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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Nov 29. 2022

80년만의 폭우가 내린 날

: 터널 앞에 산사태가 났는데

-2022.08.13. 80년만의 폭우가 내린 날


변덕을 부리며 거의 4개월을 꽉 채울 이 여름을 버텨내야만 한다고, 여름이 끝나고 이어질 여름도 버텨내야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었다. 찢어질 듯한 무더위 속에서 그리고 부러질 듯한 비바람 속에서도 풍향계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일에서도 그리고 생활에서도 내가 행복할 일이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며 버텨내보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었다.


8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라고 했다. 동네 터널이 산사태로 통행이 통제되었고 저지대 부근 차량들과 반지하 집들이 결국 물에 잠겼다. 지하도로에서 물이 점점 차오르는 차 안에 갇혀 있다 겨우 구조된 사람도 있었고 침수 되어가는 집을 포기하지 못하고 못 나간다고 버티던 사람도 있었다. 폭우처럼, 신고와 무전이 비처럼 쏟아졌다. 


허리를 꽂꽂히 세우고 비를 견뎌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조금은 보탬이 되길 바랐다. 이 여름을 버텨내야할 사람들에게 조금은 보탬이 되길 바랐다. 터널 앞, 차량들을 우회시키며 생각했다. 빗속에서 겨우 점등하는 이 빨간 경광봉만큼이라도 가치 있는 나를 바랐다. 그러면 내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기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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