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쓴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꿈을 물으면 안 되는 이유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by 누가

“우리 행복이는 꿈이 뭐니?”

“꿈이 뭐예요?”

“장래희망. 이다음에 어른이 돼서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말이야.”

“피아노 치고 싶어요.”

“예체능은 돈만 많이 들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요즘은 이공계를 나와야 입에 풀칠이라도 해.”


이때 대화를 듣고 있던 행복이 엄마가 끼어든다.


“무슨 소리예요. 돌 때 마이크 집었으니까 아이돌이 돼야죠. 돈 많이 벌려면 아이돌이 최고예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툭하면 꿈을 묻는다. 꿈이 장래희망의 동의어이기라도 한 양.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 밖에 모르고, 앞으로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턱이 없을 아이들에게 말이다.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직업의 이름을 부모 앞에 내어 놓는다. 아직 날것의 세상을 경험하기에 바쁜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잘못된 정의를 담아 질문하고 자기 소망대로 답을 정정해준다. 웬만하면 벌이가 정오답의 기준이 된다. 2019년 기준 돈을 적게 버는 직업은 오답이고, 많이 버는 직업은 정답이다. 어른들의 못난 첨삭에 아이들의 ‘꿈’은 고작 직업 따위에 한정되어 버린다. 그리고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입된 신념을 가지고 ‘암기 과목’과 ‘주요 과목’이라는 것을 나눠서 공부한다. 공부에서 즐거움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고생스럽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첫 번째 현타가 찾아온다. 전공이 안 맞는 것이다. 매일 매일이 술 파티다. 방황을 일삼다 어떻게든 졸업하여 그럭저럭 친구들이 하는 대로 이력서를 넣었더니 병아리 눈물 만큼이긴 하지만 어디서 돈을 주겠단다. 불러주는 곳에 취직했더니 두 번째 현타가 찾아온다. 적성에도 안 맞을 뿐더러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것이다. 퇴근 후에는 허한 마음 달랠 길이 없어 스트레스를 풀겠답시고 술을 마시고, 게임하고, 드라마 보다 잠이 든다. 괴로움은 도피해 마땅한 것이니 이렇게 현실을 잊어 보겠다는 처사다. 이러니 매일 발전이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내 부모는 꿈을 이뤄 본 적도 없으면서 내게 꿈에 관한 조언을 했구나!’ 남의 탓을 한다. 괴로워하다 내린 결론은 고작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에 다시 집중해 보고 성취감을 얻어내 보겠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탐구할 생각은 없다. 진짜 좋아하는 걸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모른다. 어렸을 때 좋아했으니 지금도 좋아하겠거니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취미 피아노반 따위에 등록한다. 그마저도 생업에 바쁘다고 금세 잊고 빠진다. 벌어먹고 사는 게 참 주옥( 빨리 발음해 보자!) 같다고 느끼는 다른 어떤 날 대체 ‘뭘 해야’ 행복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뭘 해야’에서 이미 틀렸다. 그리고 이건 ‘자아실현’ 최악의, 그리고 보통의 시나리오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특정 행위 자체를 내적으로 즐길 수도 있고, 아니면 바람직한 만족을 이끌어내는 도구적 유용성 때문에 그러한 행위를 중시하고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행위가 성공적이거나 효과적이지 않으면, 그 행위는 가치를 상실하고 즐겁지 않게 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은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목표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은 삶 자체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천국에 가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 책 내용 중 -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꿈을 이루겠다는 욕구는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다. 그마저도 하위 단계의 4개 욕구가 모두 충족이 되어야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욕구이다. 이 욕구는 ‘배설을 해야 해서’,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남의 인정과 자기 존중감이 필요해서’ 같은 결핍을 기반으로 느끼는 욕구가 아니다. ‘창조적인 경지까지 자신을 성장시켜 자신을 완성함으로써 잠재력의 전부를 실현하려는 욕구’인 것이다. 앞의 4개 욕구는 충족시키면 해소했다는 안정감과 더불어 허망함(현자타임)을 느끼게 반면,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는 충족시키면 충족시킬수록 더 높은 경지를 원하게 된다. (여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말년에 7단계로 만들었고, 초월 욕구라를 자아실현 욕구 위에 얹었다고 한다. 아재요...) 게다가 이 세상 긍정적인 형용사는 다 갖다 붙여도 될 것 같은 경지에 이른 상태이다. 아홉 살 열 살이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아, 허무한듸



‘욕구’에 좋고 나쁨이 없으며 그것을 있는 그대로 어린이처럼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 자아를 실현한 미래는 어떤 목적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 그것을 이루기 위한 단계들은 성숙과 미성숙의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경로로 보아야 한다는 점들도 모두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분법적 사고를 배제해야 한다고 하고 여러 가치의 화합과 통섭을 얘기하면서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존재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분절시켜 놓았다. 나는 학자도 무엇도 아니고 서울 시민 김 모씨에 불과해 제대로 된 반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랫단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도 꿈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화가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 탓에 껌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껌종이에 그림을 그릴지언정 그림 그리는 행위가 자기 자아를 실현하는 일이며, 화가에게는 행복 그 자체였을 수도 있다. 신경림의 시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를 리도 없다.



내 멋대로 간추려 본다. 어떤 것들은 결핍을 충족시키는 일이고, 결핍이 해소되면 그 자체로 사라져 버리고 말지만 진짜 나를 있게(being) 하는 것은 그런 결핍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어떤 숭고한 경지의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 ‘이것’을 해야 한다는 목적과 수단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진짜로 즐거워하는 것은 찾기 쉬운 게 아니다.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보이기도 하며,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고통을 줄 수도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자세로 그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어떤 날엔가 진짜 내가 꿈꾸는 게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때, 지난 날의 고생은 썰물처럼 밀려 나가리라.

노래 가사 몇 소절을 덧붙이고 끝낸다. (알면 옛날사람!)



"사는대로 사네. 가는대로 사네. 그냥 되는대로 사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크래쉬 (원곡 모노크롬) -





덧붙여)

1. 번역 탓인 건지 당최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영어에서 복문이었다고 한들 번역까지 복문으로 해놓으면 쓴단 말인가. 수능영어 답안지도 이렇지는 않다. (반성하라, 문예출판사!)

2. 이 책을 청소년 권장 도서로 선정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직원은 정말 이 책을 읽었을까?


#체인지그라운드#씽큐베이션#2기#행복으로가는길#욕구#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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