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글을 짓는 데는 많은 말로써 헛되게 꾸미지 말 것이오, 다만 실지가 있는 말로 잘 펴서 엮어 첫머리에서 끝까지 일관하여 한 구절 한 구절과 한 자 한 자 정성과 간곡함이 밖으로 퍼져 나오게 된 뒤에야 인심이 감동되어 끌려 올 것입니다."
조선 초기 문인 김시습의 문집에 실린 글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저자가 마르고 닳도록 얘기한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의 핵심이기도 하다. 글깨나 쓰기로 유명한 두 사람이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보면, 평범할 수 도 있는 저 방법론이 아마도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인 모양이다. 띠지에서 말한 유시민만의 영업 기밀 같은 것은 이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서장에 말한 그대로 ‘논리적 글쓰기 일반론’이다.
논리적인 글을 쓰려면 먼저 자기가 하려는 말이 취향 고백인지, 주장인지부터 구별해야 한다. 타당한 이유라고 댄 것이 자기 생각에 불과하다면 앞서 한 말은 주장이 아니라 그냥 취향 고백이다. 주장을 하면 반드시 논증도 해야 하는데, 이때 개념을 끌어다 썼다면 그것의 맞고 틀림을 잘 따져야 한다. 사실을 근거로 댔다면 그 사실이 정확한지 의심해야 한다. 또 주장과 논증이 유기적인 관계성을 갖도록 이해하기 쉬운 논리로 풀어내야 한다. 글을 맺을 때까지 논점을 벗어나지 않게끔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논리적 글쓰기의 법칙을 몇 가지 기억하는 것이 글쓰기 수준을 갑자기 높여 줄 수 있느냐면 그렇지 않다. 눈코입이 어디 붙어 있어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 미형의 얼굴을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단순히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갑자기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재능이 어느 정도 필요한 문학적 글쓰기와는 달리 논리적 글쓰기는 연습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제시하는 연습법은 텍스트의 발췌와 요약이다. 이 발췌와 요약은 논리적 글쓰기의 첫걸음인데, 걸음을 떼려면 일단은 일어서야 한다. 글쓰기에서 일어서기는 텍스트 독해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논리적 글쓰기의 필요조건은 독서라는 것이다. 논리적인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과 정보를 최대한 많이 그것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논리적인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보와 논리는 책을 통해 얻는다. 그리고 어떤 책은 다른 책 보다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된다. 책마다 어휘의 양과 문장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자기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어휘를 많이 안다는 것은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식수준을 높이고 문장 구사력을 강화해줄 책으로 스튜어트 밀의《자유론》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을 추천한다. 《자유론》은 높은 수준의 철학적 사유를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코스모스》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문제의식과 연구 결과를 종합해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독해력, 문장 구사력, 텍스트 요약 능력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서로 간에 영향을 준다. 독해력이 좋아야 요약을 잘할 수 있고, 독해력은 요약을 전제로 한 읽기 연습을 통해 기를 수 있다. 요약하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 문장 구사력이 높아지니 이 중 무엇 하나라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발췌와 요약은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의견을 받고 취할 것을 취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인지하지 못했던 오류를 발견하고 독자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못난 글의 특징도 함께 알려준다. 못난 글이 뭔지 알아야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어색하다면 그것은 눈으로 읽기에도 어색한 글이다. 문장 속의 주술 관계가 불분명한 글, 지식의 저주에 매몰되어 전문 분야의 어휘로 점철된 글, 지적 허영심에 젖어 쓴 글도 좋은 글이 아니다. 또 문장 측면에서는 일본어의 ‘の’를 번역한 ‘~의’를 너무 자주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말에는 잘만 사용하면 뉘앙스를 다르게 할 수 있는 토씨(조사)가 있으니 우리말의 맛을 살려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영어도 가끔 우리말 속에 잘못 녹아든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키워졌다’ 같은 수동태 직역이나, ‘갔었었다’ 같은 완료형 직역이 경계해야 할 번역체이다. 외래어나 한자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토박이말로 모든 것을 대체하려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왜 위와 같은 글을 쓰면 안 될까? 자기만 보는 일기장에 쓰고 말 글이 아니라면 글을 쓰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소통’에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글을 읽는 사람이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글을 쓰는 목적에 따라 독자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한 고려한 뒤에 그에 맞는 분량으로 글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글을 맺으려면 군더더기를 많이 쳐낼 수밖에 없다. 부사구나 꾸미는 말을 쳐내고 한 문장에 한 가지 정보를 담아 단문으로 글을 쓰면 독자가 글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결국 글쓰기의 목적은 소통이며, 소통하기 위해서는 독자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독자는 저자가 건넨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글이 지나치게 난해해서는 안 된다. 목적의식을 잃지 않은 채 필요한 정보만을 담은 간결한 문장을 쓰고, 일관된 관점 하에 주장과 논증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가며 쓴 글이 논리적으로 잘 쓰인 글이다. 진리를 알았다고 해도 충분한 연습이 수반되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 양서를 읽고 발췌하여 요약하는 연습을 하며 지식을 쌓다 보면 글을 쓰는 능력은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다. 14세기이건 21세기이건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결국 다르지 않다. 글을 쓰는 데 시대를 관통할 만큼 중요한 진리가 무엇인가 하니, 결국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일반론이다.
이 책을 엮은 방식이 글쓰기의 과정을 좇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불쑥불쑥 나오는 비슷한 내용의 철칙들이 나중에는 한데 뭉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가 뭐의 철칙이었더라?’ 하고 말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가 된 데는 콘텐츠 자체보다 ‘유시민’이 한 역할이 조금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서 토론 모임 Thincubation(싱큐베이션) 1기 / 윤 PD님 그룹 / 1회차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