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한 때 게임 중독이었던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퇴근하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 얼추 7시쯤이다. 하필이면 식사 시간과 게임의 레이드 시각이 겹쳐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다.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사람에게 30초 정도 양해를 구하고 방이 열리길 기다린다. 사냥은 자동이라서 굳이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밥을 먹고 나면 레이드가 끝나 있다. 설거지를 하고 난 뒤 침대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앉아 던전을 돈다. 녹스(PC로 안드로이드앱을 돌리는 프로그램)로 부 캐릭터 계정에 접속해 본 캐릭터와 사냥을 같이돌린다. 계정 캐릭터 두 개로 던전을 돌면 비매너 유저를 만날 일도 없고, 경험치도 다 내 것이라 훨씬 이득이다. 이벤트 기간에는 희귀 캐릭터를 뽑을 수 있다. 캐릭터를 뽑으려면 특정 아이템이 있어야 하고, 그 캐릭터가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11만원 하는 아이템을 다섯 번 산다. 뽑기는 5분도 안 걸린다. 다섯 번째 아이템을 거의 소진하고 나서야 원하는 캐릭터가 손에 들어온다. 기대했던 대로 기본 스탯이 정말 좋고 잘생겼다. 헌데 의상이 정말 별로다. 옷을 사 입혀야 하니 상점에 가서 또 돈을 쓴다. 그러고 나니 대전 시작 시각. 9시부터 10시까지는 대전을 해야 한다. 대전이 끝나면 또 던전을 돈다. 만렙이지만 아이템발로 키워 놔서 그런지 대전에서는 자꾸만 진다. 자꾸만 지니 공략법을 알고 싶어 몇몇 게임 커뮤니티에 접속한다. 고수에게 덱 조합을 묻고 답을 얻는다. 그러고 나면 11시가 훌쩍 넘어 있다.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또 게임을 켠다. 딱히 신이 나는 건 아닌데 그냥 한다. 손목이 아파서 그만 하려고 끄면 새벽 3시다. 달마다 게임 아이템에 6~70만원을 쓰고, 가족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 게임 속 캐릭터에게는 3~4만원 하는 옷을 사 입히면서 배우자에게 줄 티셔츠 한 장 사서 들어오는 일이 없는 사람.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며 무기력해 하는 사람. 나는 이 친구랑 절교했다. 아마도 죽은 것 같다. 나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내 친구가 아니라 작년 6월의 나다. 나는 이때의 내 자신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어느 날 구글플레이 게임에 쓴 액수를 바로 알려주는 앱에 접속했다가 2018년에만 자그마치 950만원을 쓴 것을 확인하고, 충격에 휩싸여 계정을 삭제했다. 그게 10월이나 11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을 반영하듯 이때 체중이 7kg이나 불었다.
사실 아직 그 게임의 BGM이 귓전에 맴돈다. 내가 좋아한 캐릭터 얼굴도 자주 아른거린다. 구글플레이에서 썸네일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생각에 자꾸 흔들린다. 하지만 절대로 다시 깔지 않는다. 올해 1월부터 2월 말까지 특별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치료는 신박사님의 멘토링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2018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 시기의 나는 쓰레기였다. 그래서 회사 돈으로 구매해서 나눠주는 서평용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써야 하는 서평은 두 번인가 쓰고 말았다. 데일리리포트를 전송해야 했는데 보낸 횟수를 모두 합해도 5번이다. 강의 시간에는 가지고 간 연습장에 낙서만 잔뜩 했다. 병원 예약 같은 건 충분히 미룰 수 있는데도 마지막 강의에 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 아니고 인재 발굴 프로그램 같았고, 나는 거기서 낙오자 캐릭터를 맡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서평 수준이나 데일리리포트 속 일상이 누군가에게 보고되어 내가 이 회사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 내 앞에 앉은 다른 팀 사람들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작하는 시기가 가진 힘에 이끌려 2019년 1월에 맞춰 개강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재도전을 했다.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데일리 리포트와 서평 제출이라는 이 두 가지만 끝까지 해내자고 다짐했다. 이것만으로도 변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아무 것도 의심하지 말자고. 새해를 열면서 또 쓰레기같이 지낸다면 그건 그냥 인생 포기나 마찬가지라고 내 자신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즈음 멘토링 초기 멤버가 데일리 리포트를 쓰고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일화를 얘기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짜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방학을 의미 있게 사용한 적 없었던 난데, 이번에 정말 잘해내면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올까? 내 자신을 시험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고 데일리 리포트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진지하게 책을 읽자 머리 어느 한 부분을 센 수압의 물로 씻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데일리리포트로 하루를 돌아보며 긴장의 끝을 놓고 지낸 시간이 없었는지 꼼꼼히 확인해 보았다. 2주, 한 달 단위로 내 생활을 리뷰해 보며 개선할 점과 이어서 할 일을 기록했다. 변화는 정말로 찾아왔다.
1. 자존감이 생겼다. (그 전에는 無에 가까웠던지라 ‘생겼다’라고 하겠다.)
2.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신경 쓰느라 힘들어 했었는데,
이제는 딱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
3. 멘토링 이전이었으면 나를 무너뜨렸을 상사의 일방적 결정에(다른 팀으로 갑자기 보내졌다.
게다가 공지는 겨우 일주일 전에 했다.) 화는 났지만 주눅 들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힘들지 않았다.
4. 같이 갈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게 됐다. 더 이상 모두의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5. 나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정했고,
5월에는 그것을 배우러 다녔다. 힘들 때면 가슴 뛰었던 시기를 떠올리며 내 자신을 격려한다.
6.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내 독서 클럽에 가입하고, 일주일에 한 권은 반드시 읽는다.
앎의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 내가 느끼는 행복감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
7. 중국어는 상종을 못할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입문을 다 떼고 기초반 수강 중이다.
8. 회사에서 공모한 로고 만들기에서 비 디자이너 부문 최우수상을 타고 상금을 받았다.
9. 새로운 아이템을 기획하는 업무가 즐겁다.
10. 씽큐베이션 윤충희 피디님이 진행하시는 ‘잘 팔리는 글쓰기’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이 독서 모임의 경쟁률은 10:1이었다.
이 모든 변화가 올해 단 5개월 사이에 일어난 것들이다. 변화는 신박사님을 뵙고 그 분이 권하는 책을 읽으면서 찾아왔다. 어떤 변화는 당신이 보기에 좀 하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마다 기준은 다른 법이니까. 이제는 삶에 드리워져 있던 뿌연 장막이 모두 걷힌 것만 같다. 살아가는 것, 업무 모두 지지부진한가? 왜 사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랑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만 가는가? 아니면 낮은 자존감에 힘들어 하다가 집에 와서야 가슴을 치는가? ‘쟤는 되지만 나는 안 될 거야’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가? 삶의 전환점이 필요한가? 그런 당신이라면 신박사님을 만나 보길 바란다. 그 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그 분이 전하는 가치를 공유하고자 노력한다면 당신도 변할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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