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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Feb 02. 2023

어른의 중력/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넘어지는 건 중력 탓이라고, 그게 참 다행이었다.

의미형과 안정형이라는 말을  책에서 난생 처음 들어봤다.  권의 책으로  개념을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단어가 직관적이라 그런지 머리 속으로 겨우 구조는 잡을  있었다. 의미형 인간은 삶의 주관적 의미를 가진 가치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안정형은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있는 가치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말하는  같다. 이건 스펙트럼 형식이라 보통의 사람들은 양쪽의 극단이 아니라 중간에서 어느 쪽으로 조금 치우친 정도의 성향을 가지게 된다.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유튜버 너진똑의 영상을 보고나서였다. 너진똑이 설명해주는 책의 내용에서  고민의 답을 구할  있을거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승진이나 좋은 직업, 대학 간판 같은 것들은 의미 없는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거짓된 삶의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승진보다는 개인적 성장, 좋은 직업보다는 , 대학 간판보다는 적성에 맞는 학과 같은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동기들을 보며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승진에 관심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처음엔 분명 그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핑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말한 거부감, 그것도 결국 사회적 성공이나 성취를 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생긴 자기합리화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써 초연한    그냥 포기가 빠른 녀석이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오히려 거짓 같았다. 찝찝함과 더불어 이런 삶의 태도가 나를 수렁에 빠뜨리고  거란 불안감마저 들었다.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혐오가 일었다.


그러던  자기합리화를 그만  기회가 왔다. 특진기회가  것이다. 일년간 열심히 노력했었다.  버릇을  버리고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며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그래도 승진은 좋은 거니까라고 수도 없이 암시하며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것을 참았다.  결과 특진에 성공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나는 내가 성취감에 날라갈 듯한 기분이   알았다. 주위에서도 다들 기분이 어떠냐며 본인 일인냥 기뻐했다. 나는 아니었다.

 다른 마음이 들었다. 결국 현실과 타협한 변절자, 일관성 따윈 없는 노선 바꾼 뱀새끼가  기분이 들었었다. 내가 지금까지의  삶이 거짓이었다고 스스로 증명이라고 하려는 놈처럼 느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수가 없었다.  어느 쪽이든 부적응자였다.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는 나약한 놈이거나 결국 현실과 타협한 속물이거나   하나가  뿐이었고 나는 어느 쪽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래는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구들이다.


의미형은 그러한 삶의 체계에 집착하는  ‘영혼이 없다 이유로 거부한다.’,

의미형은 종종 지금보다 안락한 삶을 꿈꾸지만, 그러다가 ‘변절자 ‘좀비같은 것이 될까  내적인 갈등에 휩싸인다.’,

의미형은 우울하고, 정서적으로 힘들고, 지적인 개념과 추상적인 개념에 집착하고, 심지어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보통 의미형의 성향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이런 말들에 병명을 진단 받은 환자처럼 오히려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와닿았던  의미형은 안정형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데 이것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처방전 같았다.


 책을 읽기 ,  책이면 내가  그런 이중적인 부적응자처럼 느껴졌을    있을  같았었다. 느낌은 정확했다. 인생책이  것이라던 너진똑의 추천사처럼  책은 내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책을 읽고나니 이제는 위로를 받은 기분이 든다. 마치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같다. 나는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던  아니라 안정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내기 위한 과정을 지나고 있던 것이고 결국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의미형으로서 균형을 찾기 위해 안정을 구축했던 것이다.


그동안의 나의 고민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의미형의 삶의 방식이 실패자 따위가 아니라 하나의 가치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지금의 내가 온전한 삶의 방식을 향해 성장 중이었던 것이다. 건강한 삶의 방향을 향해 나는 스스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그건 내가 제대로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도,  안정형은 의미형을 추구해야 그리고 의미형은 안정형을 추구해야 이룰  있는 균형의 영역을 찾아가야한다.


대학시절부터 십년간 나를 괴롭히는 ‘이대로 괜찮은가 대한 불안도 모두 의미와 안정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였구나 싶기도 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니면서 그럴듯한 생존 계획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에서 나는  ‘어떤 친구였다.  어떤 친구도 여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덕에 그래도  불안의 이유는   있었지만  해결을 위해선 나는 아무래도 앞으로  십년은  고생해야할  같다.


우리가  위에 올바르게 서있을  있는  지구에 적당한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의 중력이라는 것도 내가 온전한 삶을 이루기 위한 일체의 과정을 겪어야한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불안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의 불안도  이겨낼  있을  같다. 중도,  적당함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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