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IT기업에서 신입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지도
벌써 반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부서 바이 부서, 팀 바이 팀'이라고 하지만,
선배 팀원들이 초기에 항상 내게 했던 말은
"이 곳은 정글이고, 이 팀에서 살아남으면
어느 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일반적인 다른 신입 기획자들과 달리
조금 특이하게 곧바로 실무에 "던져졌는데",
입사하고 내가 팀원들의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나는 바로 다음 배포의 메인 과제를 맡게 되었다.
수개월 전에는 학교를 다니며
팀플이나 하던 대학생이,
갑작스레 엄청난 수의 유저들이
사용하는 서비스에 그 변화가 크든 작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솔직히 말해서 조금 믿기지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그냥 젊은 신입의 아이디어나
들어보고 싶으신 거겠지"라고,
어리석은 나는 생각했다.
물론, 나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단순히 인턴 때처럼
아이디어를 디벨롭해 발표를 하고,
시니어 기획자 분들이 그 과제를 맡아
실현시키는 아름다운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이 곳은 아기가 아장아장 걸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곳이 아니라,
월급 받고 일하는 프로답게
증명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상위 기획부터 상세 기획까지 진행하고
디자이너들과 개발자들을 설득하여
지표가 수년째 하락해 바닥을 기고 있는,
그래서 실제로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서비스와 사용자 그 누구에게도 효용을 주지 못해
아예 서비스를 접는 것까지 의견이 나온 한 영역을,
접기 전에 마지막으로 개선해보는 과제였다.
그것을, 신입 기획자인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데이터를 보면,
사실상 죽은 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과제였다.
당시에 어차피 해당 서비스 영역의 '부활'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낮았고,
나 역시 신입 사원이었기에,
사람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현재의 지표가 워낙 좋지 않았기에,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개선만 진행하더라도,
지표는 어느정도 반드시 상승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결정적으로 위에서 내게 내려준 과제였지만,
내가 개선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반드시 사용자들의 니즈가 존재한다는 것을,
데이터가 똑똑히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기획자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1. 있어야 하는 해결책이 부재하거나,
2. 이미 있는 해결책이 잘못되었거나.
내가 판단하기에 내가 맡은
첫 과제는 후자에 속했다.
특정 시즌에 필요로 인해 해당 영역을 진입하는
사용자들의 수는 수년간 지표가 하락했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수치가 찍히고 있었다.
혹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이상,
제 발로 해당 영역을 진입하는 사용자 수들이
특정 시즌에 그만큼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 그들에게 니즈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명확한 반증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당 영역에 진입한 사용자들의 거의 대부분이,
전환이 이루어진 이후 곧바로 이탈했다.
그 수치는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현재 서비스 영역의 사용자 플로우는
니즈를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기보다는,
서비스 관점에서 사용자들이 스스로
사람들의 해결책이 되도록 인도하는 방향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용자 그룹을 엮어줘야 하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제공할 수가 없으므로,
기존 기획의도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방향을 택해야 했다.
해결책을 다급하게 "찾는" 사용자들을
스스로 해결책이 되도록
유도하여 "만드는데" 성공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애초에 해결책을
찾기 위해 들어 온 사람들이지,
좋은 해결책이 되려고 할 정도의
의지는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서비스 영역의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의지가 있었다면
이 영역에 진입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양보다 질'이라는 전략은,
말은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더 이상 이것은 대학교 팀플이 아니라,
실제로 개선이 반영되는 서비스니까 말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사용자 경험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도록 하는
플로우를 과감하게 제거했고,
하나의 플로우에 두 사용자 그룹을 담던
기존의 방식을, 각 사용자 그룹에 맞춰
서로 다른 두 가지 플로우를 제공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 플로우를 사용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스스로 원치 않는데도
갑작스러운 "해결책"이 되지 않도록,
이탈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위험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이미 압도적인 사용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이탈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찾는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을 때,
약간의 큐를 주어 스스로 "해결책"이
되어보는 것은 어떻냐는,
작은 메시지를 플로우에 담았다.
생각해보면 매우 간단해 보이는 플로우 개선이지만,
나름대로 여러 변수들을 계산하며
"적어도 지금보다 확실히 나아질 개선안"을
가져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하더라도,
생각보다 기술적인 리소스가 많이 투입될
이 개선을 진행하기 위해
팀원들과 다른 협업팀들을 설득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맡았던 첫 과제는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음 배포의 메인 과제로
무사히 배포되었고,
아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외부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개선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지표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매우 크게 상승했다.(솔직히 더 떨어지기도 어려웠다)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내 첫 과제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이
신입으로서는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내가 무엇을 놓쳤고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는지,
데이터를 통해 배우기가 어려워졌으니까 말이다.
뭐, 내년 시즌이 약간 궁금해지기도 하고.
첫 과제를 진행하면서
많은 분들이 좋은 의견을 주셨고,
내가 너무 다른 길로 튀지 않도록
잘 잡아주신 분들이 있다.
참으로 감사한 분들이다.
첫 과제의 사이클을 한번 돌고 나서야,
드디어 비로소 팀에 적응을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적응 중이지만 말이다.
요새는 어떻게 하면 기획자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만'하고 있는데,
뾰족한 묘수가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요즘 들어 내가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는 배울 점이 있고,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극도 받고,
나만의 인사이트도 종종 생기는 듯하다.
어쩌다 보니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제 이야기만
주구장창 써놓았는데, 아무렴 괜찮다.
나를 위해 기록하는 글이니까.
한 달 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는데,
이 글은 완성하기가 어찌나 어려운 것인지.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고 있다.
어제는 같은 산업에서 다른 직무로 일하고 있는
같은 과 선배를 아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술 몇 잔 기울이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풀어서
또 다른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
글 쓰는 것은 매번 느끼지만,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