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였다. 영화처럼 하얀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하얀 눈이 필요 없을 만큼 낭만적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과 신나는 음악과 시원한 술이 있었다. 언제나 결코 행복은 쉽지 않지만, 그 와중에서도 크리스마스는 그나마 행복을 구하기에 가장 좋은 핑계가 아닌가. 혹 한 해를 망쳤더라도 크리스마스에만 즐거우면 한 해가 행복으로 가득 찬 기분이 들곤 한다. 예수가 이때 태어나기로 한 건 인간들이 그 마지막 기회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신과 선조들의 뜻과는 다르게 모두가 크리스마스에 행복만을 읽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인생이란 모두에게 같은 문법으로 작용하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같은 것에서 다른 느낌을 받고 그건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는 안 좋은 추억이겠지. 그리고 그 문법의 차이에는 작년의 나와 그리고 올해의 나도 포함되는 것 같다. 작년의 크리스마스는 행복하려는 투정 같았는데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당연한 잔치 같았다. 행복의 도화선을 따라 한 해 동안 이어진 불꽃이 마침내 폭죽에 다다라 터지는, 불꽃놀이 같은 하루였다. 1년이라는 행간 사이에서 올해 크리스마스는 행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올 한 해는 행복했다고 마무리할 대의명분을 얻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언제나 그 한 해의 크고 작은 소회를 챙기게 되는 것 같다. 슬슬 파장 분위기가 나는 탓일까. 크리스마스 덕에 충분히 미화되었으니 한 해가 끝나기 전 지난 일년을 정리해봐야겠다. 왠지 내년의 첫 줄이 기분 좋게 시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