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회의는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고 남성 두 분이 서로 감정 싸움을 하는 도중에 상사가 들어왔다.
상사는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왜 소집했냐면서 갈궜고, 난 중간 관리자로써 일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회의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상사는 굳은 얼굴로 나갔고 난 하고있던 업무를 계속했다.
그런데 몇십분 뒤 돌아온 상사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도 기가 질렸다. 아니 몇십분동안 화를 키워서 돌아온거야?
전에 그만둔 회사에서는 미운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내가 그만 두기 두달전에 다른 곳으로 이직한 팀장도 싫었고,
내 사수도 싫었고,
품질팀 팀장도 싫었고,
개발팀 모 대리는 죽이고 싶었고
나의 전생, 현생, 후생, 내생 온갖 웬수들이 한 회사에 다 몰려 있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가 1차,2차,3차 증폭되는 날이 많았고 그 문제의 원인들은 죄다 원수들에게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로 돌아와 몇년이 지나고 나니,
그게 꼭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온이 공하다."
색, 수, 상, 행, 식
부처님은 인간의 의식 작용을 5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색은 물질, 수는 좋고 싫고 느낌, 상은 쌓아온 지식과 상상, 행은 구체화된 상으로부터 행동하는 것, 식은 분별하여 아는 것을 말한다.
색으로부터 시작해 식으로 끝나면서 우리는 온갖 것에 메모지, 인덱스를 붙인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맛있는 것, 맛없는 것, 갖고 싶은 것, 갖기 싫은 것 등
우리가 보는 것,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오온의 단계를 걸치면서 주관적인 정의가 붙는다.
하지만 주관적인 인지 작용은 본질을 뒤튼다. 무슨 메모지를 붙이든 그것은 본질과는 다른 형태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그런데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로다.
하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어디까지 산이고 어디까지가 물일까? 산은 높이가 얼마나 되어야 하고, 어떤 형태여야 산일까?
물은 어떤 형태까지 물일까? 녹기 전 얼음은 물이 아닐까?
산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산이 아니다. 산은 매우 다양한 형태인데 어떻게 하나의 형태가 산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산이 싫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산을 내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경험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산이 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이라는 단어가 정의하는 것이 틀렸는데 그것과 연관된 감정이 옳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 역시 산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산은 산처럼 보이고 물은 물처럼 보여도 그것은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모든 형태의 실체는 사실 공하다. 공하다고 하는 건 비어있다라는게 아니라 정의되지 않았다라는 뜻이 더 맞을 것이다. 실체는 이런 것이다 정의해버리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사실과는 다르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 어떤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일 뿐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그건 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미운 짓을 한 것 역시 마찬가지. 그냥 그 행위가 일어났을 뿐이고 그것을 내가 싫어하는 행위, 증오스런 행위, 화를 나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감정이 따라 일어날 뿐이다.
하지만 돌고돌아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하는 청원유신 선사님의 말씀처럼 인간은 결국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속의 좋고 싫은 느낌대로 모든 사물에 메모지를 붙인다.
아무리 미워하지 않으려해도 미운 사람은 미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상사가 밉다. 사건의 전후를 파악하는 것 보다 결과만 놓고 나에게 화를 낸 것도, 이 일을 아직까지도 꿍하게 마음에 간직하는 것도, 뒤끝이 장난 아닌 면도 마음에 안들고 밉다.
그럴때면 그냥 내가 밉다고 생각하지 않고, 호진은 ooo을 싫어하는구나. 호진은 ooo을 이런 이유 때문에 미워하는구나 생각하면 금방 감정이 가라앉는다.
나라는 지칭을 단순히 이름으로 바꿨을 뿐인데도 희안하게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처럼 마음이 안정되는 경험을 한다.
오늘도 꿍한 표정의 반대편 상사를 보면 멱살 잡고 줘패는 상상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