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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20. 2021

취향에 대한 감사함



누가 가르쳐줘서 배운 것이 아니다. 지식도 아니고, 그걸 배우는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냥 살다보면 가끔, 그런 류의 삶의 방식들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입에서 매우 쉽게 오르내리는 것들이고 동시에 사람들이 스스로 잘 모르는 것들이다.  본인의 이상형이라던가 본인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들.


취향이나 선호, 성향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뭔가 본디 그렇게 정해졌고 그래서 본디 알고 있는 것. 선험적인 어떤 것이라서 당연히 스스로 알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며 또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때, 그 ‘어떤’에 들어갈 수식어를 단 한번도 무엇이라고 확신해본 적 없다. 많은 수식어를 갔다 붙여보고 스스로 그렇다 믿어도 보고 그렇게 행동도 하고 잘못도 하고 반성도 하고 교정도 했다. 단 한번도 무엇이라 확신해본 적 없다. 


이상형 같은 것이 그렇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가에 관한 질문에 선뜻 어떻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입이 크고 손이 이쁜 여자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거면 내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어느새 또 다른 피드백 속에서 이상형은 조금씩 수정되어졌다. 그게 연애에 큰 도움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입이 크고 손이 이쁘고 H치마가 잘 어울리고 키는 165정도 되며 상식이 많고 똑똑하며 논리적이며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나이는 나보다 3살이 어린 잘 웃고 말을 허투로 하지 않으며 본인 감정을 관리할 줄 아는...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고 표현해낼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또한 그렇다. 조절이라기보다는 관리라고 해야 더 올바른 표현인 것 같다. 예전엔 감정을 관리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본능적인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겠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대체하는 훈련 덕이었다. 이건 도움이 많이 된다. 짜증난다는 말에 많은 감정들이 덮여버린다. 감정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상황을 파악하면 상황과 감정의 연계를 알 수 있다. 외부상황을 조정하면 감정을 관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나 운동하기, 감정에 걸맞는 음악듣기 등 감정은 매우 민감해서 쉽게 변하기에 오히려 쉽게 관리할 수 있다. 사람마다 방법은 다 다를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 화가 나서 답답할 때는 ‘Still D.R.E’의 EDM버전을 듣고, 우울해서 쓸쓸해지면 팔굽혀펴기나 스쿼트 100개를 2세트 한다. 이건 퍽 도움이 된다.


취향의 문제도 같다. 이건 여전히 미제이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고 법 얘기를 좋아하고 현실성이 있지만 가능성은 낮은 상황을 상상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또 변할 것이기도 하지만, 취향은 있긴한거 같은데 그걸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땐 이렇게 어떤 취향이 있는게 꽤 이상해보였다. 오덕이나 찐따로 치부하고 우습게 봤던 기억들이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복이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당당히 좋아할 수 있을만큼 취향에 확고했다는 것. 그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열렬히 선호했다는 것. 그런 경험은 사실 흔하지 않다.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인지 얘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고민들이 끊이질 않는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들. 이래서 요새 유행하는 mbti류 테스트들이 내게 너무 어렵다. 테스트류를 좋아해서 즐겨하긴 하지만 매 질문마다 턱턱 막히면서 한 질문 한 질문 따져보게 되서 에너지가 많이 든다. 툭툭 골라대는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걸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괜한 힘을 주는 것 같아 약간 우스워진 기분이 든다. 그 기분에, 여전히 난 옛날과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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