 소중히 싸 간 맥심커피를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빨래를 라디에이터에 널고, 신문을 구겨 넣어 신발을 말렸다. 신발은 도저히 마를 것 같지 않다. 오늘 비에 푹 젖어서리라. 이 방수 등산화의 방수 효과는 여섯째날 고인 빗물에 푹 발을 담그는 바람에 안녕 해 버렸다.

책을 조금 읽고 있는데 곤니치와 3인방이 이 공립 지트에 놀러와 지트 전체가 시끌시끌해진다. 곤니치와 3인방 할아버지는 특유의 사교성으로 순례자들의 인맥 허브가 된 듯 했다. 특히 그들은 내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다는 다른 순례자의 이야기를 듣고 굿나잇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아무래도 저녁식사와 함께 한 와인에 기분이 굉장히 좋아진 모양이다. 신나는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퀘벡 아주머니는 살짝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눈치는 빠른 곤니치와 3인방. 살금살금 본뉘 하고 인사 한 뒤 뒤꿈치를 들고 나간다. 아이같은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지만 크게 웃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 10시이다. 순례자들은 잠이 들 시간이다.

내일은 많이 걸을 예정이다. 약간의 걱정을 안고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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