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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20. 2021

글을 쓰면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엔 글을 쓰면 우울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은근 즐기기도 했다. 그 결과 필요 이상으로 낭만적이었고 또 관념적이었고 가끔씩은 과하게 구도적이었다. 그래서 힘이 많이 들어가고 부담이 되기도 했다. 기록하는 일은 어떤 대단한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이런 글을 쓰면 에세이스트 같은 것이 되는 줄만 알았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써야 멋있는 건 줄 알았다. 적어도 이젠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젠체하지는 않는다. 


손도 많이 가벼워진 기분이다. 일상을 기록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고 무엇보다도 세상을 보는 시선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게 어느 순간에 ‘이제부터는 이렇게 써야지!’ 라고 다짐하고 바꾼 게 아니라서 어느 시점부터라고 명확히 밝힐 순 없을 것 같다. 자취할 때 쯤에 극한의 우울감 속에서 생활력있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글 때문이었을까, 중퇴할 때 느꼈던 홀가분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취업에 성공한 달달함 때문이었을까. 단순히 글을 쓰는 방식 뿐만 아니라 삶의 연속 속에서 많은 사건들이 나의 태도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제는 뭐가 멋있는 지는 관심이 없다. 스스로 많이 변한 것 같다는 글을 자주 쓰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진짜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변한 건 무언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인 것 같다. 가족관계와 친구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나 연애의 방식,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같은 게 너무도 감상적이라 쉽게 감정이 요동쳐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둑을 세운 것처럼 감정이 안정적이라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글을 쓰는 방식이 변한 것이 먼저인 지 감정기복이 줄어든 것이 먼저인 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반갑다. 덕분에 일상을 과장해서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감정적으로 요동칠 땐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쿨하게, 탈 털어내고 하루를 정리한다. 그렇게 사소한 기록들에 하루의 위트를 담으려 노력한다. 멋진 놈에서 웃긴 놈으로 변했다. 장대한 것처럼 사유하고 철학적인 글들도 좋지만, 언제부턴간 미미한 생활의 글들이 더 마뜩하게 느껴졌다.


힘을 쭉 빼니 나른한 느낌이 무던하다. 생활력있게 살아야겠다, 이제는 이 말이 내 글에서도 느껴지는 거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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