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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아 Feb 14. 2018

곧 보자

21. 당신과 걷는 길 - 헤어짐, 이어지는 길

9월 29일 금요일

GR65 Moissac - Saint-Antoine 30,5 km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간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다 싸고 가방을 멘다. 지트를 나가기 전 쟝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 아직 여덟 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다. 쟝은 아직 잠들어있다. 쟝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내 인기척에 부스럭거리며 쟝이 일어난다. 내가 좋은 아침, 하고 인사하니 몸을 일으켜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지 않던 말을 한다. 떠나지 마, 하고.

티보와 키트리는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인사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한다. 매일 이렇게 눈을 떴을 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쟝이 건네는 달달한 말들이 어딘가 쓸쓸하게 들린다.

그때 적막을 깨뜨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여덟 번, 아침 8시이다. 가벼운 입맞춤 뒤, 얼른 가 하고 쟝이 말한다. 그렇게 말 안 해도 갈 거거든. 안녕하고 인사하길래 몽큌에서처럼 곧 보자 하고 인사하고 싶다 말한다.

곧 보자.

그래, 곧 보자.



일출을 바라보며 지트를 뒤로 하고 언덕을 내려온다.

아침볕의 므와삭 수도원 성당.

새들이 날아간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몽퀵을 떠날 때 보다 비교적 가벼운 마음이다. 길도 평탄하고.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을 느낀다. 므와싹 시내를 한참 걷고 나온 후부터는 약간 지루한 운하길을 걷는다. 거기에 평지길. 산길을 탈까 고민했지만 이제부터는 많이 걸을 거니까 하고 안전한 평지길을 택한다. 짙은 녹음으로 물든 운하의 물결이 아름답게 일렁인다. 운하길을 걸으며 캐나다, 미국에서 온 순례자 2인방도 만난다. 이들은 앞으로 생장까지 자주 마주치게 된다.

므와삭을 뒤로하고

운하길을 따라 걷는다.


이 사진을 찍은 시점이 산길과 운하길의 갈래길인으로 기억한다.

강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렸다.


운하길을 벗어나니 꽤나 덥다. 정말 덥다. 마을을 하나 만나 학교 근처 공공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지나간다. 시골이라 그런지 무료로 운영되는 모양이다. 학교를 지나가니 체육수업을 하던 초등학생들이 니하오 하면서 인사한다. 이제 저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지.

강을 건너며 지평선의 원전을 본다. 원전의 굴뚝 연기가 위용을 자랑한다. 햇볕은 점점 강해지고 팔은 이글거리는 빛에 구워지는 느낌이다.


가론 강을 건넌다

지평선에 원전 굴뚝이 연기를 내뿜는다.

오빌라르 Auvillar 가기 전 작은 마을인 에스빨레 Espalais 성당 앞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었던 장소. 나 외에도 몇몇 순례자가 잠깐 숨을 돌리거나 점심을 먹고 갔다.

오빌라르 Auvillar 가기 전 아름답던 숲

오빌라르로 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하지

이 길을 걸으며 예쁜 마을을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

오빌라르를 떠나

생앙트왕으로 계속 걷자


길을 걷다 보니 프랑스인 부부인 프랑소와즈와 쟝 미셸을 만난다. 밀레 가방이 인상적인 이 부부는 며칠 전부터 내가 걷고 있는 걸 보았단다. 그래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알고 보니 생앙트왕의 같은 지트에 묵고, 그들도 산티아고까지 간단다. 이미 프랑스길을 경험 해 본 숙련자들. 나에게 유난히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 분들에게 조금 마음이 열린다.

프랑소와즈와 쟝미셸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생앙트왕에 도착한다. 3시 반 무렵일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동네 성당에 들러 감사 기도를 드린다. 지트에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프랑소와즈와 쟝미셸이 도장을 받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도장을 받는다. 순례자의 일과인 샤워를 마치고 쨍한 볕에 빨래를 말린다. 더운 날은 정말 싫지만 빨래가 바싹 말라 기분이 좋다.

쟝미셸과 프랑소와즈의 뒷모습. 생앙트왕 들어가는 길이다.

생앙투왕의 성당. 오른쪽에 널브러진 내 가방.


맥주 한 잔 하며 책을 본다. 해가 진다. 여섯 시 반이 조금 넘었을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들어온다. 티보와 키트리다. 티보 키트리와 비즈를 나눈다. 아무래도 내 눈이 분주해졌나 보다. 티보와 키트리는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쟝은 없지만 우리는 왔어 하고 말한다. 내가 민망한 웃음을 짓자 너희 너무 재밌다고 웃는다.


무난했던 저녁식사


지트에서 묵는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와보니 티보와 키트리도 저녁식사를 따로 마치고 맥주를 한잔 하고 있다. 티보와 키트리가 나에게 한 잔 산다며 맥주를 고르란다. 앗 그럴 필요 없는데! 감사하게도 맥주를 얻어 마신다.

나, 티보, 키트리, 그리고 다른 순례자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이 순례자는 아까 저녁식사 때는 말이 없었는데 지금은 말이 많다. 내가 영어밖에 하질 못하니 티보 키트리가 영어를 써 준다. 그제야 이 순례자 아저씨도 영어로 대화에 끼어드는데, 말이 없던 이유를 알았다. 자기는 영어를 못해서 말하는 게 부끄럽단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정말 잘하시는데요! 하고 말씀드리니 자신감을 얻으셔서 인생 이야기를 한참 하신다. 일주일 뒤가 자신의 50번째 생일인데, 살면서 꼭 이 길을 걸어보고 싶었단다. 자신은 트레이너로 수십 년간 일해 왔고, 항상 다른 이들의 건강을 살폈단다. 트레이너로서 멋진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자신의 몸 상태를 신경 써 왔지만, 마음 상태를 살피지 않았단다. 어느 순간 허무함을 느껴 꼭 이번 생일에는 이 길을 자신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단다. 자신의 마음을 트레이닝하기 위한 시간으로써 말이다.

아저씨는 곧 피곤함을 느끼셨는지 방으로 올라간다. 나와 티보, 키트리는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와 쟝이 길을 걷는 이유가 같다며, 너희가 왜 계속 같이 걷지 않는지 궁금하단다. 쟝과 걷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엄마와 걷기로 한 약속이 더 중요하니까. 그리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최대한 내 힘으로 걸어가고 싶으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니 충분히 납득한다.


티보, 키트리는 쟝과 걸을 때 정말 내 얘기를 많이 했다 한다. 그러면서 내 그림도 봤다고 자랑한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고 쟝이 약속했는데 어기다니!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진심을 담아 응원의 말들을 건넨다. 지나가는 안부처럼 건네는 것이 아닌, 진짜 마음을 담은 말이다. 그것이 느껴져서 괜히 눈시울이 찡하다.

달무리가 끼어 내일 비가 오겠구나 한다. 내가 그것을 이야기하니 티보와 키트리가 신기해한다. 달을 보니 다음주가 추석인 것이 생각난다. 티보 키트리에게 추석을 설명하니 신기해한다. 티보와 키트리는 솔직히 프랑스인이 아닌 아시안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란다. 한국이란 나라도 몰랐단다. 그러다가 이 시골마을까지 길을 걸으러 온 나를 만나 한국에 관심이 생겼단다. 한국에 관심이 생기니 그렇게 매일 보던 스포츠 신문의 평창 올림픽- 그 평창이 한국이란 것도 눈에 들어오더란다. 기분이 좋아진다.

티보 키트리와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복도 쪽에 큰 말벌이 웅웅 거리는 소리가 무섭다. 밤에 옆 침대를 썼던 쟝미셸이 자꾸 독한 방귀를 뀌어 숨을 쉴 수 없다. 새벽 두세시까지 한참 복도 의자에 앉아 있다 다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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