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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y 18.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가 네 생각이 나서 사흘을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는데, 유연석 배우가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더라. '슬의'의 애청자라면 누구나 좋아했을 장면이었겠지만 나는 유달리 그 장면을 감명 깊게 보았다.


'너가 참 이 배우를 좋아했었는데'


드라마를 보다가 다시 또 네 생각이 났다. 벌써 5년이나 지난 인연인데 참 살아가는 내내 중간중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너를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다. 


스물한 살의 너는 연예인들을 참 좋아했다. 나는 그런 건 중고등학생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너를 보면서 '덕질' 이란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변했었어. 너는 그중에서도 유연석 배우를 정말 좋아했었는데, 너도 분명히 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텐데. 그리고 바로 이 장면에서 세상 기쁜 표정을 하며 옆사람을 두들기면서 좋아하고 있을텐데.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한 번 네 생각이 나버리고 나니 나는 다시, 며칠을 너를 구워삶았어. 예전 일들을 기억해내보고 잊고있던 번호도 기억해내고, 주고 받았던 편지들을 버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방을 한번 뒤져도 보고,  네 이름과 마음과 기억을 담아 시를 쓰고. 마침 내리는 비를 보면서, 너는 도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살지 상상해보기도 했어.


사흘 정도였을까, 그렇게 너를 다시 한번 지지고 볶고, 지우고 쓰고, 먹고 마시고나니 너가 퍽 잊혀지더라.


언젠가는 이런 시를 썼었다.


"

    삶이 부서질 듯한 햇빛에

    그림자처럼 계집아이가 늘어진다

    땅거미가 기어드는 노을처럼

    주황빛으로나마 짧게


    해를 바라보면

    눈동자에 벌겋게 남는 흔적

    이 그리움은 그런 것이니까

                                                    "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참 살아가는 내내 중간중간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누군가는 그것에 익숙해진다. 너는 어느새 내게 그런 사람이 되었고, 나도 어느새 그런 사람이 되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나서 사흘을 구워 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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