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고 쓴다

돈을 모르니까 돈이 없지

by 누가


어떤 것의 미래를 논하는 책들이 판을 친다. 그 중 한 권 골라 읽는 것이 점괘 뽑기와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과거를 논하는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붙잡아 두기엔 너무 바쁘신 몸, ‘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돈이라고 하면 현재와 미래가 더 궁금한 분야인데, 대체 역사는 왜? 저자 홍춘욱 박사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 역사를 바꾼 중요 사건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혀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여 본다. 돈을 중심으로 말이다. 경제와 세계사라니, 둘 다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에 제목에서 주춤했다면 그런 걱정은 내려놓아도 좋다. 저자는 일반인들 대상으로 한 경제 교양서임을 염두에 두고 50여개 사건을 추려낸다. 그리고 350쪽 분량에 알차게 담아낸다. 필요하면 더 깊이 알아볼 수 있게 참고 도서 목록까지 함께 가르쳐 준다. 따라서 이 책은 계독의 출발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 역사서라면 흔히 떠올리는 연대기 식의 서술을 하지 않는다. 일곱 개의 핵심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찾는 과정 속에 역사 속 사건과 사고가 자연스럽게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 중에 전쟁과 빚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전(戰)과 쩐(錢)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나 마찬가지이고, 이 책 역시 역사라는 컨텐츠를 다룬 만큼 전쟁 얘기가 꽤 많이 나온다. 무슨 전쟁이든 목적은 승리 뒤의 평화이다. 그리고 평화의 대가는 돈이다. 무기를 사고, 보급을 하고, 군대를 유지해야하기 때문이다. 많은 전쟁과 전투 중에서 1부 1장의 문을 여는 것은 트라팔가르 해전(1805)이다. 영국은 이 전투에서 덩치 큰 프랑스-스페인 연합 군대를 이겼다.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영국이 강한 해군을 양성할 수 있었던 데는 낮은 국채금리가 한 몫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국의 중앙은행이 국민의 신뢰를 얻어 국채금리가 낮아졌고. 국가는 비교적 적은 부담으로 더 많은 돈을 빌려 해군을 양성하는 데 투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부를 마무리하며 금리가 높은 나라는 투자처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나라들은 금리를 높여 부르지 않으면 국채가 팔리지 않을 만큼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은행이 ‘위험성이 다소 높긴 하지만 금리가 높다.’라며 상품을 팔려 든다면 일단 의심하고 볼 일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전쟁은 베트남 전쟁(1960~1975)이었다. 미국은 전쟁 초반에 보급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히다 컨테이너 수송을 고안해냈다. 명색이 자본주의의 성지 미국인데 베트남에 물건을 내려놓고 빈 컨테이너로 본토까지 돌아갔을까? 그들은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동아시아 국가를 제대로 이용했다. 일본의 전자제품을 가져가 ‘메이드 인 재팬’ 붐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질 좋은 물건을 만들어 다시 자국에 파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했다. 우리나라 제조업과 수출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가 우리의 의도나 노력과는 별개로 우연히 찾아왔다는 것이 재밌다.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빚과 빛

나라 경제는 빚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민간은행은 개인에게 돈을 빌려준다. 은행들은 신뢰감이 높아 보이는 연예인들을 앞세워 당신이 어려울 때 당신 곁에 있겠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 우리가 빚을 내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 빚이 은행에는 빛이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레버리지 투자, 서브프라임 사태, 모두 빚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이 많은 상태이다. 기업은 낮은 금리에 돈을 빌릴 수 있고, 재화와 용역이 활발하게 공급된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면 1923년 독일처럼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하는데, 이를 이르는 말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다. 독일은 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보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금본위제를 버리고 화폐를 양껏 찍어낸다. 그 결과 화폐 가치가 떨어져 밥 먹으러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지는 급격한 물가상승을 겪는다. 그 당시에 발행된 화폐를 보면 지폐 한 장에 200억 마르크라고 적혀 있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의 반대 개념이다. 저축 성향이 강해져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 금리가 높아 기업은 대출을 꺼리고, 줄어든 수요에 맞춰 고용 역시 감소한다. 둘 다 좋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나마 나은 것은 인플레이션 상태이다. 피가 돌아야 내가 살 듯 국가 경제도 돈이 활발히 돌아야 건강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이 돈다는 개념이 결국은 활발한 대출이 이뤄진다는 얘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들 돈 좋아하면서 돈 공부는 안 한다. 일단 나부터가 그렇다. 경제가 돌아가는 패턴에 관심을 갖게 해준 씽큐베이션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경제서라면 거들떠보지 않았던 내가 기초의 기초부터 이해하기 위해 다른 책까지 구해다 읽었으니 이게 정말 계독의 시작이 아닐까. 끊임없이 ‘왜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뒤돌아보는 저자를 통해 시간이 등 떠미는 대로 멍청히 살아가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또, 어떤 것 하나가 그 답이 될 수는 없지만 이런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겸허함을 느낀다.

자본주의는 선하지 않다. 정신을 놓으면 돈의 종이 될 것이고 똑바로 차리면 주인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를 비춰 보게 하는 명경이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서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



k502635582_1.jpg 저자: 홍춘욱 / 출판사: 로크미디어

#씽큐베이션#대교#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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