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프리패스의 배신, 성심당 딸기시루 오픈런 생존기

혹시 대한민국 임산부 여기 다 모였나요?

by 유정

dd는 항상 말했습니다. '임산부가 된다면 꼭 하고 싶던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심당에 가는 것이다' 이후 정말 대전에 갈 기세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 굳은 의지와 열렬한 꿈은 사라지지 않았었습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주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이 시대 임산부 최대 특권, 성심당 임산부 프리패스 써먹으러 대전으로 떠나기로!


딸기 시루를 쟁취하기 위한 여정을 앞둔 채... 크리스마스 기간, 그곳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지옥도가 따로 없었습니다. 예수도 절레절레, 산타도 절레절레할 대기줄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묘수를 내었습니다. 심지어 평일이니 절묘한 대안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바야흐로 大저출산 시대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편승하지 못하는, 정세 판단의 오류를 몸소 실천하는 부부가 아니겠습니까. 그저 임산부라는 신분이 있다면 성심당이라는 축복이 내릴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명확한 오판이었죠.


그것은 정말로 오판 중에 오판이었지요. 처음 도착했을 때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에구머니나 놀랐지만 저희는 한 손에는 산모수첩, 다른 한 손 에는 신분증을 쥔 채 자신만만해했습니다. 그것이 마치 암행어사의 마패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죠.

중앙로역 지하상가 중앙에 서서 밀려드는 '일반인' 들을 끊임없이 줄 세워야 하는, 딸기시루의 형벌을 받고 있는 성심당의 시지프스님(직원)께 접근하며 조심히 하지만 당당히 물었습니다.


'아핫 저희는 임산부인데요 하핫 어디로 가면 될까요?'


아! 이 한, 두 숨의 말이 얼마나 무지했는가요. 직원이 안내해 준 '임산부' 프리패스 줄은 정말로 무지막지했습니다. 아니 한국은 大저출산의 시대 아니었나요. 어디서 이런 많은 임산부님들이 숨어있었는지...



일반인 분들 줄은 오픈런하신다고 새벽 1시부터 기다리신 분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8시 오픈런한다고 그 시간에 맞춰 갔는데 그건 정말 용감했던 거였죠. 저희는 스스로의 용감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렇게 2시간을 내리 서서 기다렸습니다. 지하상가 뒤쪽에서 다시 반대편 뒤쪽으로, 그리고 중앙으로, 그리고 지하상가 계단을 올라 마침내 성심당 케익 부띠크 정문 앞까지 서기까지.


아 그 계단을 올라서는 기분은 마치 쇼생크에서 탈출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정문 앞에 서서 내부에서 느껴지는 붉은 크리스마스의 온기와 마치 케이크 생크림 터진 듯 문 밖까지 흘러나오는 복작거림을 보고 있자니 그곳은 분명 행복한 지옥이었습니다.



줄을 따라가며 입장하고 그리고 그 물결에 따라 지나가는 롤케익, 슈크림 따위들을 낚아채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마냥 빵들을 손에 쥐고 시루의 축복이 어서 강림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딸기시루를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은 채 발을 동동거리며. 비록 기다림이 없지만 않았지만 그 순간은 금방 찾아왔습니다. 저 깊은 지하에서 이를 갈던 시간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 눈 깜짝할 새였죠. 딸기시루가 저희 눈앞에 있었습니다. 2.3키로의 그 경이로운 딸기와 초코의 탑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죠. 우리는 그걸 우리의 것으로 쟁취해 낸 것입니다.


마침내 시루를 받으러 갔을 때 성심당이 마치 윌리웡카의 시루 공장 같기도 했습니다. 카운터 너머로 시루 요정님들이 열심히 딸기를 부어대며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날의 영광은 없었을 겁니다. 저희는 그분들의 노력에 정말 숟가락만 얹었습니다. 집에 가서 맛본 딸기시루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 맛이야 말해 뭐 합니까. 달콤한 딸기맛에 달콤한 초코맛이죠. 근데 딸기가 진짜 많아서 아 이게 이래서 딸기시루구나 싶어요. 콩나물시루 아시죠? 그 말처럼 딱 딸기가 빽빽해요. 다들 그걸 아니까 가서 줄 서려고, 이거 저거 검색하다 이 글까지 읽고 있지 않겠습니까. 용기 내어 그 지옥을 찾아가시면 그 끝엔 딸기시루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떨어진 기력을 채우러 국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원조태평소국밥'이라고, 이 태평소국밥이라는 게 대전에만 있는 그런 국밥인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소머리국밥에 밥 말아먹는 느낌의 국밥입니다. 저희는 거기에 육사시미도 한 접시 추가했어요. 사실 육사시미가 맛없는 곳은 그 질겨가지고 결국 못 삼키고 뱉게 되는 거 있는 거 아시나요? 여기는 진짜 그런 것 하나 없이 야들야들 부드러웠습니다. 육사시미 하나 먹고 마늘 한 입 딱 하고 국밥 국물 싸악 마셔주면,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해요. '딸기시루의 형벌을 견뎌 우리가 이곳에 왔구나' 해요.


12.26 크리스마스 익일, 임산부라서 성심당에 감사하고 그래서 대전에 감사하고 그래서 국밥에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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