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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02. 2023

생활을 유지하기

몸의 반응을 느끼고 그에 대처하는 것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자 발바닥으로 방바닥의 따듯함이 느껴졌다. 조금 기다리자 온기가 발가락 사이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곧 그 언저리에 머물렀다. 따스한 온기에 내 발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정신은 신체를 종종 잊곤 하는 것 같다. 어색한 온기에 사진 속 초점이 바뀌듯 내 몸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아 낯선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을 분명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낯섦 때문에 오히려 더 감각에 집중하게 됐다.


앉은자리에서 발목을 움직여보고 다리를 두어 번 폈다 접었다. 발목 관절이 움직이며 우두득 거렸다. 무릎 오금에선 바지가 접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릎 위에 얹어둔 손의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손등을 뒤집어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손금을 비춰봤다. 장난감마냥 손과 손가락을 움직여보다가 주먹을 쥐어보니 손바닥에서 땀이 났는지 조금 미끈한 느낌이 났다.


바람이 창문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창 밖에 추위가 상상됐다. 다시 슬리퍼를 고쳐 신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밥을 차려야 할 시간이었다. 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 신체를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생활을 잘 유지한다는 말인 것 같다. 몸의 반응을 느끼고 그에 대처하는 것이다. 마치 허기진 배를 위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추운 날씨를 대비해 난방을 챙기며 청소하고 빨래하는, 생활.


나는 생활력 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신체와 집안을 청결하고 안전한 상태로 유지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기본을 놓치지 않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아주 가끔, 내가 해낸 맛있는 요리를 맛보다가 혹은 가끔, 아주 가끔, 집안일을 말끔하게 마치고 소파에 앉아 정갈한 집안을 바라보다가 ‘내가 이제 이런 일들에 조금 능숙해졌나’ 싶을 때 나는 마침내 뭔가를 해낸 기분이 들곤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러면 내가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나 싶어 우쭐해지는데 나는 심지어 이 감정을 순순히 즐기는 것을 좋아라한다. 내가 더 생활력 있는 사람이 됐으면, 그렇게 내 몸을 더 잘 지키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밥을 먹고 나니 다시 또 설거지거리들이 쌓였다. 죄책감이 들긴하지만 설거지는 원래 밥 먹기 전에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본다. 나는 역시 한참 멀었다. 오늘은 그 가끔 있는 우쭐한 날이 못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나는 오늘도 다시 개수대 앞에 서 고무장갑을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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