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이나 넷 즈음이었던 것 같다. 공무원 공부를 하겠답시고 독서실에 들어앉아 소설이나 쓰기 시작했던 게. 그때는 내 몸에 난 솜털 하나까지 소재거리가 될 만한 걸 찾는 레이더 같았다. 어디서 주워들은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이야기를 만들었고, 생각을 손이 못 좇았으며, 할 일을 제쳐 두고 매일 몇 시간이고 글을 써댔다. 마침 장소마저 독서실이었다. 공부 같은 건 될 대로 돼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 같으니까. 연습장에 쓴 건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새벽에 몰래 일어나 문서로 만드는 정성까지 들였다. 지금 다시 보니 ‘잘못된 글쓰기’ 예로도 못 쓸 만큼 클리셰(cliche) 범벅이라지만, 뮤즈 비슷한 누가 내 손목을 잡고 펜을 움직였던 게 분명하다. 이건 내 자랑이나 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글쓰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즈음이었다.
그때 했던 고민은 주로 ‘문장을 더 아름답게 쓰는 법’, ‘있어 보이는 글을 쓰는 법’, ‘나의 의도대로 독자가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을 좇아오게 하는 법’ 같은 것들이었다.
문장을 더 아름답게 쓰는 법을 알고 싶어 했다는 것은 절제나 운율감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더 아름다운 수사 표현을 알고 싶어 했단 얘기다. 글의 내용을 탄탄히 하고 재미를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했어도 모자랐을 시간에 엉뚱한 데 신경을 쏟은 셈이다. 독자가 주인공이나 배경을 묘사한 표현을 아름답다고 느꼈으면 해서 내가 아는 모호한 말이란 말은 다 가져다 붙였다. 2~3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했던 일이어서인지, 소설을 안 쓴 지 한참이나 되었는데도 여러 글쓰기에서 그때 버릇이 묻어 나온다. 지금은 논리적인 글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의미를 가장 분명하게 전해주는 어휘 몇 개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세 명의 글쓰기 선생님-유시민, 강원국, 스티븐 킹-이 한 말을 되새겨 본다. “더 담으려고 욕심 내지 마세요. 문장을 쓸 때는 부사어 같은 건 되도록 쓰지 말고 단문으로 간결하게 쓰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고민 중에 하나는 ‘있어 보이는 글을 쓰는 법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부사 하나를 넣어야겠다. 양해를 구한다. 고약하게도 나는 소설 머리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이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 같은 것들을 가져다 붙였다. 마치 그게 내 글이라도 되는 양 첫머리가 고상해졌다는 것에 의기양양해져서 어디 또 쓸 만한 게 없나 찾아다녔다. 하필이면 내 전공이 온갖 상징이 넘쳐나는 글들을 파헤치는 것이었기에 주워다 쓸 것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주워 모아 기운 글은 내가 글쓰기를 단련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을 내 언어로 풀어 글에 녹여내는 것이 아니라, 좀 유명한 사람이 말했다 싶으면 눈여겨보고 가져다 붙이길 좋아하는 천박한 버릇이 남았다. 세 저자는 모두 “내가 아는 얘기를 진솔하게 풀어야 한다고, 혹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좋다”라고 했다.
쓰는 건 소설인데 영화감독처럼 머릿속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떠올려 본다. 독자가 내 의도대로 시선을 옮기고, 내가 깔아 놓은 장치 때문에 가슴 졸였다가, 이쯤에서 슬프라고 넣은 얘기에 슬퍼서 울어 주었으면. 한 술 더 떠 독자를 믿지 못하기까지 해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들었다. 숨 쉬고, 손가락 움직이고, 눈 깜빡이는 것부터 시작해 배경의 역할이 딱히 필요치 않은 장면에서도 드론 촬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묘사를 해댔다. 스티븐 킹은 독자가 이미 맥락을 파악하고 있으니 쓸 데 없이 문을 ‘굳게’ 닫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투고했던 잡지사로부터 10프로 덜어내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는 피드백 메모를 받았다. 아, 2006년의 나에게도 누군가 그 비밀을 알려주었더라면. 그랬다면 주인공이 등 뒤로 문을 굳게 닫고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지 않았을 텐데! 주인공이 있는 카페의 습도와 냄새는 대체 뭐가 중요했단 말인가!
누적이 되었건, 반작용을 했건 과거의 습관이 지금의 내 글쓰기를 만들었다. 번번이 튀어나오는 미사여구를 꾹꾹 밀어 넣거나 아예 싹둑 잘라내면서 그래도 앞서 읽은 세 권의 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통감한다. 독자에게 보여 줄 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영리하게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것도 다시 새기고 넘어간다.
내 글 자체에는 강점이 없다. 하지만 글쓰기 경험은 분명 강점이다. 나에겐 장르 불문하고 쉼 없이 글을 썼던 시기가 있었고, 못난 글쓰기를 많이 해둔 덕에 이번 독서를 통해 실패의 경험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내 모자란 글들이 훌륭한 밑거름이 되어 주었으니 책을 읽어 흙을 단단히 해야겠다. 피드백을 받아 물을 준다. 다시 심은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을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