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가 바라보는 지극히 주관적인 셀프 유저 회고.
어느새부턴가 브런치에 새로운 알림 기능이 추가된 것 같았다. 글을 쓰지 않게 된 유저들에게, 마지막으로 게시글을 올렸던 시점으로부터, 30일마다 컴팩션되지 않는 "글쓰기 리마인드 알림"을 보내주고 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종종 습관적으로 서비스를 방문하는 내게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이 만큼이나 오래되었구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용한 알림 기능인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알림은, 브런치에서 새 글을 발행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넛지가 될 수는 없다.
뭐,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 6수, 7수 하는 사람들도 많은 마당에, 정작 퍼블리싱 권한을 부여받고는 오랫동안 의미있는 activity를 하지 않고 있는 유저들이 많다면, 브런치 팀 입장에서 조금은 답답하고 배은망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서비스를 열심히 쓰고 있지 않다보니,
유저로서 현재의 생태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콘텐츠들이 여전히 각광을 받고,
어떤 토픽들이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지,
작가들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글을 쓰는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등, 예전처럼 트렌드를 피부로 느끼기가 어렵다.
어쩌면 오랜만에 돌아왔음에도, 대충 눈으로 훑어봤을 때는 브런치에서 보여주는 콘텐츠가 여전히 비슷비슷해서 딱히 차이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실제 서비스 데이터를 까 볼 수는 없는 입장이니, 그저 이 '리마인드 알림' 기능을 보면서, 어느정도 브런치 팀의 고민을 고스란히 느껴보려 노력해 보는 수밖에.
초기에 비해 어느 순간부터 브런치의 작가 입문 허들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전반적으로 작가들이 글을 생산하는 목적의 비율도, 어느정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을 즐기거나, 생각을 공개적으로 기록하고 싶거나, 순수하게 스스로를 표현하고 남들에게 닿기를 원하는 이들의 비율은, 새로운 작가들이 유입되면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 지원을 하고 수차례 퇴짜를 맞으면서까지, 계속해서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가며 지원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상당한 노력과 근성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거절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 물론 나처럼 서비스 초기에 가입해서 낮은 허들로 운 좋게 한 번에 통과한 얼리 유저들이나,
수려한 글쓰기 능력을 지녀 단숨에 승인을 받은 유저들은 이러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는 바로 여기서, 서비스를 대하는 "태도"가 유저 그룹 간에 갈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라는 새로운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를 설계하면서, 분명 기존의 플랫폼들과는 확실하게 다른 차별점이 필요했을 것이고, 브런치 팀은 "High Quality 글이 생산되는 곳"을 그 차별점의 핵심으로 둔 것으로 보인다.
- 글을 쓰고 소비하는 플랫폼에서 정작 글쓰기 권한을 모두에게 제공하지 않고,
- 직접 브런치 팀 내부의 "주관적인" 심사를 거쳐 통과한 소수의 유저들에게만 기회를 주며,
- "작가"라는 단순하지만 프리미엄을 붙인 호칭을 부여한다는 점과,
- 그로 인해 작가들에게 콘텐츠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금전 보상을 주지는 않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 낸 작가들에게 고유의 "팬 베이스"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일종의 "유명세"까지 얻게 되어, 스스로 별도의 보상을 harvest하게 한다.
실제로 나는 주변에서 책을 발행하거나, 강연을 하게 되거나, 새로운 Job Offer을 받는 등 다양한 부수적인 이익이나 기회를 얻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해 왔다.
물론 순수히 작가의 꿈과 예술성을 발산하고 싶은 작가들도 많겠으나, IT산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관찰해 본 결과, 브런치 "작가"는 일종의 "명함"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생산해낸 "글"들은 일종의 "포트폴리오"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Pie를 비교했을 때 서비스가 성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강력한 동기와 욕망을 지닌 유저들만이 이 생태계에 진입하고, 지속 가능한 생존을 이뤄냈을 것이다.
설령 이러한 동기없이 브런치를 접근했던 일종의 "저관여" 유저들도, 처음에는 본인이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차차 시스템 로직에 따라 유저들에게 닿게 되고, 그에 따른 좋아요, 댓글, 공유 등의 피드백을 받게 된다.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닿고, 반응과 공감을 얻고,
세상과 소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놀랍고 즐거운 일이다. 작가들은 조금씩 더 많은 글들을 발행함에 따라, 자연스레 자신의 글들 중에서, 피드백을 많이 받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브런치는 통계 기능이 꽤나 잘 되어있다.)
많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그러하듯,
보상의 법칙에 따라, 꽤나 많은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게 "반응을 잘 받을 수 있는" 글을 쓰게 된다. 몇 번 정도 더 많은 반응을 얻게 되면,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다가,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기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공을 들인 것이 비해 반응이 적어 상심을 할 때도 있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 상처를 받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반응에 집착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거나, 본인이 팔리는 글만 쓰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거나, 정작 쓰고 싶었던 주제를 썼을 때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허무함을 얻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모두 나를 포함해서, 내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아는 몇몇 작가들이 내게 직접 솔직하게 이야기 해준 본인들의 경험들이다.
그중에서는 여전히 꾸준하게 글을 쓰는 분들도 있고, 아예 글 쓰기를 멈춘 분들도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익명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내 생각을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브런치는 그에 적합하면서도, 동시에 다소 부담스럽고 무거운 면이 있다. 간접적으로 이곳은 작가들이 "잘 팔릴만한 글"을 쓰도록 은근하게 유도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저 베이스와 수요가 명확하게 갈려서 보이는 곳이
브런치 플랫폼의 특징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콘텐츠나 예술이 언제나 그래왔듯, 대중에게 사랑받는 공식은 항상 정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브런치가 서비스로서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High Quality 글"을 유통하는 플랫폼으로서, 초기에 원하던 바를 나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높은 퀄리티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input을 필요로 한다. 캐주얼하게 글 쓰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매번 높은 input을 들여 글을 쓰는 것이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나 같은 유저들의 이탈이 일어나고, 브런치 팀은 나 같은 유저들을 위해 또 그러한 "리마인드 알림" 기능을 넣게 되는 것이 아닐까.
뭐,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리라.
나는 한동안 글을 쓸 때 내 자신에게 높은 input을 강요하는 은근한 피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블로그를 개설해서 비공개 글을 매일 꾸준히 써오고 있다.
어떤 때는 짤막한 메모 형식으로,
또 어떤 때는 적당한 길이의 일기 형식으로,
또 어떤 때는 기나긴 에세이 형식으로.
스스로가 만들어낸 일종의 "피드백 디톡스"를 통해서, 요즘은 다시 소소하고 캐주얼한 글들을 쓰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나는, 꾸준히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좋아하던 영화를 다시 보고는, 또 한번 깊게 감명을 받아 블로그에 영화 감상평 후기를 적어 내려 가다가, 갑자기 브런치가 궁금해서 방문해봤다.
문득, 나는 어쩌다가 브런치에서 블로그로 옮겨갔는지에 대한 짤막한 고찰을 하다가, 약 300일 만에 브런치에 그 이유에 대한 회고록을 남겨본다.
다음부터는 종종 아무렇게나 써 내려가는
캐주얼한 내 맘대로 식 글도 다시 써봐야겠다.