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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가 Aug 12. 2019

행복에 관한 흔한 착각

<에우다이모니아>

  존은 버려진 아이다. 그래서 자기 맘 속 어딘가에 있는 빈 구멍을 채우려고 12살부터 술을 마셨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마시는 알코올중독자다.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있었던 그 날도 그는 여느 때처럼 밤새 취해 놀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전신불수가 되고 만다. (5번과 6번 척추 사이가 절단된다!) 가족도 없는 마당에 알코올중독, 전신불수이기까지 하다고? 웬만한 메탈이 아니고서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숨을 쉬고는 있고, 지내다 보면 어느 날 자기를 방문해 주었던 요정 같이 예쁜 자원봉사자를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는 잘 살아야겠다는 강렬한 의지보다는 살고는 봐야겠다는 듯한 태도로 알코올중독 치료 모임에 참가한다. 그리고 소모임 첫날 거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처럼 신세 한탄을 한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오, 가엾어라. 우리랑 같이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고 행복해 집시다.’였을까? 아니다. ‘그게 뭐 어쨌다고?’였다.



  그 소모임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거대한 힘을 탓하거나 하지 않는다. 어떤 불행은 자기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한다. 그들은 누가 더 불쌍한지 겨루기 위해 모인 것도 아니고, 질질 짜는 사람을 위로해 주려고 모인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도 평범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자신이 알코올중독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모였다. 그들은 ‘이 고통을 잊게 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삶, 괜찮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존은 처음에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집에서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술병을 집으려고 오만 가지 방법을 쓰다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기진맥진한 후 현실을 인식한다. ‘내 문제는 사지마비가 아니고 이놈의 알코올중독이구나.’라고 말이다. 알코올중독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불행이었다. 뭐 그 뒤로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연인에게서 “당신은 특별해요.”라는 얘기를 듣고 좀 더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풍자 카툰 그리기 재능-을 발견해 그 분야에 몰두하며 자신의 여러 한계를 극복해 냈다는 얘기다. 영화가 썩 재밌지는 않아서 졸면서 보았는데, 관심이 있으면 보시길. <Good Will Hunting>으로 유명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최근작  <Don’t Worry>이다. 내가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낸 건 오늘 말하려는 책 속 이야기와 어느 정도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마음의 과학』에서 「에우다이모니아: 좋은 삶」을 얘기한다. 그는 심리학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많은 신경을 기울여 –6을 –2로 만드는 업적은 이루어 냈지만 그것이 아무리 잘된다 한들 결과적으로는 겨우 0에 수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2를 +6으로 만드는 연구’는 이루어져 오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이 그것을 연구하기로 한다. 그가 알아낸 바는 다음과 같다. 그는 먼저 행복의 연구 대상이 세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그 세 가지는 즐거운 삶(pleaseant life),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라고 명명한 좋은 삶(good life), 그리고 의미의 추구이다. 저자는 즐거운 삶이 할리우드 판 행복이라고 말한다.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것, 누가 봐도 즐거워 보인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의 행복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결이 다르다. 좋은 삶, 에우다이모니아는 몰입을 일으키는 근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자신의 대표적인 강점이 무엇인지 안 뒤에 그것들을 더 활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재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을 한다. 죽을 때까지 초조하고 불안하게 살아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인데, 마틴 셀리그먼은 이것이 인간이 불가항력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의미의 추구라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큰 무언가에 자신을 내맡기고 갖다 붙일수록 그만큼 삶에서 더 큰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정신병에 쓰이는 약물은 완전한 치료제가 아니라 ‘완화제’이다. 잠시 증상을 억제하기는 하지만 투약을 중단하면 원점으로 돌아온다. <Don’t Worry>의 주인공 존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술(완화제)을 마셔댔지만 고조된 기분도 잠시 동안만 유지될 뿐 곧 손을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자기 현실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괴로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영화에서는 술,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빗대자면 중독되어 있는 그 무엇은 결핍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잠시 잊게 해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이 말하지만 마이너스를 0에 수렴하게 하는 것이 진짜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에우다이모니아, 바로 몰입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2 정도의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자기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 그 강점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영원히 유의미한 행복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몰입이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존은 여기서 겨우 움직이는 손 하나를 이용해 사회 혹은 정치 풍자만화를 그린다. 전신불수로서 가질 수 있는 삐딱한 시선, 그러면서도 유머를 얘기할 줄 아는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것이다. 장애는 더 이상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그를 이루는 하나의 부분이 된 것이다. 그는 그것을 즐기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의미를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졸아버린 탓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좀 더 유머러스하게 세상을 살아나가길 바란 마음이 아니었을까? (아닌 것 같지만 어찌 됐건!)



당신 같은 사람은 내게 진정한 영감을 줍니다! (뭐 이 자식아?)



  만약 존이 저를 버린 엄마를 찾고, 알코올 중독을 치료했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남의 행복을 속단할 수는 없지만 저자에 의하면 아마 덜 불행한 상태에 다다를 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자기 강점에 집중하는 몰입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틴 셀리그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진짜 행복한 삶이란 자기 에고를 넘어서는 더 큰 힘을 향한 의미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겨우 울음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웃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날 운명처럼 내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찾기 위해 몰입을 하는 가운데, 행복의 씨앗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행복은 처음부터 자기 가슴 안에 있다.



알로 남든가, 하늘을 날든가.






씽큐베이션 2기 / 행복으로 가는 길 / 마음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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