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 후 퇴근길에 눈이 내렸다. 새벽 6시 아무도 없는 버스정류장에 서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이 어쩐지 유리조각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미량의 낭만. 눈은 항상 낭만스럽지만 오늘의 낭만은 신체적이다. 야간근무를 한 탓에 몸이 약해져서 마음이 부쩍 멜랑콜리해지는 것이다. 뭐든 쉽게 지나치는 나도 이런 날이면 퍽 감상적으로 변하곤 한다. 집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겨우 씻겨내곤 털썩 침대 귀퉁이에 앉았다. 어느새 눈이 굵어져 아주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눈이 내리는 걸, 이내 창틀에 눈이 쌓이는 걸 한참을 구경했다.
눈이 쌓이는 과정은 영락없이 지난하다. 눈이 내리고 그 눈이 녹고 다시 눈이 내리고 녹고를 반복해야 한다. 눈이 지가 쌓이려고 내리는 건 아니겠지만 그 모습은 흡사 투쟁과 같다. 기필코 쌓여야 한다는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 마음일 뿐이겠지. 어느 순간 눈이 녹지 않는다. 얼어버린 투쟁 위로 툭툭 눈이 쌓이는 것이다. 차곡차곡 빈틈을 메워가다 보면 어느새 하얀 눈이 동네 곳곳에 쌓이는 것이다. 내 방 창틀에도 그렇게 눈이 쌓였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눈이 쌓이면 그 눈이 흡음작용을 해서 세상이 고요해진다고 했다. 그러기엔 창 밖에 눈이 휘날리는 게 참 시끄럽게 보였다. 침대에 누워 눈이 그치고 난 후 새하얗게 쌓일 고요를 상상했다. 전기장판 탓인가 왠지 그 고요가 따듯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