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쓴다

Read to Lead

by 누가

나는 교육‧출판 업계에서 일한다. 이 업계에서 에디터나 기획자로 일하려면, 글을 작가처럼 잘 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기본기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는 일의 목적이 근본적으로 사용자를 이해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 정도 발을 담그고 있었다면 없던 기본기도 생길 만큼 말과 글을 만질 일이 많다.


얼마나 된 일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이것은 내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성인 대상 교육용 동영상을 제작 중이었고, 하는 일 중에 동영상에 들어갈 내레이션 원고를 쓰고 고치는 일이 있었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해 처음 맡은 일은 프로젝트 리더인 A가 쓴 원고를 수정하는 일이었다. 원고를 채 두세 장도 넘기기 전에 뒷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리더를 잘못 만났음을 확신했다. 팀을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얼마만큼 신뢰해야 할지 알 수 없긴 했으나, 같은 분야 사람으로서 최소한 이 정도 소양은 갖췄으리라는 믿음까지 깨질 만큼 A의 원고는 엉망진창이었다.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 주술 호응, 연결사 사용까지 제대로 된 구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중 무엇이 최악이었냐고 묻는다면 읽다가 숨이 넘어갈 만큼 긴 문장이었다. 나는 20분 분량의 원고를 두 시간 반 동안 고쳐야만 했다. 하지만 A는 내 수정을 납득하지 못했고, 유물만큼이나 오래된 자료를 가리켜 ‘여기에 그렇게’ 쓰여 있노라며 오탈자만 고쳐 업체에 원고를 보내버렸다. 그리고 몇 주 후 점심시간, 아이를 키우는 직원이 꺼낸 독서 얘기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문득 들려온 ‘나는 책과 담을 쌓았어.’라는A의 고백에 나는 마음속으로 의사봉을 두드렸다. ‘리더 자격 없음. 탕탕탕!’


말과 글이 주는 영향력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신박사님과 고 작가님의 글은 내게 믿음을 심어주고 변화를 이끌어낸 반면, 사수 A의 글은 내게 불신과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저자도 글의 영향을 충실히 받았다. 두 전 대통령의 글을 읽고 쓰고 고치며, 그들의 인생과 철학, 성품에 한층 더 반하여 끊이지 않는 신뢰를 보냈고 그들의 철학을 정리해 세상에 내놓기까지 했다. 반면 촛불에 밀려난 18대 대통령은 자기 글을 쓸 줄도, 자기 말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진정성을 담아 자기 글과 말로 뜻을 세우지 못하는 리더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글은 읽는 사람을 끌어당길 수도 밀어낼 수도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시점을 바꿔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사람, 즉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저자가 모신 두 대통령만큼 인생을 담아낼 수는 없을지 모르나 적어도 각자가 가진 철학은 있을 것이고, 그 철학이 못난 글에 묻히지 않게끔 해주는 책이 <대통령의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어찌 보면 투머치 토커(too much talker) 같은데, 또 그만큼 바지런하다. 글에서 받은 인상이다. 잰걸음으로 다니며 글쓰기 왕도에는 화살표 표지판을, 샛길에는 통행금지 표지판을 꽂는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두 훌륭한 리더의 글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책이었으며,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글쓰기 방법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용을 따로 간추리지는 않으려 한다. 저자가 정리해 제시한 글쓰기 방법론은 목차의 소제목 아래 부제만 보아도 파악이 가능하니 필요한 부분은 바로 찾아서 다시 읽으면 되겠다. 대부분은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방론과 교집합을 이룬다. 다만 바로 전에 읽었던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어 간단히 제시하고 맺고자 한다.

먼저 유시민 저자는 글쓰기를 잘하는 데 있어 독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비중을 높게 뒀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비중이 적다. 또, 유시민의 글쓰기 방법론은 자기 자신의 철학이다 보니 저자가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는지 핵심 메시지를 한 단락 분량으로 추릴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체크리스트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마지막으로 유시민 작가는 잘못 쓴 글의 예를 꽤 가까운 곳에서 보여 주었는데, 이 책은 ‘대통령’의 글쓰기를 예찬하다시피 쓰였다 보니 그런 예가 없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써먹을 것을 찾고자 한다면 이 책을 권할 것이고, 글쓰기라는 여정의 처음과 끝에 있다면 유시민 작가의 책을 권할 것이다.





독서 토론 모임 Thincubation(싱큐베이션) 1기

윤 PD님 그룹 / 2회차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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