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안개를 뚫고

11. 혼자 걷는 길 - 화창한 햇살과 함께 피쟉으로

by 소아

9월 19일 화요일

GR65 Livinhac-le-Haut - Figeac 24.9km

어느덧 걷기만 꼬박 열흘이 지났다. 내일 로카마두흐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벌써 열흘이 지났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벌써부터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나중에 이 길을 끝낼 땐 얼마나 마음이 허할까 미리 걱정이 된다.
아침에 벌벌 떨며 일어난다. 나만 추웠던 게 아닌지 모두가 다 침낭 안에 코만 내놓고 잔다. 계단을 내려오니 유난히 0층의 비릿한 외양간 냄새가 진하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올 예정인가보다.

지트 주인의 집인 옆건물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매일같이 프랑스인 독일인 가끔 캐나다, 스위스인만 보이던 이 길에서 다른 느낌의 여자 사람이 보인다. 괜히 반갑다. 아마 내가 묵지 못했던 다른 방에서 잠을 잤던 모양이다. 오늘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길이다. 뜨거운 커피를 한 사발 마시고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다양한 잼을 발라 바게뜨를 먹는다.

이불을 개고 정리를 마친 뒤, 출발 준비를 한다. 아까 다른 느낌의 여자 사람이 보이길래 인사를 한다. 무려 콜롬비아에서 출신에 상해에서 살고 있단다.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중국어는 물론 프랑스어도 이 길에서 배우기 시작해 줄줄 잘 한다. 몹시 부럽기가 그지없다. 내가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어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가, 한국인인 걸 알고 조금 아쉬워한다. 그리고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묻는다. 내 나이를 답하니 반가워하며, 이 길에는 너무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없어서 자기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굉장한 동안이어서 내 또래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30대 후반. 자기를 당당히 직업 없는 아줌마!라고 소개하는게 인상적이었다. 스틱을 거는 고리에 내가 데카틀론에서 산 스틱과 똑같은 스틱이 있었다. 어제부터 이 스틱은 누구 것일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이 콜롬비아 언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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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나서는데 아직 비는 많이 내리지 않는다. 성당 앞 집들 처마에 새떼가 아주 난리도 아니다. 무서울 정도로 짹짹 거리며 날아다니는 게 신기하다. 하도 신기해서 동영상도 남겨 두었다.

https://youtu.be/xenR6q4h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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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이 끼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이것은 필시 비가 굉장히 많이 내릴 징조. 이제는 일상처럼 우비를 꺼낸다. 매일 비가 내리니 이제 우비는 항상 가방 맨 바깥쪽에 넣어두고 바로 바로 손을 뒤로 하면 꺼낼 수 있게 준비해둔다. 이 우비는 도대체가 바싹 말릴 틈도 없다.

밥 먹을 곳도 보이지 않는데 어느 마을 폐가에서 순례자들이 모여 끼니를 때우고 있다. 나도 따라 들어가서 함께 끼니를 때운다. 베트남이나 동남아인으로 보였지만 알고보니 프랑스인이었던 두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꽁끄 가기 전날부터 계속 길에서 보여서 신경쓰였는데, 짧게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빨리 걷는 아시안 여자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웃기게도 나는 그들을 빨리 걷는, 키가 엄청 작은 아시안들로 보고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파테를 바른 바게뜨와 참치 샐러드 캔, 그리고 쿠키로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선다. 두 재빠른 아저씨는 나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나를 질러서 저 앞에 간다. 짙은 안개와 비 덕분인지, 길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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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이 빠르던 아저씨들.


잠깐 지나가는 나의 끼니 이야기.
나는 왠만하면 드미빵시옹으로 예약을 했기 때문에 지트에서 저녁, 아침을 해결했다. 하지만 하루 35유로정도 하는 드미빵시옹을 매일 이용하니 예산이 팡팡 남아도는 여행자가 아닌 나로서는 점심은 꼭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길가에서 먹곤 한다. 스페인의 순례자들이 바에서 아침, 점심을 많이들 해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아무래도 밥값이 스페인보다 훨씬 비싸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프랑스 안에서는 샐러드캔을 두 개씩 꼭 사들고 다녔다. 꺄르푸나 카지노같은데 가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의 샐러드 캔을 판매한다. 1유로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싼것이 1.5유로정도? 나는 주로 참치샐러드캔을 사곤 했다. 이는 요긴한 단백질 제공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제법 무겁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지는것을 염려하는 분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2~3키로 왔다갔다 하는건 괜찮았기 때문에 먹는 걸 엄청 싸들고 다녔다.

내가 프랑스 내에서 디폴트값으로 싸들고 다녔던 음식은 다음과 같다. 정말 잘 먹고 다녔다. 내 먹을 것 보따리만 해도 3~4키로가 넘나들었다.

0) 먹을 것 보따리용 에코백 : 처음에는 비닐에 먹을 것을 싸 들고 다녔는데, 이게 장 보러 갈 때 부스럭 거리는 것이 조금 민망했다. 그래서 결국 나중에 꺄르푸에서 에코백을 하나 샀다. 이걸 나는 스페인까지 잘 들고 다니고 결국 여행 최종지였던 바르셀로나까지 빨랫감 넣는 걸로 잘 사용했다. 필자처럼 먹을 것 싸 들고 다니면서 장도 보실 분이라면 한국에서부터 가벼운 에코백 가져 오는 것을 추천드린다.
1) 깜빠뉴 하나 : 빵집에 가면 바게뜨 말고 깜빠뉴를 산다. 마을 불렁제리가 없거나 닫았다면 꺄르푸에서 사곤 했다. 이건 프랑스 친구들의 조언으로 알게 된 것인데, 바게뜨보다 깜빠뉴가 좀 더 오래 먹기 좋다. 초반에는 바게뜨를 하나 사서 나눠먹곤 했는데 이게 반나절만 지나도 안이 딱딱하게 굳는다. 나중에 만난 친구들의 조언으로 깜빠뉴를 샀는데, 촉촉함이 오래가서 좋았다. 어떤 친구는 깜빠뉴 살 때 좀 더 오래 먹을거라고 말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걸 준다고(?) 하는데, 내가 프랑스어를 못 해서 그렇게 요청하는 건 실패.. 반으로 쪼개서 두 끼 먹었다.
2) 샐러드 두 캔씩 : 꽁끄 이후부터는 만날 수 있는 가게의 수가 확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길 초반에 쫄쫄 굶었던 아픈 기억이 있어서 샐러드 두 캔씩은 지고 다녔다. 마트가 일찍 닫기도 하고, 토요일이라 쉬고 일요일이라 쉬고 월요일이라 쉬면 생각보다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다. 샐러드 캔을 산 건 생장 꺄르푸가 마지막이었다. 스페인에서는 샐러드캔이 너무 비싸더라. 2유로 3유로 하는데 너무 속상해서 안샀다. 그 돈이면 바에서 다른 걸 먹으리.
3) 버터 : 나는 빵에 버터 발라먹는 걸 이해 못했는데, 여기서 먹었던 버터들이 하나같이 맛있어서 꼭 버터를 사다가 발라 먹었다.
4) 치즈 : 나는 또 식후에 치즈를 디저트로 먹는 걸 이해 못했는데, 여기서 먹었던 치즈들이 정말 하나같이 맛있어서 마트에서 치즈 덩어리나 치즈 조각조각으로 포장된 것을 크게 한 팩 사서 디저트로 먹었다. 브리치즈와 꺙탈 치즈가 그립다.
5) 쿠키 : 본마망 쿠키들 중에 비닐 뚜껑을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걸 사서 안주로도 먹고 걷다가 간식으로도 먹었다.
6) 티백 몇 개, 무적의 맥심커피믹스, 된장스프 그리고 라면스프 : 가끔 묵었던 공립지트나 아침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지트에서 티 한잔 따뜻하게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메밀차 티백이나 몇몇 지트에서 얻었던 각종 티백들을 들고다녔다. 그리고 한국이 그리워지면 무적의 맥심 커피믹스를 타 마셨다. 된장스프는 박선배가 준 것인데 이것을 보고 한국 된장국 타 먹을 수 있는것도 좀 더 사가서 가끔 한국이 그리워질때 먹었다. 라면스프도 매운 게 그리울 땐 아주 좋다.
7) 각종 과일 : 과일을 먹어야 화장실에 편안히 갈 수 있다. 내가 걸었던 시즌에는 납작복숭아에서 사과, 귤로 시즌이 넘어가고 있었다. 바나나는 항상 있었던 듯. 쏘그에서 만난 벨기에 할머니가 바나나 너무 무겁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바나나를 워낙 좋아해서 잘 싸들고 잘 먹고 다녔다.
8) 쏘씨송 : 방선배가 알려준 쏘씨쏭. 예전에 출장 다녀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선배가 나더러 소아씨라면 맥주 안주로 이게 딱이라 좋아할거라고 하셨었는데 사실이었다. 순례 초반부터 마트에 가면 쏘씨쏭 안주같이 조그맣게 먹을 수 있는걸 꼭 사서 길 중간에 힘들 때 먹었다. 힘이 들 땐 단것도 좋지만 의외로 짠 게 좋은데, 쏘씨쏭은 마치 등산길의 육포처럼 나에게 호랑이 기운을 내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물론 지트에 도착해서 좋은 안주가 되기도 했다.
9) 누룽지 : 한국에서 가져간 누룽지 과자는 한국맛이 그리울 때 가끔 먹었다. 길 초반에 먹을 게 없어서 우드득 씹으며 걷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러 길을 걸었는지 먹으려고 길을 걸었는지 헷갈리시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궁금해 하실 수도 있으니까 적어본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시간이 낮인지 밤인지 헷갈려서 우울해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개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저수지가 하나 나온다. 저수지 사이를 가로질러 난 길을 계속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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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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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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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앞에 순례자가 하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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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공터를 지나가는 길. 저렇게 말뚝에 GR마크만 덩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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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길들을 걷는다. 갑자기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걷히더니 해가 반짝 뜬다. 피쟉에 가까워오니까 너무 덥다.


피쟉은 이 GR65길에서 몇 볼 수 없는 대도시. 대도시로 들어가는 길에는 위성도시들이 많아 벌써부터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이 주체가 안되는데 해까지 떠서 기분이 완전 업 된다. 피쟉에 내려가는 길은 꽤나 힘든 내리막이었지만 피쟉에 도착해간다는 기쁨에 신나서 뛰다시피 내려간다. 쏠레이으라는 단어를 배워서 이제 남발한다. 쏠레이으~~ 거리면서 모두와 인사한다. 아까 폐가에서 함께 밥 먹던 다른 아주머니도 만나서 오예~ 해떴어요~ 하고 인사하며 기뻐한다.

피쟉에 거의 도착할 때 쯤 꽁끄에서 만났었던 캐나다 디자이너 부부를 만난다. 내가 해떴다고 날아갈 듯 기뻐하니 뭐 저런 애가 다있나 싶으신지 함께 신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내일 비행기 타고 바로 떠난단다. 그렇게 서로를 축복하고, 나는 피쟉 시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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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떴다! 우회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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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쟉으로 가는 내리막길 전 높은 곳에 있던 집.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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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쟉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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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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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향하는 길



오늘 묵을 숙소는 GR65길과 구시가지 가는 길목에 있는 지트. 들어갔는데 귀여운 아기가 빵긋 웃으며 반겨준다. 친절한 아저씨가 웰컴드링크를 먼저 내밀고, 한참동안 이야기한다. 내가 경험했던 프랑스 지트들은 도착하면 거의 다 웰컴드링크부터 먼저 내밀고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방을 안내해주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내가 너무 씻고싶어서 들썩이는 게 느껴졌는지 아저씨가 너 지금 엄청 씻고싶지? 아마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려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거야. 얼른 방을 안내 해 줄게, 맘 편히 씻도록 해~ 하고 방을 바로 안내해준다. 감사하다.

방에 들어가 보니, 어릴 적 로망이었던 천장이 어슷하게 기울어진, 지붕밑 방이다. 인테리어는 나름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편. 깔끔하고 좋다. 올라가는 계단이 너무 가파르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머리를 천장에 박기 일쑤였지만 굉장히 맘에 드는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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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바깥을 바라본다. 어쩜, 날씨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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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맨 오른쪽 침대를 썼었다.


샤워를 마치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방에 들어오기 전 바욘에서 왔다던 아저씨가 빨래 같이 하자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안맞았는지 다른 사람이랑 이미 빨래를 돌렸단다. 참 안타깝구나~ 하는데 전혀 안타깝지 않은 아저씨 얼굴에 웃음이 나온다. 어쩔 수 없지. 손빨래를 마친 뒤 1층의 빨래 건조대에 널어둔다.

여유가 생겨 피쟉 구시가지를 둘러본다. 확실히 큰 도시이니만큼 관광객도 많다. 여행안내소에서 로카마두르에서 묵을 지트 예약을 부탁한다. 무사히 지트 예약을 마치고 피쟉 성당 둘러본다. 중세의 스테인드 글라스부터 최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각종 천장화가 시선을 사로잡아 굉장히 즐거웠다. 성당을 나와 언덕 위의 다른 성당들도 둘러보고, 거리의 쇼윈도를 구경하며 간만에 대 도시의 기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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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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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고보상은 왠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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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림자가 길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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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답던 건물과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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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쟉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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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실내가구나 장식들을 만들어 팔던 곳. 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십분정도 들여다 보고 있었더니, 의자 만드는 것에 열중하시던 주인 아저씨가 들어오라고 하셨었다. 하지만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결국 사양하고 도망치듯 길을 돌아섰는데, 내가 이 길 위에서 후회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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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쟉에는 작은 강이 흐른다. 작은 강 옆에 도로를 찍어보았다.


돌아와보니 비어있던 안쪽 침대 두개에 길에서 만났던 친절한 프랑스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간다. 내려가 보니 내가 동남아인으로 착각했던 프랑스 남자 둘과 미국에서 왔다는 디아나, 바욘에서 왔다는 남자, 또 미국에서 왔다는 조셉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10인용 테이블이 꽉 찼다.

길에서 간간이 말을 걸던 조셉은 디아나를 만나서 너무나 신났는지 디아나에게 많은 말을 걸었지만 디아나는 묘하게 시큰둥. 오히려 디아나가 나에게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젊은 여자라며 너무 반가워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늘 저녁식사에서 불어가 안되는 사람은 나와 조셉, 그리고 디아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거의 셋이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디아나는 금발에 초록색으로 염색한, 꽤나 개성이 강한 아가씨. 젊음이 아름답다는 말을 그 친구덕분에 절실하게 느꼈다. 그 특유의 발랄함이 부러웠다.

나는 이상하게 피곤해서 디아나와 조셉과 간간히 대화 조금 하면서 조용히 저녁식사를 이어갔다. 식사 내내 지트 주인 부부의 아기가 울어대서 식사가 잘 이어지지 않았지만, 아기가 너무 귀여우니 모두 용서가 된다. 꽤나 큰 첫째가 막내를 보살피고, 막 걸어다니기 시작한 둘째 딸이 온 지트 안을 누비고 다닌다. 바욘에서 왔다는 아저씨가 꽤나 아재스러운 말로 나중에 아이를 갖는다면 몇 명이나 갖고 싶냐고 식사 자리 중 미혼이었던 조셉, 디아나와 나에게 묻는다. 이거 뭐냐 싶었지만.. 디아나도 나도 애는 별로! 라고 답해서 꽤나 어색하면서도 웃긴 분위기가 되었었다.

식사가 끝나도 한참동안 프랑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대화를 그칠 기미가 안보여, 나와 디아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 슬쩍 일어나 인사 하고 올라왔다. 디아나가 아까 아기 몇명 갖고싶냐고 질문 받았을 때 네 표정이 정말 웃겼다고 해서 정말 둘이 여고생처럼 한참 웃었다. 그 뒤 빨래를 확인하러 왔는데 빨래가 아직도 축축하다. 밖이 더 잘 마르겠지 하고 밖에 널어둔것들이 안말랐다. 밖에 널어둔것들을 걷어와 1층의 빨래 건조대에 함께 더 걸어둔다.

방에 돌아와 내일 기차시간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본다.

이상하게 내일 모레 로캬마두흐에서 피쟉으로 다시 오는 기차표가 뜨질 않는다. 어찌된 영문일까. 내일 기차 표 판매원이 영어가 되면 좋으련만. 약간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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