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아 Mar 13. 2018

그런 말씀은 저에게 하지 마세요

35. 반갑고 외로운 길 - 팜플로냐와 라면과 불편한 마음

10월 13일

프랑스길 Zubiri - Pamplona 20.3km


오늘은 순례길에서 몇 안 되는 대도시에 가는 날. 팜플로나에 가면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에 나는 생쟝에서부터 들떠있었다. 일어나 보니 모두 아직 자고 있길래 짐을 조심스레 슬슬 끌고 나와 가방을 다 싸고 길을 나선다.


아침에 길을 가는데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떨고 있을 때, 내 바로 앞에 어떤 여자도 혼자 걷고 있었다. 얼른 따라잡아 함께 걷자 이야기를 한다. 브라질에서 온 친구는 근육통도 심하고 왠지 이곳저곳 다 아픈 것 같지만 꼭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어서 왔단다. 함께 두런두런 걷고 있는데 절룩이며 걷는 유스케도 만난다. 유스케를 보니 어제 피레네 언덕 중턱에서 만났던, 숨차 하며 길에 거의 반은 쓰러져있던 무츠코 씨가 떠오른다. 지금은 어디실까, 괜찮으실까. 그때 해가 떠올라 동녘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아르날도가 언덕에 앉아 다른 순례자와 일출을 보고 있는 것도 본다. 히히 아르날도 잘해봐.

이곳에서 나는 길 표시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났더란다. GR65에서는 길 표시가 '많이 되어있지 않아서' 길을 잃기 일쑤였는데 프랑스길에서는 길 표시가 과할 정도로 많아서 길을 가끔 잃기도 했다. 보통 길을 잃게 하는 화살표들은 사립 알베르게들이 자신의 알베르게로 손님을 유도하기 위해 표시해 둔 것들.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화살표들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카미노 필그림 어플을 확인하며 길을 보았지만 이 어플도 가끔 틀릴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감으로 걷는 수밖에. 구글맵을 그때그때 확인해가며 다음 행선지 마을의 위치를 확인하며 걸었다.

길을 잃지 않도록.

팜플로나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의 마을에서 약국에 들러 진통제를 하나 산다. (진통제 정보는 글 후반부에 나온다.) 작년에 와서 잠깐 걸었을 때 샀던 연고는 도통 효과가 없었어서, 약사에게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부탁하면서, 바르는 약은 내가 갖고 있는 약보다 훨씬 센 것으로 달라고 했다. 의사는 알았다며 이부프로펜 한통과 바르는 연고를 하나 주신다. 이 약국에 들어오기 바로 전 나는 덴마크에서 왔다는 순례자 두 명을 만났다. 잠깐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그들이 먼저 길을 잡아가길래 조금 따라왔더랬다. 처음에는 그들이 부자인 줄 알았는데 젊은 쪽에서 이 길에서 만난 '친구'라고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둘은 나의 뒤를 따라 약국으로 들어와 마그네슘과 몇 가지 영양제, 진통제 등을 산다.


팜플로나는 정말 큰 도시인 모양이다. 위성도시들의 규모가 내가 길을 걸어오며 만났던 다른 도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한참을 걸어 팜플로나 가장자리에 도착한다. 점심 먹기 전에는 도착할 줄 알았는데, 그러질 못한다. 점심은 팜플로나 들어가는 길목의 공원에서 갖고 있던 바게트로 때운다. 큰 성곽을 따라 팜플로나로 입성한다.

길 잃어버릴까봐 사방에 조개 표시가 있다.

길도 있지만 왠지 순례자는 풀밭 가운데로 난 길을 걸어야 할 것만 같다.

성곽으로 입성한다. 바닥의 노란 화살표가 우리를 이끈다.

대도시의 분위기가 뿜뿜 풍겨나온다.

언덕길 사이로 성당이 보인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공립 알베르게인 헤수스 이 마리아로 향한다. 이름값을 하는지 벌써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체크인을 기다린다. 나도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하고, 자리를 배정받는다. 운이 좋다. 출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러면 내일 아침에 출발할 때 많은 이들에게 방해를 하지 않고 살금살금 나갈 수 있다. 와이파이가 없나 하고 바깥을 둘러보러 잠깐 나오니 아까 만났던 덴마크 젊은 순례자가 인사를 한다. 나의 이름을 물어보아 서로 통성명을 한다. 에밀, 에밀이라고 하는 이 젊은 순례자는 빵실하게 부푼 금발머리가 인상적인 순례자였다. 또 봐, 하고 인사를 한다.

헤수스 이 마리아의 모습. 천장까지 뚫려있고, 저 2층에도 2층침대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즐비어있다. 수백명이 동시에 코를 골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겠다.

기념품들이 정말 귀여워서 갖고 싶었지만, 나는 짐이 많아서는 안되는 순례자.

팜플로나에 왔으니 세상 문명에 접속해야 한다. 유심칩을 드디어 사고, 세상과 연결된 기쁨을 만끽한다. 가족들에게 동영상을 보내 내가 무사히 잘 살아 걸어왔음을 알린다. 그 후 팜플로나 시내 구경을 한다. 오 정말 대도시로군.. 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한국인 아저씨 F와 마주친다. F 아저씨는 호텔에서 묵는단다.


한참 팜플로냐 광장과 이곳저곳 거리들을 구경한다. 대도시의 이런 북적임은 오랜만이라 기분이 이상해진다.

버거킹도 있다. 그러면 대도시지.

가을은 이미 훌쩍 지나 겨울로 접어든 햇살 아래에서 빨래들을 말린다. 내 빨래는 이 사진 뷰의 오른쪽 뷰파인더 바깥에 있다. 햇볕에 말리는 건 중요하니까.

왼쪽에 퉁퉁 부은 내 다리와 그 바로 왼쪽에 보이는 연고 Voltadol Forte, 얘는 근육통을 해소하는 데 바르는 약으로 추정된다. 바르면 무슨 수분크림같고 효과도 별로 없는 것 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한국의 멘소래담에 익숙해져 있을 여러분, 걱정마시라. 스페인에는 스페인의 멘소레담이 있었으니, 그것이 오른쪽 사진의 radio salil이다. 냄새도 멘소레담보다 강하면 강했지 절대 약하지 않고, 약효도 좋다. 여기에 이부프로펜 ibuprofeno, 소염제까지 다 갖고 있으니 완벽하다. 나는 저렇게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약이 떨어졌을 때 약사에게 저 사진을 내밀었다.


알베르게 뒷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해가 비치는 방향으로 계속 옮긴다. 쟝에게 안부 메시지를 하나 남겨둔다. 아까 샀던 약을 다리에 바른다. 어느새 에밀이 옆 벤치에 앉아 나를 보고 있길래 인사를 한다. 그때 H와 C언니가 신난 목소리로 내게 온다. 우리 라면 사러 가자. 내가 받아 본 유혹중에 가장 달콤하다.


활기찬 H, 그리고 C 언니와 한국인 아주머니와 장을 보러 간다. Y와 L은 그 와중에 먼 곳으로 쇼핑을 갔다고 한다. 내가 그야말로 몹시 기대하고 있던 라면 쇼핑! 알베르게 직원이 H에게 알려준 '모든 것이 다 있는 마켓'은 재래시장이었어서, 내가 만능 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중국인 마켓을 물어본다. 직원은 몰랐지만 마침 거기 놀러 온(왜 놀러 왔지) 주민은 중국인 마켓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나는 김치라면과 신라면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우리는 라면뿐만 아니라 중국식 볶음밥과 요리 포장한 것을 살 수 있었다. 아래는 내가 라면을 산 중국인 마켓의 사진이다.


이때 함께 다녔던 한국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뭔가 '좋은 말씀'을 참 많이 하고 싶어 하셨다. 자신은 이 길을 걸으며 5kg만 뺐으면 좋겠다고도 자주 이야기하셨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날씬하고 예쁘셨는데 말이다. 오히려 마른 편이셨는데. 그 마른 몸에서 배를 움켜잡고 살을 빼고 싶다 하셨다.


사건은 오늘 장을 보러 갈 때 터졌다.

한국인 아주머니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소아씨는 한 2kg만 빼면 딱 좋겠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걸 억누르려고 하는데 잘 안된다.

내 입에서 툭 말이 튀어나온다.


그런 말씀은 저에게 하지 마세요.


다들 왜 순례길을 걸으세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한국에서 떨어진 먼 곳에서 스스로를 좀 돌아보고 싶어서요." 다이어트를 권장하고 하얀 피부를 선호하며 태평양 같은 사교성을 갖도록 하며 무엇인지도 모를 성공을 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는 한국 사회. 1등이 되어도 힘든 곳. 1등이 되지 못해서 더 힘든 곳.


물론 다른 나라도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골치 아픈 사회적 분위기를 잊고 싶어서 아무것도 없는 들판만 보고 걸으러 많은 한국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아주머니 자신도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다 했다. 그렇게 이 먼 곳까지 12시간 비행기 타고 날아와 피레네 산맥을 넘은 그분은 나의 뒤통수를 보며 다이어트 이야기를 했다.


내가 늘씬한 '미용 몸무게'가 아닌 건 사실이다. 평생 나는 통통하게 살아왔으니까. 나와 촌수로 가장 가까운 분은 내가 뚱뚱하다고 항상 살을 빼야 한다고 하셨다. 물론 좀 더 마르면 좋겠지만 그래도 난 내 몸에 맞는 옷을 잘 찾을 수 있고 잘 사 입었으며 (뭐, 안 맞기도 했지만) 이 튼튼한 몸으로 흙도 만지고 문짝을 들쳐 메고 세트 촬영도 하고 수백km를 잘 걸어오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만족스러운 몸인데도 평생 누군가의 잣대로 평가받아온 나 스스로가 속상한데, 그야말로 얼굴 본 지 며칠 안 되는 분에게서까지 평가를 받아야 하나.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라면을 먹을 거니까, 하고 기분을 풀어본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H, 나, 그 한국인 아주머니, C언니와 한국인 부부 이렇게 6명이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 한국인 부부 중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위해 근사한 요리를 해 주셨고, 함께 장을 본 우리는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 사 온 중국 요리와 볶음밥과 함께 먹었다.


정말. 저녁식사'는' 완벽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걸어왔던 길, 각자 걸어왔던 길, 그리고 예전에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는 즐거운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맥주캔이 하나둘씩 비어갈 무렵 한국인 부부 중 아저씨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신다. 좋은 이야기를 참 많이도 해 주신다. 좋은 이야기가 점점 길어진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가족에 대해 길고 긴 이야기를 해주신다. 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과 좋은 가족을 가진 아저씨를 보필하기 위해 헌신했던 아주머니 이야기도 해 주신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그야말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약간은 피곤해진 마음을 감추려 애쓴다. 식사 후 정리를 마치고 내 침대 쪽으로 내려와 보니 아르날도가 다리를 절뚝이며 지팡이와 작은 선물을 가지고 온다. 한국인 부부 중 아주머니가 아르날도에게 지팡이를 빌려줬었단다. 자기는 지금 다른 알베르게에 묵어서, 그분에게 이 지팡이와 작은 선물인 새 비누를 전달해 줄 수 있는지 부탁한다. 물론이지! 안 그래도 H가 아르날도 상태가 말도 아니어서 아주 걱정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아파 보여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쁜 친구가 함께 도와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아주머니에게 아르날도의 선물을 전달해 주고 자리로 돌아온다. 아까부터 계속 웅얼거리는 영어로 내게 이것저것 질문하던 내 아래층 침대의 아저씨는 일찌감치 잠들어 계셨다. 나도 오늘은 일찍 잠들어볼까. 끼익 거리는 침대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몇 번 조심스레 뒤척이다 잠에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