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아빠는 비디오를 자주 빌려오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부터 액션 영화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불을 끄고 영화를 보았다. 지금보다는 머리숱이 좀 많았던 브루스 윌리스가 악당을 물리쳤다. 재난영화에서는 주로 각자의 행복한 일상부터 비추다 전원 소집을 했다. 모인 사람들끼리 갈등을 빚지만 결국엔 지구를 구해냈다. 아니면 연구자 하나가 이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고 적극적으로 알리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다가 뒤늦게야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지구를 지켜낸다는 내용이었다. 밤에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면 다음날엔 거실 탁자에 비디오 소개 책자가 놓여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계산대 옆에 비치해 둔 10장 내외의 얇은 카탈로그 같은 것이다. 증명사진보다 작은 포스터 이미지와 간략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심심할 때면 그것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걸 한 권 읽고 나면 거기 있는 영화들을 모두 본 것 같았다.
스무 살 때는 ‘엑스트라’라는 비디오 가게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반납된 비디오를 기계에 넣어 첫 부분으로 다시 감고, 제자리에 꽂으러 다녔다. 손님이 없을 때는 진열장 앞에 꽤 오래 머무르곤 했다. 가만히 서서 제목을 훑다가 관심이 가는 영화의 비디오 케이스나 DVD 케이스를 꺼내 뒷면의 소개 글을 읽었다. 비디오 소개책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영화들은 제목만으로 굉장히 보고 싶었다가도 소개 글을 읽고 나면 금방 식었다. 몇 년 뒤에는 롯* 시네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무릎을 굽히며 양손을 귀 옆에 팔랑팔랑 흔든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지금 1위하는 것, 자리가 없으면 2위하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은 손님이 별로 없는 영화에 한해서 이름을 적고 무료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역시 그 1위하고 2위하는 것이 보고 싶었고, 그것들은 거의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팸플릿이나 읽고 말았다.
나는 영화의 제목과 소개 글만 읽는 사람이었다. 살아온 날도 그런 태도로 일관했다. 한 가지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지 않는다. 언저리에 머물며 내가 마치 그것을 넓고 얕게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군다. 뭐든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평균 점수가 높은 사람처럼 살려고 했다. 그랬더니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나는 장르도 불분명하고, 주연도 별 볼 일 없는, B급 영화의 단역배우 정도를 살고 있다. 악당을 잡으러 골목을 뛰어가는 주인공에게 부딪혀 넘어지는 사람이나,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주인공의 차를 피하려다 도로 한가운데서 빙글빙글 도는 차의 운전자의 삶이다. (이런 것 중에 최악은 매장의 주인공과 악당이 추격전을 하며 매장의 과일을 모두 쏟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경우이다.) 나는 이 씁쓸한 결과에 실망해 이번 생은 틀려먹었다고 생각했다. 돌이키기엔 조금 많이 늦지 않았나.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다.
그런데,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이 결핍이다. 결핍은 주인공이 어떤 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그 욕망을 따라 선택을 반복하며 ‘마지막 장면의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다. 영화의 모든 장면과 사건은 그 절정을 향해 모인다. 가만히 보니 내 인생은 아직 마지막 장면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A가 B라는 가치관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인생에서 중요한 몇몇 사건, 혹은 그것이 집중적으로 일어났던 다룬 것이 영화이다. 나는 아직 가치관 A에서 출발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막 타이틀이 올라갔는데 이어서 엔딩 타이틀을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도 아니고 말이다.
가치관 A에서 발을 떼게 만든 도발적 사건은 멘토링이었지만 B로 향하는 장면과 시퀀스를 구성하게 해 준 건 씽큐베이션 <잘 팔리는 글쓰기>이다. 첫 멤버로 골라 준 윤PD님께 감사드린다. PD님이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 준 덕에 중간에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숨이 차긴 하는데 열심인 우리 멤버들을 보노라면 다시 힘이 난다. 행복감과 서평의 질이 비례하지는 않지만 책 읽고, 서평 쓰고,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이 3개월이 30대의 절반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다. 나는 내 결핍이 뭔지 안다. 외면하고 포기해 버리면 영화 소개 책자의 한 줄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꾸준히 의미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시퀀스가 장을 만들 때까지. 장이 이야기를 만들 때까지. 이야기가 흥행할 때까지.
글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것은 더 이상 할말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재능이 나를 버린 게 아니다. 할말만 있다면, 설령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재능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유지시켜 줄 지식이 고갈되면서 기아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될 뿐이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무식한 사람이 글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재능은 사실에 대한 지식과 아이디어들에 자극받아야 한다. 연구하라. 재능에 영양을 공급하라. 연구조사는 상투성과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길일 뿐 아니라 작가의 공포와 그것의 사촌인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로버트 맥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민음인, 2002,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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